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수진
“무슨 일이지? 내보내졌다니?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순간 당황스러웠다. 무언가 자극에 이끌리듯이, 사냥감을 찾는 듯한 눈빛으로 수진은 핸드폰 화면에 집중했다.
다시 그 방에 들어가려다 멈추고, 이번에는 검색창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인원 44명. 김포?
맞다, 이건 지역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이 표시도 함께 보였다. 대문에 표시된 사람이 42살로 되어 있는 방을 클릭했다.
빠르게 채팅창이 올라갔다. 그리고 누군가가 인사를 건넸다. 수진은 정중하게 먼저 인사를 한 후, 채팅창에 글을 남겼다.
“저, 죄송한데 제가 처음이라서 잘 몰라요. 자세한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하트 눌러주시고, 공지 읽어주시고, 닉네임 같은 형식으로 바꿔주세요.”
닉네임을 두 글자로 설정해야 했다.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문득 커피가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무심코 ‘커피’라고 적었다. 이미 몇 번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첫 관문은 쉽게 통과했다.
“저희는 얼공 필수, 자동 존하대 방입니다. 얼공, 고고.”
‘사진을 찾아야 하는데…’
방에서 또 내보내질까 봐 수진은 급하게 채팅창에 글을 남겼다.
“저 사진 좀 찾아야 해서요. 찾아서 올릴게요!”
그런데 양해를 구하면 기다려줄 줄 알았던 기대는 빗나갔다.
“그럼 준비되면 오세요.”
그 말이 채팅창에 남겨지더니, 다시 방에서 내보내졌다.
와,
뭐, 이런~
“와… 뭐, 이런….”
이걸 계속해야 할까? 잠시 고민이 들었지만, 마치 시험을 치르는 기분이 들어 어떻게든 해내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수진은 결국 셀카를 찍었다. 다행히 예전에 설치해 둔 사진 어플 덕분에 자연스럽게 보정된 상태였다. 그나마 사진이 좀 더 나아 보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방에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수진이 인사를 하자, 익숙한 절차가 반복되었다.
“하트 눌러주세요.”
“공지 읽어주시고, 닉네임 바꿔주세요.”
닉네임을 ‘커피’로 바꾸자, 방에 있던 누군가가 수진을 알아보며 다시 인사를 건넸다.
“얼공 고고.”
수진은 준비해 둔 사진을 올렸다. 하지만 사진을 올린 지 3초도 되지 않아 사라졌다.
‘사진이…’
당황한 수진이 채팅창에 글을 남기자, 곧바로 답이 달렸다.
“사진은 순삭 해드립니다. 확인용입니다.”
“아… 네, 고마워요.”
짧게 답장을 남긴 순간, 채팅창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
존예
환영~
와우
아꿉 못봤ㅡ.ㅡ
끊임없이 이어지는 반응과 댓글들.
수진은 순간적으로 이 상황이 낯설게 느껴졌다.
사진을 올리는 순간, 마치 낯선 무대 위에 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불과 몇 초 후, 익숙한 듯 쏟아지는 반응들.
환호인가, 가벼운 장난인가.
그러나 그 관심이 싫지 않았다.
피식—
수진은 사람들의 관심과 반응에 묘한 흥분과 저릿한 감정을 느꼈다. 사진이 너무 빨리 삭제되었는데도, 저 사람들은 벌써 사진을 본 걸까? 그런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
언제부턴가 집에서의 수진은 투명인간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생활에 바빴고, 남편과도 단답형 이상의 대화를 나눈 기억이 까마득했다.
그러던 중, 또 하나의 채팅창이 열렸다.
“이곳에 사진 한 장 더 올려주세요.”
“네? 무슨 사진이요?”
채팅창에 답을 남기며, 수진은 공지사항에서 읽었던 내용이 떠올랐다. 결혼사진이나 가족사진을 올려야 한다는 규칙. 얼굴 일부는 가려도 괜찮다고 적혀 있었다.
수진은 가족사진을 올렸다. 그 사진 역시 몇 초 지나지 않아 삭제되었다.
새롭게 열린 대화창에는 두 명의 사람이 있었다. 한 명은 채팅방 대문에 공지된 사람이었고, 다른 한 명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오픈채팅에서는 그들을 운영진이라 불렀다.
다시 채팅방으로 돌아와 사람들의 대화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어디에서 끼어들어야 할지 몰랐다. 채팅창은 빠르게 올라가고, 방 안의 사람들은 서로 친한 듯 자연스럽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안부를 묻고 있었다.
공지사항을 다시 한 번 꼼꼼히 읽어본 후,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편의점에 다녀와야 해서 길을 나섰다.
그날 이후, 수진은 핸드폰을 자주 들여다보았다. 혼자 웃는 날이 많아졌다.
오고 가는 농담, 별것 아닌 반응들이 신기하고 자극이 되었다.
최근 수진에게 걸려오는 전화는 스팸 전화뿐이었다. 가끔 친구들과 카톡을 주고받을 때가 있었지만, 그것도 용건이 있을 때뿐이었다.
그렇게 오픈채팅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이었지만, 수진에게는 처음으로 만난 새로운 세상이 큰 자극이 되었다.
이제야 은희가 왜 그렇게 핸드폰을 자주 들여다보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새로운 사람들이 채팅방에 종종 들어왔고, 수진도 이제는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금요일.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아이들 저녁을 차려주고, 남편은 약속이 있어 늦는다는 연락을 보내왔다.
밤 11시 45분.
평소라면 이미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지만, 수진은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낮의 채팅방은 평범했다.
아이들 이야기, 날씨 이야기, 점심 메뉴 이야기.
하지만 밤이 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마치 전혀 다른 방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수진은 손끝으로 핸드폰을 단단히 쥐었다.
야한 농담이 오가는 채팅글.
눈을 떼려 해도, 시선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세 명 정도였다.
그들의 대화는 점점 더 적나라하게 변해갔다.
뽀삐:밤에 피는 꽃
겨울:사랑의 대화
호수:가질 수 없는 너
글을 읽던 수진은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곧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단순한 농담인데, 왜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까.
이건 단순한 장난일까, 아니면…
채팅창에는 끊임없이 글이 올라갔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던 사람 중 한 명이 채팅창에 글을 남겼다.
겨울: 눈팅 나와~
뽀삐: 나와랏,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
겨울: 다 알고 있어.
겨울: 자수하여 광명을 찾아라.
뽀삐: ㅋㅋㅋ
호수: 누구?
겨울: 내가 잡으면 벌칙 있다용.
하나둘 올라오는 글을 바라보던 수진의 손끝이 살짝 떨렸다.
혼자 그들의 대화를 보며 키득거리다가 들켜버린 기분이었다.
커피: 아… 저요.
수진이 채팅창에 글을 남기자 곧바로 반응이 돌아왔다.
겨울: 오~ 신입인가 보네. 커피 반가워.
커피: 네, 저도 반갑습니다.
겨울: 우리만 이야기 나눌 순 없지.
호수: 커피는 어때?
커피: 뭐가요?
겨울: 커피에게 ㅅㅅ이란?
커피: 아…
순간, 수진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곧바로 재촉이 들어왔다.
호수: 커피도 한마디?
수진은 댓글을 쓰려다가 지우고, 다시 쓰려다가 또 지웠다. 망설이고 있는 사이, ‘겨울’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이 질문을 던졌다.
겨울: 우리가 지금 심오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잖아?
겨울: 커피에게 세수란?
호수: 어서?
뽀삐: 1
뽀삐: 2
뽀삐: 3
재촉하는 답변들.
수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댓글을 남겼다.
커피: 빛바랜 추억.
‘ㅅㅅ’이나 ‘세수’는 그들 사이에서 섹스를 뜻하는 은어였다.
그저 가벼운 농담이 오가는 자리였지만, 수진은 어느새 이 대화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었다.
키득거리며 이어지는 대화. 진득한 농담들.
수진은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마치 이 밤이 끝나지 않길 바라는 듯이.
오랫동안 잊고 있던 어떤 감정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화면 속 글자들이 계속해서 수진을 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