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장노아 Noah Jang
Jan 14. 2024
이반과 한지민은 접견실에서 주호영 변호사와 마주 앉았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식사도 안 하고 수염도 다듬지 않은 이반의 모습은 작년에 주연을 맡았던 영화 속 죄수의 모습 그대로였다. 화장기 하나 없이 헐렁한 녹색 코트에 청바지를 대충 걸친 한지민은 약혼자보다 더 초췌해 보였다. 입술도 부르트고 갈라져 있었다. 그녀는 골똘한 표정으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사모님이 계셨다면, 아가씨 손톱에 비트렉스를 또 바르셨을 겁니다."
서류를 들여다보던 변호사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지민은 손을 입에서 떼고 코트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손톱 물어뜯기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버릇을 고친 후 처음이었다. 그녀는 손톱 대신 아랫입술 안쪽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변호사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 통화를 끝낸 변호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강릉 별장에서 피해자 사체를 찾았습니다."
변호사가 말했다.
"그럴 리 없어..."
이반이 고개를 저었다.
"오빠..."
지민이 이반의 손을 꼭 잡았다.
"그날 새벽 별장에 갔었죠?"
변호사가 물었다.
"민우... 민우가 거기서 만나자고 했어요!"
"도련님을 만났나요?"
"오지 않았어요. 기다리다가 그냥 돌아왔어요."
"이번에도 만나자는 사람이 약속을 어겼군요?"
변호사가 허허 웃었다.
"그러고 보니... 대포폰 같아요. 처음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번호 바뀌었냐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어요."
"도련님은 도곡동에 계시는데 왜 강릉에서 만나자고 하셨을까요?"
"민우가 결혼을 반대하고 있고 나를 상대도 안 해서... 먼저 전화해 만나자니 그저 반갑고 고마웠어요. 은희 집에서 나와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고... 뭔가 이유가 있겠지 하고 홀린 듯이 강릉까지 갔어요."
"그럼 서울로 돌아와서 왜 도련님 댁에 가서 따지지 않았나요?"
"민우가 나를 놀렸나 생각했고... 막상 만나려니 두렵기도 했어요."
"두들겨 맞기라도 할까 봐 두려웠나요?"
변호사가 비웃음을 흘렸다.
"아저씨! 그만요!"
지민이 소리쳤다.
"오빠, 강릉 갔었다고 왜 말하지 않았어? 어차피 경찰이 다 알아낼 텐데."
지민이 달래듯 말했다.
"괜히 의심만 살까 봐... 그때는 진범이 잡힐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 말을 경찰이 믿을까요?"
변호사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민우가 사실을 말해주면... 모든 오해가 풀릴 겁니다."
"도련님이 왜 거짓말을 하시겠어요?"
"잘 모르겠어... 왜 은희와 민우가 나를... 두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건 알고 있어. 그런데 누가 은희에게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어. 민우는 아닐 거야. 은희를 사랑하니까. 도대체 누가..."
이반이 생각에 잠겨 중얼거렸다.
"별장에서 사체가 나왔는데도 계속 시치미 뗄 건가요?"
변호사가 차갑게 몰아붙였다.
"아닙니다! 내가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 난 못해요! 절대 아닙니다!"
이반이 소리쳤다.
"영화 속 대사와 똑같군요. 제목은 '회개', 작년 백상에서 최우수 남자 연기상을 수상했죠? 그런데 지금은 한가하게 배우 놀음할 때가 아니에요."
변호사가 빈정댔다.
"난 살인자가 아니야!"
이반이 발작하듯 벌떡 일어나 물컵을 들어 변호사의 얼굴에 물을 뿌렸다.
“난 절대! 절대! 죽이지 않았어! 왜 날 믿지 않는 거야! 난 죽이지 않았어! 아무것도 몰라! 함정에 빠진 거야! 누구 짓인지, 무슨 목적인지 밝혀내 달란 말이야! 내 말을 믿어 주기만 하면 무기징역도 좋고 사형도 좋아!”
이반이 가슴을 치며 소리쳤다.
"난 믿어. 오빠가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알아."
지민이 이반을 다독이며 의자에 앉혔다.
변호사는 차분한 태도로 안경을 벗고 얼굴에 흘러내리는 물을 손수건으로 닦고 옷에 묻은 물을 손등으로 탁탁 털었다. 물에 젖은 안경을 정성스레 닦아 다시 낀 변호사는 이반을 노려보았다.
“잘 들어, 이반. 넌 끝났어. 연기 그만해. 이건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야. 그 잘난 얼굴,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피해자 사체까지 발견된 마당에 누가 기자들 입을 막아 줄까. 너란 존재는 클릭수 올리고 광고비 벌어 주는 재미난 놀잇감일 뿐이야. 시간 끌수록 추문만 더 낱낱이 드러날 거야. 본인이 잘 알면서 왜 그래. 까면 깔수록 속이 아주 시커멓게 썩었던데...”
말투는 점잖았지만 눈빛에는 경멸이 가득했다.
“그만 두지 못해요!”
지민이 소리쳤다.
“아가씨, 저 인간 믿지 마세요. 계획 살인으로 기소될 겁니다. 사체 훼손, 유기까지, 최소 25년에서 40년이고 반성도 자백도 없다면 무기징역이 선고될 겁니다. 조용히 묻을 수가 없어요. 포기하세요. 회장님께서도 더는 용납하지 않으실 겁니다.”
“아버지와 무슨 얘길 한 거죠? 오빠를 평생 감옥에서 썩게 하라던가요?”
변호사는 입을 다물고 서류를 챙겨 가방에 넣었다.
“넌 나 믿지?”
이반이 지민의 두 손을 잡아 자기 얼굴에 갖다 대고 물었다.
“당연하지. 내가 진범 꼭 잡을게.”
"나한테는 아무도 없어. 너밖에 없어."
"걱정 마. 다 잘 될 거야."
지민이 이반의 머리를 어루만져 주었다.
이반은 지민의 품에 안겨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아버지께 말씀드리세요. 이 사건 변호사는 제가 직접 알아보겠다고요. 안녕히 가세요.”
지민은 시선도 주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변호사는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접견실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