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풍경 같은 내 나이

색연필 그림일기

by Eli

시골집 안마당의 커다란 나무는 지붕보다 높게 자랐다. 나무에 고운 단풍이 들고 충분히 시간을 보낸 잎들은 순한 바람에도 후드둑 떨어진다. 많이 비워낸 가지들이 굵직하다. 물드는 잎들은 떨어지기 위해 물든다.




내 나이는 딱 요맘때 같다. 가을의 한가운데를 막 지나는 그런 시간. 지니고 있던 제 잎들이 물들어 가며 떨어지는 나이. 잎을 떨군 가지가 보이고 그 사이로 드러난 하늘이 새로운 공간이 되어주는 그런 풍경 같은 나이.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되는 나이. 천천히 걸어도 되는 나이. 육체의 아픔으로 겸손해지는 나이. 제 손으로 무언가 다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나이. 그래서 세상이 고마운 나이가 내 나이다. 돈 무서운 줄 알아 돈하고 거리를 둘 줄 아는 나이. 채우기보다 비워야 충만해지는 나이. 비로소 물들 수 있는 나이가 딱 내 나이 바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