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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조 Jul 15. 2024

초당옥수수를 사다

찰옥수수파의 초당옥수수 체험기

아홉 살이 되던 해, 우리 가족은 양평에서 춘천으로 이사했다. 강원대학교를 졸업한 아빠가 새 직장을 춘천에 구했기 때문이다. 대학시절을 보낸 곳으로 다시 왔으나 아빠는 전공과 무관하게 작은 상가에서 당구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 일은 오래가지 않아 접고, 새로운 회사에 취직했던 것도 같은데 어렸을 때 일이라 아빠의 직장 변천사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엄마와 아빠가 춘천에서 자리 잡는 동안 나는 양평에 있는 할머니 댁에 맡겨졌다. 조금 더 일찍 따라갔을 수도 있었지만 막 이삿짐을 풀기 시작했을 때, 동생이 당구장 가게 건너편에 있던 장난감 가게로 뛰어가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동생의 입원으로 가족들은 나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결국 꼼짝없이 할머니 댁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다행히 나는 할머니와 사이가 좋았고, 사촌들과도 자주 어울려 놀아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부터 남의 눈치를 많이 보던 내게 혼자 양평에 남아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밥 먹는 것부터 간식을 먹는 것까지 누가 눈치를 주지 않더라도 나는 나의 것이 아닌 걸 나눠 받는 일이 불편했다. 그리하여 엄마가 나를 데리러 할머니 댁에 온 날, 나는 주저 없이 엄마 품에 달려갔다. 할머니는 내심 기대하는 얼굴로 "엄마랑 있을래? 할머니랑 더 있을래?" 물어보았지만, 나는 엄마 등 뒤에 숨어 할머니 댁을 떠났다. 할머니의 서운한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20년 전, 춘천은 양평보다 훨씬 도시였다. 동생과 4층 짜리 뚱뚱이 아파트에 들어서며 환호했던 기억이 있다. 조금 더 일찍 춘천에 온 동생은 아파트 안에 있던 철제로 된 그네와 미끄럼틀을 자랑하고, 춘천의 초등학교는 학교마다 다른 색의 체육복을 입는다고 알려주었다. 우리가 다니게 된 초등학교의 체육복은 아주 촌스러운 초록색이었다. 웃기게도 우리는 그 초록색 체육복이 자랑스러워 주말이면 체육복을 입고 양평에 가 사촌들에게 자랑하곤 했다. 그렇게 의기양양했으나 4층짜리 뚱뚱이 아파트에 살았을 때 무시도 많이 받았다. 그 동네에는 4층짜리 뚱뚱이 이파트 단지가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우리가 살던 아파트는 오래되고 낡은 아파트였다. 어디서 무슨 얘기를 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종종 그 동네에 사는 다른 아파트의 아이들은 우리 단지에서 놀면 안 된다고 했다. 특히 밤늦게 놀면 큰 위험에 빠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곤 했는데, 주눅이 들면서도 '너네 아파트나, 우리 아파트나 그게 그건데'라는 생각을 했다. 남 눈치를 보면서도 속으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쉽게 흐트러트리는 방식으로 자존심을 지키곤 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서툰 시선에 익숙해지는 대신 무던해지기를 택했다. 춘천 생활에 적응했을 무렵 나는 닭갈비와 옥수수, 감자와 같은 구황작물에 푹 빠져 나의 가난을 누군가와 재지 않았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여름이 되면 종종 어머님들이 옥수수를 쪄서 간식으로 보내주셨다. 찰기가 도는 쫀득한 찰옥수수는 어린 나의 마음을 훔쳤다. 달달한 옥수수를 해치우고 쓰레기통에 옥수숫대를 넣으면 날파리가 꼬였지만, 신경도 쓰지 않고 여러 개의 옥수수를 해치웠다. 일종의 여름 의식이었다. 어쩌면 일찍이 음식에 적응하는 것이 삶의 울타리를 견고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모른다. 어린 시절을 짚어보면 서툴러서 불행하다고 생각되었던 일과 무던하게 땅을 툭툭 털고 일어난 일이 뒤섞여 떠오른다. 무던한 기억에는 언제나 한 손에 무언가를 쥐고 먹을 궁리를 하는 내 모습이 보인다.


다시 옥수수 이야기로 돌아와서, 춘천에서는 옥수수를 돈 주고 사 먹은 적은 거의 없다. 누군가 나눠주는 옥수수를 쟁여두는 것이 춘천살이의 기본이 아닐까. 조금 더 커서는 친구들과 물놀이를 갈 때가 되면 꼭 옥수수를 챙겼는데, 함께 떠나는 친구들마다 집에 있는 옥수수를 챙기는 바람에 남은 옥수수를 다시 집으로 챙겨가기도 했다. 요즘도 동네 친구 집에 놀러 가는 날이 되면 집에 쌓인 옥수수털이를 위하여 옥수수를 삶기 바쁘다. 그러니 옥수수란 배부르고 달큰하면서 찰기가 넘치는 기억이자, 땀이 뻘뻘 나게 힘들었던 유년기를 위로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강원도 찰옥수수의 맛에 익숙한 내게 초당옥수수는 낯설다. 한참 초당옥수수가 인기를 끌 때, 나는 꽤 심드렁했다. 과일처럼 먹을 수 있는 옥수수라니? 무엇보다 옥수수란 쫀득한 맛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찰옥수수가 정통 한식의 느낌이라면 초당옥수수는 세련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한 번 신경이 쓰이니 마트에 갈 때마다 초당옥수수의 노란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언젠가 한 번 초당옥수수의 맛을 봐야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번 주말 초당옥수수를 사 왔다. 춘천의 맛을 떠올리며, 찰옥수수를 사서 쪄 먹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찰옥수수 코너에 초당옥수수가 스파이처럼 숨어 있던 것이다. ‘지금이야!’ 마치 계시를 받은 것처럼 초당옥수수를 집어 들었다.


어떻게 요리를 해 먹을까 생각하며 인터넷에 레시피를 검색했다. 많은 사람들이 초당옥수수를 활용한 수프 레시피를 공유하고 있었다. 수프를 만들어야겠다 생각하며 우유와 치즈도 함께 구매했다. 그렇지만 주말 밤, 수프를 만들기 위한 재료를 꺼내지도 않고 옥수수를 썰어야만 했다. 늦은 밤의 허기가 야식을 요구했기에... 불이 꺼진 거실을 살금살금 나가 부엌 불을 켰다. 그리고 초당 옥수수를 잡고 썰었다. 옥수수에서 즙이 튀었다. 과일처럼 즙이 튀는 옥수수라니, 기대되는 마음으로 옥수수를 볶았다. 달콤하고 짭짤한 옥수수의 맛을 즐기며 여름이 왔음을 실감했다. 여름의 기운으로 옥수수에 관한 추억까지 상기하다니. 시간이 훌쩍 지나 어느덧 춘천을 고향으로 생각하게 되는 지금, 타지에서 먹는 옥수수요리의 맛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찰옥수수와 초당옥수수의 차이만큼 커다란 차이가 없는 걸 알면서도 센치해지는 기분이다. 내가 느낀 여름밤의 즐거움을 공유한다.


알알이 떠먹는 초당옥수수 구이!



재료

초당옥수수 1개, 버터, 올리브유, 소금, 후추, 스모크갈릭파우더

1. 익히지 않은 초당옥수수 1개를 알알이 썰어낸다. (사진에 있는 가느다란 실은 옥수수 수염입니다.)

2. 옥수수알을 따로 분리해 그릴 팬에 동그란 모양으로 올려둔다.

3. 옥수수 가운데에 버터 한 조각을 넣고, 올리브유를 둘러준다.

4. 이후 소금과 후추를 뿌린다.

4. 그릴 (또는 에어프라이기)를 활용해 180도에서 5분가량 돌려준다.

5. 마지막으로 후추와 스모크갈릭파우더를 취향껏 뿌려준다.

6. 따끈하면서도 아삭한 초당옥수수구이를 둥근 접시에 담아준다.


완성


숟가락으로 편하게 옥수수구이를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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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일요일에 새로운 이야기를 가져올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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