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마당에 온 가을, 그리고 가을을 타는 자두
그악을 떨던 더위가 갔습니다. 물론 한낮엔 아직도 햇볕은 피하고 그늘을 찾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견딜만합니다. 게다가 아침, 저녁으론 선선해서 창문을 닫는 건 물론 잠자리에선 이불을 끌어다 어깨부터 쫙 덮어야 합니다. 하지만 갈수록 더위가 더욱 심해진다 하고... 매해 올해가 가장 시원한 해라고 하니 너무 무섭기도 합니다. 어쨌든 그 여름이 가고 있습니다. 다만 이게, 가을...이라 합니다. 허덕이던 여름이 갔다고 이제 한숨 좀 돌리니 이게 가을이라고... 이제 솔바람에 위안받을 날도 너무 짧습니다. 어쨌든 가을!
우리 집 마당에 가을은 진작부터 왔습니다. 미니 사과나무엔 사과가 네댓 개가 열리더니 그나마 몇 개 떨어지더니 두 개만 남아있고 이젠 이파리들도 다 지고 가지만 앙상하게 남았어요. 세상에... 원래 미니사과나무라는 게 이런 건지... 대추나무는 작년엔 가지에 달려 있다 떨어져 주변에 대추들이 많이 널브러져 있었는데 올핸 대추나무에 가지가 많이 뻗더니 이파리들만 촘촘하게 아주아주 많이 달리더니 급기야 대추가 한 개도 안 열렸습니다. 무슨 일일까요? 그래서 얼마 전 가지치기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너무 잎들이 촘촘하게 달려 있어서
그런 걸까요? 다른 집 대추나무는 우리 집 것보다 훨씬 작은데 알알이 대추를 매달고 있던데 우리 집 대추
나무는 잎만 무성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만든... 그러나 사실 주인장의 손길을 정성껏 받지 못했음에도 꽃들은 피고 지고 했고 그중 봄에 심은 백일홍은 여름을 나고 가을이 온 지금까지 꽃을 피우고 있지만 처참하게 벌레들에게 이파리들이 먹히고도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온갖 비바람에 가지가 휘어지고 그럼에도 꽃들을 계속
피워냅니다. 가지를 쳐주고 꽃대를 따주고... 벌레들에게 이파리를 다 내어준 백일홍에게 미안해합니다... 노란색, 빨간색, 주홍색... 백일홍은 열일을 다 하고 지금 가을에 꽃밭을 떠나려 합니다. 이미 봄꽃, 여름꽃들은 다 떠나고 말았음에도 끝까지 남아 있는 백일홍... 이제 가을꽃 국화에게 자릴 내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자두는 자기가 새로 만들려는 루틴을 내게 강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초저녁 산책 후 밤까지 밖에서 끙끙거리며 나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을 열어 놓아도 들어오진 않습니다. 고양이가 집 근처에 오거나 마당에 들어온 날은 더욱 앓는 소릴 하며 낑낑대며 안절부절못합니다. 보다 못해 들어오라 애걸을 해도 안 들어옵니다. 어쩌다 들어와도 날 보고는 '잘 있군~확인했음~' 이러는 듯 휙 그냥 나가버리고 그렇다고 문을 닫아놓으면 그 앞에서 문 열라고 계속 끙끙대고 그래도 문을 열지 않으면 왕왕대고 짖기도 합니다. 결국 문을 열어
놓으면 '그래... 됐어~' 그러는 듯 쿨하게 현관밖으로 나갑니다. 그렇게 자다 보면 언제 들어왔는지 침대 끝
발치에서 자고 있습니다. 그러곤 새벽 4~5시쯤이면 또 나갑니다. 그러고 6시 30분이 넘어도 내가 나오질
않으면 끙끙대며 나를 깨웁니다. 예전엔 산책 나가자고 5시 넘으면 깨우더니 요샌 산책은 안 나가도 이쯤이면 밥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듯 깨웁니다. 더욱이 산책 총량의 법칙이 있는 것처럼 어떤 날 아침에 나가면 저녁땐 안 나가려고 하고 또 어떤 날에는 저녁 산책도 안 나가려 해서 그냥 두었더니 밤중에 나가자고 낑낑대서 한밤중 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밥을 주면 먹고 소나무 밑에서 잠을 잡니다. 출근 때 보면 늘 소나무 밑에서 자고 있습니다. 이게 요즘 자두의 루틴입니다. 겨울이 오면 또 어찌 될까 궁금합니다.
자두, 살구, 고양이에 대한 지난 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