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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인 Aug 17. 2021

23주 차 돌입

샤니를 기다리며..

2021년 1월 6일  22주 6일


침대에 누워 하루 종일 자고 핸드폰하고 음악 듣는 일만 하고 있다. 나와 비슷한 상황의 여자분이 쓴 블로그를 읽게 되었는데 대학병원인 A병원에서 양수가 터지자 24주가 아니면 살기 어렵다고 해서 아기를 보내주었다는 내용이었다. ㅅ병원으로 오기 전, 우리 동네 주치의가 왜 확신하듯 아기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분은 A병원 출신이다. 결국 소아과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그에 맞춰 산부인과에서도 선택이 나뉘는 것 같았다. 그 글이 너무 안타깝기도 하고 내가 여기 온 순간에 이곳에 자리가 없었다면, 여기저기 알아보다 다른 대학병원에 가서 거기서도 아기를 보내줘야 한다고 했다면, 그땐 정말 보내줬을 거라고 생각하니 그 찰나의 아슬아슬함이 나를 짓눌렀다.

그래서 그런지 악몽을 꿨다. 밤에 두 시간밖에 자지 못했고, 아침에 밥을 먹고 나서 다시 잠들었는데 다시 악몽을 꿨다. 사람을 잃는 꿈을 꿨다.

그래서 이제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들의 글은 읽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국제 기준으로도 생존 라인은 24주이다. 그러니 그전에 태어난 아이를 어떻게든 살려보려는 것은 의사와 부모의 선택일 수 있다. 일주일만 잘 버티면 24주가 되고 생존율 80%가 된다. 꼬물범이가 제일 힘들겠지만 엄마가 재밌는 거 많이 보고 많이 웃어줄게




2021년 1월 7일  23주 0일


드디어 23주! 새벽에 자궁수축이 있다고 해서 수액을 조금 더 투입했다. 피검사에 이상이 없어서 항생제를 끊었다. 특히 양막이 찢어진 상태에서는 그 찢어진 곳으로 감염되는 게 가장 위험하다고 한다.

밖에는 영하 14도로 폭설과 한파 때문에 모두들 고생하는 것 같았다. 나는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느낌을 받았지만 그래도 병원 안이 여러모로 가장 안전하다고 느꼈다.




2021년 1월 8일  23주 1일


양수가 터지기 전, 1월 4일 날짜로 정밀초음파 예약이 잡혀있었다. 원래는 12월 23일 정도에 정기검진이었는데 정밀초음파 예약이라 한 주 늦춰졌었다. 12월 23일에 원래대로 산부인과를 갔었더라면 양수가 조금 새는걸 미리 알고 양막이 완전 찢어지기 전에 병원에 입원할 수 있지 않았을까? 모든 작은 사건 하나하나가 아쉽다.

정밀 초음파를 보고 오지 못했기 때문에 여기에서 보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아직 아기 성별도 몰랐다. 보통은 산부인과에서 힌트를 주시는데 아직 아기가 어려서 명확하지 않다고 하셨었다. 나는 아들이던 딸이던 상관없지만 남편이 몸담았던 실험실에서 레이저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Y염색체가 파괴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선배들은 모두 딸을 낳았다.


양수 없이 초음파를 보기는 쉽지 않았다 음파가 발생하려면 물이 있어야 하는데 양수가 없으니 화질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교수님께서 정말 꼼꼼하게 모든 혈류와 뇌, 얼굴, 입술, 신장, 팔, 다리, 손가락, 발가락 등을 봐주셨다. 폐는 거의 없는 수준인데 양수 없는 이른 주수의 아기들은 모두 폐가 발달되기 어렵다. 아기가 양수를 마시고 배출해내는 과정에서 폐가 자라야 하는데 벌써 일주일 이상 양수 없이 지냈기 때문이다. 발 쪽을 볼 때 아기가 인사하듯이 발을 옆으로 움직여서 우리 모두 웃었다. 교수님 외에도 내 주치의 선생님과 다른 의사 선생님들 두 분이 함께 정밀 초음파를 봐주셨다. 과정 내내 교수님께서 다른 전공의 선생님들에게 깜짝 퀴즈를 내고 교육하셔서 그 과정에서 나도 단순하게 "음 아기 상태가 좋네요"라는 말보다 더 많은 의학적 지식이 쌓였다. 단순히 사람 형태가 제대로 있나 보다는 혈류가 어떤 기관과 기관 사이에 제대로 된 속도와 방향으로 움직이는지를 꼼꼼히 본 정밀초음파였다. 아기 성기 쪽을 볼 때 유심히 보고 성별 힌트라도 얻고 싶었는데 탯줄이 막고 있어서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아기도 안정적이고 나도 안정적이다. 심장은 조금 더 큰 다음에 다음 주에 더 자세히 보기로 하고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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