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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조 Jul 07. 2024

거짓말쟁이의 참외 토마토 샐러드

이것은 참외가 메인이고, 나는 거짓말쟁이입니다.

1

할머니 댁을 가기로 하고 가지 않았다. 비가 온다는 핑계였다. 실은 혼자 있고 싶어서 그런 거였으면서. 토요일 책방을 마감하면서 오래 혼자 있고 싶어졌다. 침대에 몸을 구기고 푹 쉬면서 - 언제는 안 쉬는 사람처럼 얘기하는 게 웃기지만 - 하염없이 잠을 자고 싶었다. 퇴근 후 곧장 침대로 향했다. 그러나 잠은 오지 않고, 나는 그냥 밤새 핸드폰 하는 사람이 되었다. 하염없이 유튜브를 보고, 하염없이 시력을 포기하면서 시간을 다 보냈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채용 등록을 위해 필요한 서류를 뽑았어야 했는데... 모든 할 일을 유예하고 누웠다. 이러기 위해 할머니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는 게 부끄럽다.


2

나는 가끔 오래 혼자 있고 싶다. 혼자서 아무 말하지 않고 있는 게 좋다. 말은 너무 위험하다. 가끔 나를 앞지른다. 하고 싶지 않은 말들을 우수수하게 되고, 내가 한 말을 후회하는 동시에 상대방의 표정을 살피는 일이 싫다. 내가 지금 실수한 건 아닐까 고민하게 되는 일도 피곤하다. 사실 그래서 요즘은 그런 고민을 안 하기도 한다. 나도 가끔 누군가의 무례를 견디는 것처럼 나의 무례를 상대방도 '에효- 이 정도쯤이야'하고 넘어가 주기를 바란다. 이러다 주변에 아무도 안 남을지 모르겠다.


3

8월부터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4개월 간의 짧은 근무지만, 문화재단에서 발달장애인 청소년 예술지원사업을 보조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이었고, 좋은 경력이 될 거라 생각해 지원했다. 면접도 잘 보고 나왔다고 생각해서 합격하게 되었을 땐 기뻤다. 아주 잠깐. 갑자기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하니 청개구리처럼 쉬고 싶다. 이런 마음은 무엇일까. 나는 내 마음도 잘 속이는 거짓말쟁이인 걸까.


4

시를 쓰고 싶어서 학교에 돌아왔는데, 생각보다 많은 글을 쓰지도 않았다. 나는 나의 행보가 이상하다. 게으르지만 근면하고, 근면하지만 게으른 나. 이랬다가 저랬다가. 사람을 좋아했다가 미워했다가. 친구가 되었다가 돌아서버렸다가. 내가 여러 개 섞여 있는 느낌이다.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 뭐 그런 노래 가사처럼. 이렇게 뒤죽박죽 한 기분으로는, 역시 뒤죽박죽 한 요리를 해야 한다. 간단하지만 섞일 수 있는 요리. 제각각이지만 그 나름대로 맛있어 보이는 것.


'참외 토마토 샐러드' 레시피를 공개한다.


여름의 기운으로 거짓말쟁이의 뒤틀린 마음을 치료할 수 있다.



재료

작은 참외 1개, 완숙 토마토 1개, 양파 1/2, 바질 (취향껏)

그리고 올리브유, 파마산치즈. 통후추, 레몬즙 


1. 참외 속을 파내고 네모나게 썬다.

2. 토마토는 속을 파내지 않아도 된다. 네모나게 썰거나, 어렵다면 조각내도 좋다.

3. 양파 반 개는 물에 담가 매운 기를 빼두었다가 네모나게 썰어둔다.

4. 바질은 향이 날 수 있도록 적당히 두드려주기.

5. 모든 재료를 둥근 접시에 담는다.

6. 올리브유 두 바퀴, 파마산 치즈 듬뿍, 후추 듬뿍, 레몬즙 두 바퀴.

*모든 소스는 취향껏 넣으시면 됩니다.

8. 그리고 킥! 버무려진 샐러드를 접시에 담고,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 올려주면 완벽한 여름의 맛. 


완성


거짓말쟁이가 된,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아삭거리는 식감으로 밀어낸다. 원래 이렇게 뒤죽박죽 한 것이 마음일 거라 짐작하며 생각을 정리하자.


-

글도 뒤죽박죽. 이랬다가 저랬다가 와리가리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네요...

마음이 서투니 글도 서툴게 나온 거 같아요.

달콤한 참외와 상큼 시원한 토마토의 기운으로 이겨내며, 다음에는 더 좋은 글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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