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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 Nov 12. 2021

물 속 대화

색연필 그림일기



어깨 회전근에 문제가 생긴 지 반년이 넘었다. 어깨와 몸통을 연결하는 이두근에 염증이 생겼다고 했었다. 정형외과 17회 치료. 한의원 12회 치료. 치료비만 150 가까이 들었다. 그래도 팔이 낫질 않는다. 관절 염증 주사에 약침에 전기치료, 통증치료, 고주파 치료 등을 꾸준히 받았지만 차도가 없다. 3일간 어머니와 김장을 하면서 팔과  어깨의 통증이 더 심해졌다.


잠을 잘 때 한쪽으로만 자야 하는 불편은 고사하고 머리 감기, 옷 입기, 변기 물 내리기, 앞 머리 쓸어 올리기, 안전벨트 끼우기, 칠판 글씨 쓰기 등 일상생활이 힘겹다. 무거운 물건은 주로 왼팔로 들고 오른팔은 거의 제 구실을 못한다. 어느 날은 통증 때문에 자다가 깨 어린아이처럼 울기도 했다. 제 몸을 제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는 것은 꽤 쓸쓸한 일이다.


어머니 소개로 새로 찾은 한의원에서 할머니 한 분이 내게 물었다.

  " 어디가 아파서 왔수? "

  " 팔이 아파서 왔어요."

  " 나도. 올해 몇이우?"

  " 쉰여덟이에요."

  " 정말?(하면서 나를 위아래로 스캔하셨다)

    댁이나 나나 팔을 너무 많이 부려 먹은 게야. 그러니 탈이 나지. 장사가 있나."


너무 많이 써먹어 탈이 났다는 할머니의 말씀은 하루가 다 지나도록 가슴에 뭉근히 남았다. 내 육체의 유통기한이 다 되었다는 소리로 들렸다. 유통기한이 다 되면 나는 어떤 몸이 되는 걸까. 유통기한이 다 되었으니 폐기하겠다는 통보라도 받는 걸까. 시답잖은 생각이 들었다. 추운 날씨에 반바지를 입고 슬리퍼를 신은 청년이 지나갔다. 누구는 몸이 젊어 눈발이 내리는 날에 저러고 다니는구나.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올려다본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다.


몇 년 전 접영을 배울 때였다. 그때도 오른팔이 아파 수영을 할 수가 없었다. 막 접영에 재미가 들었을 때라 아쉬웠다. 병원에 가니 운동을 쉬라고 했다. 소식을 들은 수영회원들은 쉬어야 한다, 아니다 하며 의견이 분분했지만 나는 접영을 뺀 수영을 계속했고 한 달여 쯤이 지났을 땐 다시 접영을 할 수 있었다.


병원문을 나서며 그때가 생각났다. 위드 코로나도 시작되었고 수영장도 다시 문을 열었다는데 이번에도 고칠 수 있지 않을까. 코로나로 수영장에 가지 못한 게 1년이 넘었다. 더는 이런 팔로 못 지내겠다는 생각과 함께 맹목적 미신을 신봉하는 수영 교도가 되어 근거도 없는 확신을 부여잡고 수영장에 갔다.


그런데 낭패다. 막상 킥판을 잡고 발차기를 하는 것도 어려웠다. 수영은 더더욱 할 수가 없었다. 팔을 뻗거나 회전을 해야 하는데 되지 않았다. 두 팔로 킥판 잡는 걸 포기하고 한쪽 팔로만 잡으니 몸이 기우뚱거렸다. 그래도 혹시나 다시 몸을 움직여 보았지만 오른팔의 통증만 유발할 뿐 수영은 언감생심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자세는 팔 동작 없는 배영 발차기뿐이었다. 낭패감, 열패감, 자기 비하 등등이 다 동원되어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나를 조롱했다. 물에 들어간 지 30분도 못되어 나는 수영장을 나왔다. 길가 나뭇잎들이 한꺼번에 솨~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한의원 진료를 받으며 물으니 좋은 생각이라고 하면서 실망하지 말고 계속 운동을 하라고 했다. 고맙게도 용기가 났다. 한의원을 나오며 다시 수영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곧 수영을 하려고 했던 내가 어리석었다는 걸 깨달았다. 무엇하나 쉬운 동작이 없었다. 그렇다면 다시 킥판을 잡고 가능한 팔을 뻗는 것에 집중하자. 팔을 뻗는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동작일 줄이야. 팔을 뻗어야 킥판을 잡을 것 아니냐. 나는 물속에서 끙끙거렸다.


다음엔 사람들이 적게 오는 이른 시간에 갔다. 이번엔 몸의 움직임에 따라 느껴지는 아픔에  집중했다. 동작에 따라 통증을 느끼는 부분이 다르고 통증의 정도나 성격도 달랐다. 단순히 팔이 혹은 어깨가 아프다기보다 팔과 어깨가 만나는 겨드랑이와 그 위쪽과 아래, 팔에서 등으로 넘어가는 곳과 등에서 겨드랑이로 이어지는 부분, 쇄골뼈 위쪽에서 목으로 이어지며 움푹 파인 부분 등에서 선명한 아픔을 느꼈다. 어떤 곳은 찡하게 아프고 어떤 곳은 뭉근히 아팠으며 어떤 곳은 저릿저릿했다. 동작을 멈추면 통증이 사라지는 곳이 있고 동작을 멈추었는데도 아픔이 한동안 지속되는 부위도 있었다.


또 다른 날에도 몸은 주제도 모르고 자꾸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지만 킥판을 잡고 천천히 팔을 뻗으며 몸의 움직임에 따른 통증을 느끼는 것이 곧 하나의 루틴이 되었다. 문득 아프기 위해 물에 들어가는 새디스트가 된 것 같았다. 자꾸 아프게 해야 나을 것 같은 이 비과학적인 생각은 왜 드는 건지. 팔을 뻗는 단순한 동작을 위해 입을 오므리며  정성을 다 했다. 곧게 팔을 뻗으면 팔 안쪽이 귀에 닿아야 하는데 오른쪽은 닿지 않았다. 


팔을 귀에 붙여야 해. 의식적으로 팔을 뻗자 기다렸다는 듯 통증이 따라왔다. 그런데 발등에 닿는 물이 내 몸을 부드럽게 받쳐주고 밀어주며 어깨 통증을 어루만져 주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물은 마치 자전거를 뒤에서 잡고 밀어주는 아버지나 오빠처럼 나를 잡고 밀어주었다. 그러자 통증이 순해지며 팔이 귀에 닿았다. 어느새 급한 마음이 앞서 또 서두르면 물은 묵직하게 나를 거부하며 달랬다. 이 날은 팔 안쪽에 닿는 귀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운동이 되었고 코 앞에 있던 통증이 조금 떨어진 자리로 밀려났다.


팔과 어깨에 이상이 오면서 통증은 하루 종일 내 몸에 붙어있다. 지속되는 아픔에 찡그리기만 했는데 그것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몸이 전하는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 이상하고 신비한 일이다. 아픔을 밀어냈을 땐 괴롭기만 했는데 아픔을 똑바로 보기 시작하자 그것이 내 앞에서 정체를 들켰다는 듯 움찔하는 것 같은 이상하고 신비한 도깨비 나라의 생각었다. 물론 여전히 팔과 어깨는 아프다.


서두르기만 하고 물러서이 내게 말을 한다.

  '기다려 봐. 잠시 서서 호흡을 해. 아프다고 물러서지 마. 조금 더 뻗어 봐. 변화를 위해선 시간이 필요해. 한 주일만 구부린 상태의 나를 받아줘. 창피하니? 아무도 너를 신경 쓰지 않아.

  다음 주엔 분명히 좋아질 거야. 네가 서두르지만 않는다면. 네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아픔을 느낀다는 건 네가 살아있다는 거잖아.'


다시 수영장에 갔을 땐 제대로 된 수영을 한 번 해볼 수 있을까. 하지만 몸은 내게 말을 건네며 신호를 보낸다. 이렇게.


'천천히 해. 넌 항상 서둘러. 항상 결과를 빨리 보려고 하지. 분명한 것은 오늘과 내일은 다를 거라는 거야.  무서운 놈이 찾아오지 않은 것에 고마워해야지. 지금 수영을 못한다고 네가 수영을 못하는 사람은 아니잖아. 수영이 목적은 아니잖아? 여유를 가져. 그리고 네 몸이 하는 말에 귀 기울여 봐. 이 아픔이 아니면 네가 또 언제 너와 평생을 함께 해 온 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겠어.' 

라고.



다시 물찬 제비를 꿈꾸며





<소심한 변명>
통증을 미화하려는 글이 아닙니다. 다양한 질병으로 큰 아픔을 겪는 들이 음을 압니다. 그저 이 사람에겐 이런 일이 일어났구나 하며 가볍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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