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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 Apr 24. 2022

OO 한의원

색연필 그림일기



 "네~~ 그렇군요. 걱정 마세요. 내일은 팔이 올라갈 거예요."

 "오늘만 아파요. 내일은 안 아파요."

"불편하면 말씀하세요~~"

"괜찮아요. 아파서 오셨잖아요.^^"


OO 한의원의 원장님은 늘 친절했으며 믿을만한 침술과 진정성 있는 몸짓으로 나의 팔을 고쳐주셨다.


이제 더는 자다가 통증 때문에 울지도 않고  손으로 목을 씻을 수 있으며 두 팔을 나란히 들어 올려 만세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다시 수영을 즐길 수 있게 되었고 남편이나 아들을 부를 필요 없이 선반 위의 접시를 꺼낼 수 있게 되었다. (OO 한의원 만세다!) 그것뿐인가. 바지를 한 손으로 입지 않아도 되고(이건 진짜 좋다) 이젠 양손을 다 사용해 머리를 감는다.


어제는 호미를  힘껏 쥐고 텃밭의 김을 맸으며 모자에 떨어진 복숭아 꽃잎을 집어 입으로 후~날려버리기도 했다. 

머리에 손이 닿다니!

불쑥 기어 나온 지렁이에게 놀라긴 했으나 내 팔을 내 맘대로 쓸 수 있어 새삼 감사하고 감사해 비록 눈은 못 맞췄지만 지렁이에게 인사를 다 했다.(그리곤 얼른 흙을 덮어주었다)


그런데 팔은 나았지만 이번엔 마음이 제멋대로 뛴다. 다시 'OO 의원'을 찾아야 할까.  마음의 주인은 나라고 하는데  다른 고약한 이가 자꾸 내 마음을 차지하려고 혀를 날름거린다. 그는 평화보다 분열을 좋아하고 화해보다는 갈등을 더 재미있어한다. 용서는 책에만 있는 거고 근본 없는 죄책감을 부추기는데 탁월하다. 성찰보다 분석을 좋아하고 감사보다 핑계가 더 좋다 한다. 그가 가진 힘바탕은 탓하기에 있어서  내 탓, 네 탓 다 좋다고 한다. 3이었던 화를 10의 분노로 올려놓고  올바른 명분이라박수를 친다. 대체 이놈을 어떻게 몰아내야 할까. 어디 가서 고쳐야 할까.


텃밭에 길게 자란 풀들을 말끔히 뽑으며 기분이 좋았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오로지 풀만 보였다. 풀들아, 유감스럽게도 내가 원하는 밭엔 너희가 필요 없구나. 그렇구나. 내 마음 밭에도 필요 없는 풀들이 자리 잡고 있구나. 조금만 내버려 두었는데 무섭게 자랐구나.


간간히 4월의 향기를 가득 품은 바람이 불어 복숭아나무의 꽃잎을 뿌려주었다. 우리 집 투투처럼 혀를 내밀어 바람을 먹었다. 민들레 홀씨가 내 손등에 살포시 앉아 깃털이 살랑거린다.  손등에서 꽃이 자라는 상상을 했다. 나도 모르게 씩 웃었다.


숭아 나무 그늘에 앉아 이마의 땀을 닦고 스스로 처방전을 쓴다.

남 탓도 내 탓도 안 하기.

끝난 스토리 막장으로 연장하지 않기.

지나간 일 떠오를 때 신호 보내기.

우리 집 댕댕이에게 하듯 딸깍, 딸각.

밭에 나가 김매듯 '그놈' 뽑아버리기.

민들레 고 예쁜 노랑 바라보기.


처방전 들고

민들레 홀씨 후~하고 날린다. 내 안의 고약한 놈 데리고 훨훨 날아가렴. 바람이 홀씨를 데려가면서

복숭아 꽃잎을 내 머리와 어깨에 분분히 뿌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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