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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람이 Jun 16. 2021

기억의 조각을 서울식물원에서 만나다

서울 식물원을 다녀와서



민들레 홀씨 뒤로 자유로운 곡선 따라 꽃봉오리 봉긋함이 열리어

노란 꽃대가 올라올 것 같습니다.

커튼월의 그물 유리창이 식물들의 눈이 되어 바깥세상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어린 동심으로 돌아갔습니다.

도깨비 뿔 같은 삼각 커튼 창을 열면 금 나와라 뚝딱 숲으로 들어갈 것 같고,

상어이빨 같은 창문을 열면,

바다를 헤엄치는 거대한 상어 뱃속에 들어가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곡선 기둥 위, 지붕에 고개를 올리니 벌집 모양의 지붕이 우주선을 연상하게 합니다.

정말 감탄스러운 건물의 형태였습니다. 어느 방향에서나 엔진만 있으면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았습니다.



<진짜 민들레>와 <작품 민들레>의 만남

<하늘을 바라보는 홀씨들 시각에서 찍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총을 받고 있구나.

바람이 아무리 불어와도 날아가지 못하겠지.

보여지는 삶이란 오해를 불러일으키더구나.

너도 날아가고 싶겠지.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에게 마음을 띄우며

네가 여기 서 있는 이유를 얘기하겠지.

어떤 홀씨가 지나가며 떨어뜨린 말에 상처를 받지 마렴.

너는 너대로 시간을 흡수하는 마법 같은 홀씨가 될 거니까.




제가 찍은 사진 중에 제일 귀여운 사진은 아부틸론 꽃입니다. 축복의 등불 같은, 마구 하트를 날리는 꽃이었습니다.

한 컷에 시를 담아 보았습니다.

 


언제쯤


네가 멀어져 가니

울음 맺혀

어깨 흔들리네


언제쯤

내 눈빛 닿아

네 입꼬리에

햇살 웃음 피울까?


네 목마름을 채워주는

한 방울이 될까?


너의 눈빛 되어

영롱하게 머무를까?


추억 속을 헤매는 숨소리

녹았다 얼었다를 반복한다


언제쯤

삶에 지친 너에게

기도 같은 그리움이

축복이 될까?






연못에 하늘도 담고, 식물들의 그림자도 담았습니다

햇볕도 이끼도 식물 뿌리도 서로를 다독이고 있습니다

그리운 사람들이 어룽지니

연못은 온통 눈물바다입니다

그 한가운데 연꽃이 맑게 웃어주니

날고픈 식물들 나뭇가지 뻗치며

끝닿을 수 없는 슬픔이 녹아내립니다.




이곳에 앉아 있으니 문득 박완서 작가님의 <<한 말씀만 하소서>> 작품이 떠올랐습니다.

예전에, 고통스럽다고 느끼거나 절망의 순간일 때 책상 모퉁이에 적어 두고 읽곤 했던 글귀들...


연일의 불면 때문인가, 기억과 보임, 실재와 감수성이 걷잡을 수 없이 헝클어진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혼란은 다행히 몽롱하다.

 인간이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이르면 왜 내게 이런 고통이 있어야 하는지 운명을 탓하게 되고

신을 부정하게 되어 너무 분통스럽고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더욱 고통스럽다.


어느 순간이 되면 타인들의 작은 행복 때문에 나는 더욱 불행하게 느껴져서 타인과는 벽이 생기고 혼자 있기를 갈망하게 된다. 내가 그들을 위로할 수도 없지만 난 그들의 위로를 받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나 또한 충분히 불행해질 수 있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것을 부정하려고 도망 다니던 날들을 깨닫게 된다.

이제는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고

그래서 나는 나를 자책하게 되다가도, 혼자만의 슬픔을 내보이지 않는데 급급해진다.

 평범하게 일상을 보내는 척하다가

평범하게 일상에 임하게 되고,

그토록 가슴 아팠던 지난 상처로 인해 덤덤해진 자신을 한 번씩 되돌아보게 된다.

그런 순간에는 모든 깨달음은 하나의 속절없는 문장을 되뇌이며 씁쓸해지는데,

'세월이 약이라더니만...'




내리치는 물커튼이 일상인 듯 아름다웠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일상'이라는 평범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그래, 세월이 약이구나'싶었습니다.

한없이 바닥에 부딪히며 내려오는 물길 사이로 식물들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이곳 식물원 나무들은 끊임없이 변하는 빛을 따라가며 일상을 보내고 있다.
평화스러워 보이지만, 쉼 없는 녹색 호흡으로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고 있구나."


(사진 : 자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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