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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 Jan 24. 2022

마음에 바람이 분다

색연필 그림일기


비로소 브런치 북 프로젝트에 선정된 작품들을 읽을 시간이 생겼다. 새 안경을 맞춘 날처럼 선명한 언어들이 노트북 화면을 가득 채우며 돌아다녔다. 글들은 소소하지만 특별했고 담담하지만 아픈 언어들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무게로 현란한 만다라가 되어 일상에 매몰된 나를 상승기류에 태워 빙그르르 올려 주었다. 바람이 온몸 가득 들어왔다.


나는 왜 작가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숨겨 놓았을까. 스스로에게 밝히지도 못하는 소망을 왜 품고 있었을까. 쓰기보다 읽는 것이 편했기 때문일까.


재능의 여부에 대한 두려움과 타인의 평가가 무서웠다는 핑계는 이제 버리자. 인류 문학사에 족적을 남긴 여성 작가들은 그들의 시대와 개인의 현실을 거슬러 꾸준히 글을 썼다. 식탁에서 화장대에서 거실 한편에서 또는 서재에서 글을 쓴 그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글을 썼지만 공통점은 글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20대의 내가 나타난다. 글은 읽었으나 쓰지 못했던 그 시간으로 돌아가 작가가 되기 위한 결심을 하고 싶어서일까? 모르겠다.


국어국문학과는 우리들끼리 '굶는 과'로 불렸다.  나의 20대 역시 굶을까 불안했고 사랑은 늘 애매한 이유로 떠나갔으며 학문은 미완성인 채 생활에 치여 3순위였다. 무언가 되어야 한다고 여겼던 강박의 청년은 자신을 책임질 줄 아는 어른이 아니라 더는 학생 할인이 되지 않는 '성인'에 불과했다. 그런 '성인'의 선택들은 그 이름만큼 어설펐고 실수 투성이었다. 그래서 나의 20대는 미숙했고 결핍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무엇보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살았다. 세상은 늘 나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정신없이 나를 끌고 다녔기에 작가가 되고 싶다거나 작가가 되려고 한다는 바람은 점점 밀려났다. 아니 어느 순간 '바람'은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물론 이  또한 핑계다.


절친인 벗은 중학교 때부터 글을 썼다. 고등학교 땐 당시 유행했던 '캔디'라는 만화보다 더 재미있는 하이틴 소설을 써서 내게 보여주기도 했다. 대학에 간 그녀는 학보사에 꾸준히 원고를 보냈고 더러는 그녀의 소설이 활자로 인쇄되어 캠퍼스를 돌아다녔다. 그녀는 한 번도 글쓰기를 멈춘 적이 없다. 생활고에 시달려도 혹독한 시집살이를 해도 남편과 불화가 생겨도 그녀는 끈질기게 글을 썼다. 등단을 하고 무명으로 살면서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최근 그녀는 카카오 페이지에 그녀의 소설을 론칭했다. 그녀가 새 글을 올릴 때마다 나는 한 문장 한 문장을 귀하게 읽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글을 쓰면서 삶을 견디는 게 아니라 그저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니까 쓰는 거구나."

명실상부 작가인 그녀는 담담하게 었다.


글을 쓰는 작가들은 모두 자기만의 방에서 우주를 짓는다. 브런치의 작가들 또한 각자의 신념과 삶의 선택, 살아내는 방법들을 보여주며 내밀한 자기만의 공간에서 숨을 쉬고 삶을 관조하고 있음을 본다. 별일이 있으면 오히려 위험한 것이 우리네 삶이지만 때로 별일이 있어야 살아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던가. 위험의 불안 없이 별 일을 만들고 그 별일을 브런치라는 공간에서 펼쳐놓는 많은 작가들과 더불어 같은 공간에서 별일을 궁리하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과분하게도 브런치에서 작가로 불려지고 있지만 아직도 나는 그 단어가 낯설다. 그래서 쉽게 답을 얻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또 묻는다.

글쓰기는 나에게 무엇일까. 몇 가지의 단어가 떠오르지만 무엇보다 브런치에서의 글쓰기는 마음에 바람을 불게 하는 달콤한 설렘이며 자유다. 바람을 타고 둥실 하늘을 떠도는 헹글라이딩처럼 온몸 가득 기분 좋은 바람을 품게 하는 '별 일'이다.


브런치 북에 선정된 작가님들께 축하를 보내며 지금도 노트북을 앞에 두고 자판을 두드리며 둥실 자유롭게 날고 계실 많은 작가님들께도 축하와 기원을 전하고 싶다. 모두 작가가 되신 것을 축하드리며 부디 멈추지 마시고 더더욱 날아오르시를.


바람을 가득 품으며 날아오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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