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수진
수진과 오리는 가볍게 커피를 마시기로 했지만, 서로 일정이 맞지 않아 결국 약속을 2주 후로 잡게 되었다.
그 사이, 단톡방에서는 새로운 벙개가 공지되었다.
수진은 벙개 공지를 보며 잠시 고민했지만, 지난번보다 더 편해진 마음으로 참가를 결정했다. 벙개 장소가 그닥 멀지 않은 장소라서 마음도 편했다.
벙개 당일, 수진은 설레는 마음으로 약속 장소로 향했다. 약속시간 보다 일부러 10분정도 늦게 도착했다. 한명을 빼고는 모두 새로운 인물들이었다. 자리에 앉자, 토이가 반겨주었고, 옆에는 훤칠하게 생긴 사람이 앉아있었다.
혀니/36/남: 안녕하세요~ 저는 혀니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토이/37/남: 눕, 어서오세요~
커피/40/여: 우와 토이 일찍 왔네. 두 번째 보는구나?
혀니? 반가워.
그리고 세 사람, 도비/39/남, 루카/38/남, 하하/39/여 가 있었다. 도비는 유머감각이 넘쳤고, 대화 중간 중간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띄웠다. 하하는 키가 크고 세련된 스타일이었다. 루카는 말수가 적었지만 조용히 분위기를 즐기는 타입이었다.
도비: 다들 만나서 반가워요~ 제가 먼저 술한잔 따르겠습니다.
루카: 아이쿠 형님,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커피: 오늘은 내가 제일 연장자네. 와우.
처음 보는 사람이 많아 어색할 줄 알았지만, 분위기는 생각보다 활기찼다. 다들 가볍게 술을 마시고, 서로 소개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토이는 수진이 두 번째 보는 거라 개인적인 채팅에서는 적극적이었지만 오프모임에서는 내색없이 편하게 대했다. 혀니는 밝고 활발한 성격으로 금세 분위기를 주도했다. 혀니는 벙개에 나온 사람 중 남자로서는 막내라서 그런지 새로운 사람들을 챙기는 역할까지 도맡았다. 도비는 농담을 던지며 모두를 웃게 했고, 루카는 조용히 듣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말을 건네며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유지했다. 그때 문이 열리며 한 여자가 들어왔다. 미나/38/여 였다. 미나는 또렷한 이목구비와 화려한 스타일이 돋보이는 인물이었다. 그녀가 등장하자 잠시 술렁였다. 남자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미나에게 쏠렸고, 저마다 여기 앉으라며 자리를 양보했다. 미나는 익숙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인물은 건우/39/남 였다. 그는 차분한 분위기의 사람이었지만, 가끔씩 던지는 한마디가 묘하게 사람을 집중하게 만드는 스타일이었다. 벙개 모임에 참여한 사람은 모두 일곱명이었다. 남자 넷, 여자 셋. 우연히 지난 번과 같은 멤버 구성이었다. 남자: 혀니36, 토이37, 도비39, 루카38, 여자: 커피40, 하하39, 미나 38.
각자 앞, 옆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이어갔다. 술자리가 무르익을 수록, 분위기는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미나는 자연스럽게 관심을 받았고, 남자들은 미나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려고 했다. 특히 도비와 루카는 미나의 말 한마디에도 반응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수진은 미나를 보며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도 벙개에서 나름대로 적응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관심이 한쪽으로 쏠리는 걸 보니 조금은 허탈했다. '그래, 예쁘면 뭐든 쉽지.' 순간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스스로 피식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수진은 처음 벙개에 나갔을 때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자리에 녹아들었다. 농담도 하고, 가벼운 대화도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했다.
혀니: 커피눕, 원래 벙개 자주 나오세요?
수진: 아니, 두 번째야. 근데 재밌네! , 도비 술잔 비웠네. 술 받아.
도비: 눕, 감사합니다.
도비: 미나? 신입이라 벙개 처음이지? 어떤 것 같아?
미나: ㅎㅎ 다들 너무 재밌네요!
수진은 순간 자신에게 했던 말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는 그녀도 환영받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미나에게 집중된 느낌이었다. 왠지 모르게 쓸쓸한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태연한 척 했다.
루카: 오늘 분위기 좋네요.
건우: 그러게여, 즐겁고 괜찮네요.
시간이 지나면서 분위기는 더욱 달아올랐고, 몇몇은 노래방을 가자고 제안했다.
토이: 2차 가실 분~?
혀니: 당연히 가야죠! 커피 눕도 가죠?
도비: 한 곡 뽑아야져!
수진은 망설였지만, 분위기에 이끌려 노래방으로 향했다. 노래방에 가니, 남자들이 미나에게 더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누려는 모습이 보였다. 미나는 밝게 웃으며 남자들과 농담을 주고받았고, 도비는 미나 옆에서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웠다. 토이는 아예 미나 앞에서 춤을 추며 분위기를 띄웠다.‘이럴 거면 나한테는 왜 그렇게 다정하게 굴었던 거야?’ 술기운 때문인지 속이 살짝 쓰렸다.
‘아, 갑자기 집에 가고 싶다.’수진은 노래방 자리를 계속 지키려다가 외투를 가지고 가방을 손에 쥐었다. 하하에게 먼저 가겠다고 손을 모아 귀에 대고 말했다. "벌써 가시게요? 좀 더 있다 가시지"하하가 만류했지만
수진은 아이들 핑계를 대며 둘러댔다. 하하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고, 수진은 조용히 노래방 문쪽으로 향했다. 문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미나를 향해 몰려 있는 남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괜히 나왔나...’
가벼운 기분으로 시작했는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텅 빈 느낌이었다. 즐기려고 나왔지만, 들러리가 된 기분. ‘하지만 뭐 어때, 오픈채팅이란 게 원래 이런 거겠지.‘ 수진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택시를 잡는데, 첫 벙개에서 마중 나왔던, 오리와 토이가 생각났고, 입안이 꺼끌 거렸다. ‘그래, 무슨, 내가 여기 연애하러 온 것도 아니고, 그냥 편안하게 친구나 만들고 수다나 떨면 되지 뭐.’
다음날.
토이, 혀니에게 메시지가 왔다. 잘들어갔냐는 안부문자였다. '미나에게는 다들 더 적극적으로 열심히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 메시지가 이어졌다.
혀니: 커피눕~ 어제 잘 들어가셨어요?
혀니;눕 가시는 것두 못 봤어요. 가시는 줄 알았으면 마중 나갈건 데, 죄송해요.
수진은 혀니의 따뜻한 배려에 벙개에서 느꼈던 소외감이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 혀니에게 수진도 개인톡을 이어갔다. 혀니는 이십대 초반에 결혼을 했고, 그 후 아내와는 사이가 좋지 않아서 따로 생활한다고 했다.
토이에게도 개인톡이 와 있었지만 수진은 읽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톡창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또하나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리: 커피야, 벙개 재밌었어? 우리 약속, 시간 정해야지? ㅎㅎ
수진은 핸드폰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수진은 핸드폰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동시에, ‘재밌었어?’라는 말이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과연, 정말 재미있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