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전. 수유 연습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오늘 당장 올 수 있냐고 하셔서 바로 간다고 했다. 왠지 이렇게 될 것 같아서 코로나 검사도 미리 받고 제출했었는데, 그래서 바로 수유 연습하러 갈 수 있었다. 못 본 2주 새 아기가 엄청 컸다. 키도 좀 큰 것 같지만 힘이 세졌다. 그전까지는 밥 먹다가 더 이상 먹기 싫으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는데 이제는 손으로 젖병을 쳐냈다. 손으로 쳐내면 더 이상 안 주는 걸 알게 된 걸까?
이번 주 매일 수유 연습을 하고 동시에 심폐소생술 교육과 산소 교육을 받는다고 했다. 교육을 다 받으면 바로 퇴원할 수 있다. 아주 소량의 산소 정도만 필요한데 결국 떼지는 못해서 집에 산소통을 가지고 퇴원하기로 했다. 솔직히 6월까지는 산소통 가지고 집에 갔다가 내가 잘 알지 못해서 아기가 잘못되지 않을까 두려웠었는데, 지금은 그런 건 상관없고 그냥 데리고 가고 싶다. 사실 수유하면서도 지금 아기 몸에 달려있는 줄 다 떼 버리고 데리고 가고 싶다는 충동이 생긴다. 그 줄을 떼자마자 아기가 위험해지기 때문에 그냥 꾹 참고 있는 거다.
2021년 8월 11일 생후 215일 교정 97일
수유 연습. 이번 주에 당연히 퇴원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안과 진료 때 어렵다고 판단되어 결국 퇴원이 미뤄졌다. 그리고 수유 연습도 많이 해서 이제 끝이라 면회 금지라고 하셨다. 그 얘기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다음날 아기가 분유를 영 못 먹으니 이유식을 해보자고 하셨다. 오전에 그 전화를 듣자마자 기분이 더 우울했다. 이유식은 어느 정도 큰 아기들이 하는 건데.. 결국 나는 아기가 이유식 먹을 때까지 키워보지도 못하고 시간만 갔다. 내가 모르는 아기의 신생아 시절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 같았다.
부랴부랴 인터넷에서 미음 만드는 법을 검색해서 만들어 갔다. 처음에 다 뱉는다고 하는데 어색해했지만 곧 잘 먹어서 다섯 숟가락 먹었다. 사실 먹이는 것도 불안했지만 아직 목도 못 가누는 아기를 의자에 앉혀서 먹이는 게 더 불안했다.
이제 못 보는 줄 알고 슬펐는데 이유식 먹이는 핑계로 자주 갈 수 있어서 그나마 위로가 된다. 아무리 뒤져봐도 3개월부터 이유식 먹는 아기 얘긴 없었지만 교수님이 처방해주신 거니까 일리 있을 거라고 믿었다. 우리 아기를 봐주고 계신 교수님은 90년대 지금 병원이 처음 생길 때부터 계셨던 분이고 이 병원이 이 정도 명성을 쌓을 수 있게 만들어주신 분이다. 오래 일하셨으니 어쩌면 은퇴가 많이 남지 않으셨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경험 많은 분께 배정받은 것도 우리 아기의 운이라고 생각했다. 방송하면서 현장일도 해보고 대학원 다니면서 교수님 일하시는 것도 봤는데, 이 분은 이 모든 걸 다 하시는 분인 게 정말 놀랍다. 피디들은 40대만 되면 어떻게든 현장에 안 가고 다른 피디들이 해온 거 보면서 평가하는 위치에 있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남이 편집해온 거 보는 눈은 시청자와 다를 바 없다. 그렇게 점점 감이 떨어지고 위치의 힘은 생기지만 말의 힘은 잃게 된다. 이 교수님을 접하고 가장 놀라운 점은 위중한 아기들을 체크하시면서 부모들과 면담도 하시고, 외래일정으로 온 아기들도 보시고, 교수님이시니까 학생들도 가르치고 연구 논문도 쓰신다는 점이다. 물론 밑에 제자들과 후배들이 있으시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책상에 앉아 보고서만 읽고 사인만 하는 일은 절대로 아니다. 80~90년대 아기들 인구도 많아서 그때 개업하셨으면 정말 빌딩을 몇 채 세우셨을 텐데 돈을 좇으신 것도 아니고, 명예도 이미 90년대부터 가지고 있던 교수 타이틀을 이렇게까지 오래 갖는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지는 일도 없을 것 같다. 도대체 이 분이 이렇게 오랫동안 누군가의 생사가 오가는 최전방의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이 무엇일까? 이게 진정한 사명감이라는 건가? 짧게는 누구나 영웅적 생각과 행동을 취할 수도 있지만 몇십 년 동안 하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아마 일반 직장인이 바라는 대로 휴가나 연차, 출퇴근 시간을 따지면서 일하진 못하셨을 거다. 실제로 나도 토요일 오전 7시에 응급으로 수술 준비를 했었고, 교수님이 그 오전 시간에 남편과 면담해주셨었다. 친구와 이런 대화를 하다가 종교적인 힘이 아닐까 추측해봤다. 이분이 몇십 년간 실제로 얼마나 많은 아이를 살리셨고 그럼으로써 얼마나 많은 가정을 지켜내셨을까? 이미 스트레스는 일적으로 충분히 받고 계시니 삶의 다른 모든 부분에서는 행복하기만 하셨으면 좋겠다. 교수님을 보며 직업에 대한 가치관이 좀 달라졌다. 내가 다시 일을 하게 된다면 직접적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