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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 May 28. 2021

이번엔 팔이다!

색연필 그림일기


병원이 싫은 내가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꼬박 병원에서 반나절을 지내고 있다. 벌써 4주 째다.


아침에 눈을 뜨면 침대에서 짧은 스트레칭을 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오른쪽 팔이 불편했다. 팔을 뻗을 때마다 고개가 숙여지면서 통증을 느꼈다. 마지막 플랭크를 하려고 팔을 모으고 체중을 실었는데 '악'소리가 나면서 엎어졌다. 오른쪽 어깨가 심하게 아팠다. 돌아누울 때와 옷을 입고 벗을 때도 힘들었다. 파스로 버티다가 병원엘 갔다. 오십견인가 했더니 어깨에 염증이 생겼다고 했다. 의사는 고강도 노동과 충격받은 일을 의심했지만 그런 일은 없다. 는 '그럴 수 있다'라고 했다. 내겐 그 말이 '나이 탓이다'라는 말로 들렸다. 수년 전 접영을 배울 때 팔이 아파 서너 번 한의원을 다니다 말았는데 그 탓일까, 혼자 추측했다. 어쩌랴. 어쨌든 팔에 탈이 난 것이다. 치과 치료에 이어 이번엔 정형외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엑스레이를 다섯 방이나 찍고 어깨와 엉덩이에 4대의 주사를 맞았다. 염증이 있다고 의심되는 부위에 맞는 어깨 주사는 많이 아프다. 목과 쇄골 사이, 뒤쪽 겨드랑이와 만나는 부분, 그리고 어깨 중심에 주사를 놓는다. 의사는'따끔~'(거짓말이다)이라고 했지만 '따끔'이 아닌 깊숙하고 묵직하며 뻐근하게 '푸~욱' 들어오는 기분 나쁜 주사다. 주사액이 잘 퍼지라고 문지를 땐 나도 모르게 신음 소리가 난다. 한마디로 매우 아프다. 식은땀이 주르르 나고 한동안 온몸의 기운이 빠진다. 고주파 자기장 통증 치료와 저주파 치료, 찜질과 전기 자극까지 받고 나면 반나절이 지나간다. 의사는 한동안 이 치료들을 정기적으로 받아야 한다고 했다!


전기 자극 치료기와 고주파 자기장 특수 치료기

내가 사는 지역은 소위 전원주택이 많은 이다. 사람들은 좀 더 여유로운 생활을 꿈꾸며 이곳으로 이주해 온다. 소원하던 덩굴장미와 강아지를 키우고 주말이면 벗들과 삼겹살을 구워 먹는 재미를 누린다. 그러다 어느 날 이사 간다는 인사를 받거나 혹은 이사 갔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다시 도시로 나가는 것이다. 주말마다 굽는 삼겹살이 시들해지면 비로소 정원을 가꾸고 텃밭을 일구며 사람보다 자연과 친해지는 재미를 알게 되는데 야속한 우리의 실존엔 이때 병마가 찾아온다. 더러 배우자를 잃어 자녀들과 함께 하기 위해 떠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나이가 들면서 병을 얻게 되고 치료가 필요해지니 병원이 가까운 도시로 다시 옮겨 가는 것이다. 병은 배산임수의 자연친화적 주거보다 병원이 가까운 주거로 옮겨 가게 만든다. 전원생활은 꿈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다시 도시 아파트로 나가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에 서글프다.


몸과 마음의 불일치는 더 괴롭다. 몸이 낡고 있다는 것을 마음이 놓친다. 나의 뇌에 저장된 기억은 현재가 아닌 2, 30년 전의 기억이 더 많아서 빼버린 어금니를 잊고 자꾸 깍두기를 씹으려고 한다. 내 무릎이 30대인 줄 알고 뛰려고 한다. 50대는 시간이 50km로 흐르고 60대엔 60km로 흐른다는 세간의 우스갯소리가 실감 난다. 병원에서 돌아오면 하루가 다 간다! 세상에! 하루를 이렇게 보내다니... 이러다가 나의 브런치가 병원 순례기로 채워지는 건 아닌가.


밤 새 비바람이 거칠다. 거대한 괴물처럼 한데 엉킨 앞산이 꿈틀거렸다. 날이 밝아오며 천둥 번개까지 쳤다. 탱이가 끙끙거렸다. 무서운가 보다. 현관에 들여놓고 탱이 발을 잡아주었다. 거칠던 숨소리가 잦아드는데 덜덜 떨었다. 무서운 걸 견디고 있는가 보다. 너도 살아 있어 무섭구나. 연민한 놈..... 나도 그래....


오늘 어깨 주사는 여전히 오히려 더 아팠다! 의사는 오늘도 '따끔~'이라며 공손하고 상냥하게 거짓말을 했다.

아픔을 참느라 뻗은 내 손을 간호사가 잡아주며 등을 쓸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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