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연애와 결혼
1989년 겨울,
명동 거리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흰 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그 아래로 밝은 조명들이 반짝이며
사람들의 발걸음을 따뜻하게 비추었다.
그때, 나는 사람들 속에서 한 여자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속도감 있게 걸어가고 있었지만,
그 발걸음 속에 아무리 봐도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난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저 지나치는 무수한 사람들 속에서 왜 하필 그녀였을까.
알 수 없는 끌림에 내 눈이 저절로 그녀를 따라갔다.
그리고 몇 분 후, 호텔 커피숍 입구에서 그녀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선배가 소개팅을 해주기로 한 장소였다.
그곳에서 그녀가 내게 다가오며 마주쳤을 때,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확, 하고 터졌다.
그녀의 미소,
그리고 따뜻한 눈빛은 그 순간,
마치 나를 위한 선물처럼 느껴졌다.
세상 모든 시간들이 멈춘 듯,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만든 작은 세계가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모습은 마치 별빛에 씻긴 듯 투명하고,
또 동시에 무언가 차가운 겨울바람처럼 신선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사랑은 반드시 시간이 흘러야만 생기는 것이 아니었음을.
첫눈에 반한다는 말은,
실로 이런 순간을 말하는 것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그녀와의 대화는 곧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그날 이후 우리는 자주 만나게 되었다.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고 확신한 이유는 단순하지 않았다.
첫눈에 반한 감정은 신비한 매력으로 다가왔지만,
진정한 사랑으로 자리 잡은 것은 그녀와 함께한 시간을 통해서였다.
나는 그녀와 함께 있을 때
나 자신을 더욱 진실되게 마주할 수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그저 자연스럽게 알아가게 된 것이다.
그녀는 내게 말없이 그런 변화를 이끌어낸 존재였다.
그녀는 나의 부족함을 받아주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깊었다.
그 누구보다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녀와 함께한 시간은 항상 나를 채워주었고,
결코 지치지 않는 에너지로 나를 감싸 주었다.
이런 사랑은 너무나도 소중하고 특별했다.
그녀는 나에게 미래를 그릴 수 있는 희망을 주었다.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다.
나의 일상이 그녀와 함께일 때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 될 것이라는 확신은,
나에게 결혼이라는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결혼을,
평생을 함께할 사람으로서 그녀를 선택했다.
처음 만난 순간의 설렘과 그로 인해 시작된 사랑은,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깊어지고 단단해져 갔다.
그때의 첫눈에 반한 감정은, 그저 찰나의 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을 만났다는 확신으로 변했다.
그날, 눈 내리던 명동에서 내가 그녀를 처음 본 순간은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이었다.
그 순간이 없었다면,
나는 오늘의 나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처음 만난 그날이,
우리가 함께 걸어갈 내일의 시작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