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학도다. 책과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영어까지 좋아하여 영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어릴 적부터 꾸준하게 참 많이도 책을 읽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 자리 잡고 있던 우울감이 서서히 그 존재감을 키워가면서, 나 또한 '실용주의자'가 되어 책의 '실용성'에 의심을 품고 책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지금 책이나 읽을 때야?', '책 몇 권 읽는다고 당장 삶이 달라져?'와 같은 생각이 끊임없어 올라왔다.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찾아내야 했다. 책 읽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고 떠들고 다니면 내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조차 생각해본 적이 없다니 참으로 개탄스러울 뿐이었다.
정말 많이 고민했다. 책을 왜 읽어야만 하는가? 마음의 양식이니까? 그 당시 나에겐 헛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언어 능력과 사고력 증진? 그런 건 당장 필요한 게 아니다. 뇌 건강이나 스트레스 감소에 도움이 된다는 과학적인 근거에도 스스로를 설득시키지 못했다. 몇 개월 동안을 답을 찾고자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감조차 오지 않았다. 하지만 해답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내 앞에 나타났다.
공황 장애 진단을 받은 후, 우연히 지인의 고민 상담을 해준 적이 있다. 다행히도 그가 처한 어려움은 내가 경험했었고 슬기롭게 극복했던 것이라, 그의 아픔을 덜어주고자 하는 진심을 담아 조언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그 어려움에 완전히 잡아먹혀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버렸고, '나는 그렇게는 못할 거야.', '그건 너니까 되는 거 아니야?', '지금 내 상황에선 답이 안 나와.' 같은 말들만 끊임없이 반복했다. 벽을 보고 말하는 듯한 기분에 슬슬 화가 났다. 그때 문득 그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했다.
내가 경험한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지나온 세월이 축적해온 가치관은 이미 내 안에 작은 세상을 만들었고, 그 안에서만 답을 찾고 있었다. 심리 상담을 받을 때도 그랬다. 선생님은 항상 '그렇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 혹은 '이렇게 해보면 어때요?'와 같은 조언으로 끊임없이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자 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마다 '아, 해봤는데 안될 거 같아요.', '전 알 거 같아요.'와 같은 말로 스스로가 벽이 되어 다가오는 조언들을 다 쳐내고 있었다.
살아가다 보니 '나만의 세상'이 만든 가치관이 종종 '고집'이 되는 걸 느꼈다. 게다가 나이가 들다 보니, 만나는 사람도 점점 줄어들어 나와 비슷하고 잘 맞는 사람들만 남게 되었다. 자연스레 내 생각은 주변 사람 모두가 공감하는 '세상의 진리'가 되어갔다. 이들과의 대화는 '결국 내 생각이 맞아'라는 확신만 심어줄 뿐이었다. 그렇게 '꼰대'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나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나보다 대단한 사람의 이야기가 필요했고, 내가 '맞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아니'라고 하는 사람의 이야기, 그 반대로 내가 '아니'라고 확신하던 걸 '맞다'라고 증명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내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필요했고, 이 넓은 세상에 네가 아는 건 손톱만 한 일부분이라고 일침을 가해주는 이야기가 필요했다. 결국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건 '책' 뿐이었다.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완전하게 인정했다. 나만의 세상에 갇혀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있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할 이유가 명확했고, 반드시 '책'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 이후부터 상담 선생님의 조언에 '그렇게 해볼게요.'라고 대답하기 시작했다. 내가 꿈꾸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책을 끊임없이 읽었다. 위대한 사람의 책 한 권은 나에게 그 사람의 인생을 그대로 주입해주었다. 점점 넓어진 나만의 세상은 비로소 내게 '할 수 있겠는데?'라는 희망을 주기 시작했다. 한 권에 한 문장이면 충분했다. 내 뒤통수를 치며 충격을 준 그 한 문장들이 모여, 내 시야와 세상을 넓혀주었다.
내 세상이 넓어지기 시작한 것은, 존 소포릭의 『부자의 언어』를 읽으면서부터였다. 이 책의 몇 문장이 나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 이후로 나는 끊임없이 시간 나는 대로 책을 읽으며 내 삶에 작은 변화를 만들어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 가지 결심을 한 게 있는데요, 전 매일 밤 삶이 달라지길 바라면서 빈둥거리고만 있진 않을 거예요."
저 문장을 읽는 순간, 나 읽으라고 일부러 써놓은 문장인 듯한 충격을 받았다. 내 삶이 바뀌길 원하면서 내가 한 것이라곤 침대에 누워 눈물 흘린 일뿐이었다. 제발 내 인생이 행복해지길 기도만 했었다. 몸과 마음이 무너져서 어쩔 수 없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달라지기로 다짐한 지금부터라도 나는 기도만 하지는 않겠노라 마음먹었다.
'빠른 결과를 원하면 좌절만 겪게 될 뿐이다. 하지만 5년간의 꾸준한 노력은 삶을 완전히 변화시킨다.'
'천천히, 조금씩 그리고 꾸준히'의 위력을 나는 몰랐다. 이 지옥을 간절히 벗어나고 싶었음에도 정작 방법을 생각하고 실천하기보단, 마음만 조급하게 닦달하며 스스로를 재촉하고 다그치기만 했다. 당장이라도 변화를 주고 싶은 마음에, '인생을 건 도박'이라는 비장함을 안고 받은 대출을 다 날려먹고 난 후에야 비로소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지금은 모든 것을 '10분', '30분'씩 내가 하루에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 아무것도 아닌 듯 그냥 무언가 했던 내 하루의 '5분'이, 어느새 꾸준히 쌓여 '1시간' 그리고 '10시간'이 되었음을 몸소 느꼈을 때, '아,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긍정의 기운이 내 안에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도 자주 조급함과 불안함을 느낀다. 그럴 때면 항상 나에게 말한다.
'또다시 아프면 안 되잖아. 그러니까 지금은 천천히, 조금씩 그리고 꾸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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