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안마당의 커다란 나무는 지붕보다 높게 자랐다. 나무에 고운 단풍이 들고 충분히 시간을 보낸 잎들은 순한 바람에도 후드둑 떨어진다. 많이 비워낸 가지들이 굵직하다. 물드는 잎들은 떨어지기 위해 물든다.
내 나이는 딱 요맘때 같다. 가을의 한가운데를 막 지나는 그런 시간. 지니고 있던 제 잎들이 물들어 가며 떨어지는 나이. 잎을 떨군 가지가 보이고 그 사이로 드러난 하늘이 새로운 공간이 되어주는 그런 풍경 같은 나이.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되는 나이. 천천히 걸어도 되는 나이. 육체의 아픔으로 겸손해지는 나이. 제 손으로 무언가 다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나이. 그래서 세상이 고마운 나이가 내 나이다. 돈 무서운 줄 알아 돈하고 거리를 둘 줄 아는 나이. 채우기보다 비워야 충만해지는 나이. 비로소 물들 수 있는 나이가 딱 내 나이 바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