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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노아 Noah Jang Jan 08. 2024

그날 일 다 알고 있어

연수는 경찰서 앞에서 택시에서 내렸다. 기자들과 유투버들과 이반의 팬들이 여전히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유명인 관련 사건이 으레 그렇듯 인터넷엔 온갖 음모론과 엉터리 정보와 가짜 뉴스가 넘쳐났다. 여러 유투버들의 주장에 따르면, 한지민은 간밤에 청담대교에서 투신했다 구조됐고 이반은 이미 저 세상 사람이었다. 이른 새벽 유치장에서 목을 매 자살했기 때문이다. 시체안치소에 누워 있는 이반의 사진도 돌아다녔는데, 과거에 출연한 영화의 한 장면을 짜깁기한 것이었다. 조작된 흔적이 역력한 수십 개의 녹취록도 돌아다녔다. 기자들은 이반과 이은희의 지인이라고 나선 사람들의 인터뷰를 따서 마약, 치정 등을 암시하는 자극적인 기사를 써댔다. 소녀 팬들은 추위에 떨며 조잡한 피켓을 흔들고 울고 소리치고 서로 얼싸안고 위로했다.


연수가 기자들 무리를 지나치는데 누군가 연수의 이름을 불렀다. 김현희 기자, 연수의 중학교 동창이기도 했다. 단짝이었던 연수와 수아 틈을 비집고 들어오려 애쓰며 수아를 질투한 적도 있었다. 수아 사건으로 재판할 때, 기묘하게도 강간살인범인 연수의 부친을 옹호하는 듯한 증언을 했다. 그 후 연수는 현희를 쳐다보거나 대꾸하거나 언급하지 않았다. 지방국립대 국문학과에 들어갔고 대학 졸업 후 신춘문예 단편소설로 등단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끔 우연히 마주치는 동창들이 아무 관심도 없는 현희의 소식을 전해주곤 했던 것이다. 선수 시절에 태릉 선수촌으로 현희가 편지를 보낸 적도 있었다. 읽지도 않고 봉투째 찢어버렸다. 연수가 경찰이 된 후, 한 언론사의 사회부 인턴 기자가 되었다며 경찰서에 찾아오기도 했다. 문학소녀였던 현희는 이제 선정적인 제목으로 클릭 장사를 하는 삼류 인터넷 신문사의 열정적인 기자로 살고 있었다. 


연수는 현희를 무시하고 걸음을 빨리했다. 현희가 달려와 대자로 팔을 벌리고 앞을 가로막았다.

"국과수엔 왜 갔어?"

현희가 물었다.

"꺼져."

연수가 현희의 어깨를 밀치며 내뱉었다.

"한민우 집에서 가져간 거 유전자 감식 맡겼지?"

현희가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연수는 걸음을 멈췄다.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경진이나 과장님이 말했을 리 없는데. 주위를 한 바퀴 빙 둘러보았다. 경찰서 건너편에 비상 깜빡이도 켜지 않고 정차해 있는 흰색 아반떼가 눈에 띄었다. 그제야 한민우의 집으로 향할 때부터 미행이 붙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흔하디 흔한 차종과 색상이라 두어 번 거슬린다고 생각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연수는 아반떼를 향해 손가락 욕을 날렸다. 아반떼가 천천히 자리를 떴다.

"임의제출은 아닐 텐데?"

현희가 물고 늘어졌다.

"유류물 압수야. 신경 꺼."

"네 아빠 때처럼 누명 씌우려고?"

현희가 비웃음을 띠고 말했다.

연수가 달려들어 멱살을 잡았다. 현희가 팔을 휘저으며 과장된 비명을 질렀다. 기자와 유투버들이 사진과 동영상을 찍으며 우르르 몰려들었다. 연수는 현희를 놓아주고 경찰서 계단을 올라갔다.

"친구야! 나 그날 일 다 알고 있어!"

현희가 까르르 웃으며 소리쳤다.


연수를 기다리는 것은 박인곤 서장의 호출이었다.

"한민우 잘 만나고 왔나?"

"네."

"먹어. 견과류가 피부 미용에 좋아."

인곤이 아몬드가 담긴 접시를 연수 쪽으로 밀며 말했다.

"안 좋아합니다."

연수가 접시를 다시 밀었다.

"뭐 좀 건졌나?"

"별 거 없습니다."

"그러면 국과수엔 왜 갔어?"

인곤이 오도독 아몬드를 씹으며 물었다.

현희와 똑같은 질문이었다.

"그 친구 이번 사건과 아무 관련 없어. 건들지 마."

연수는 배후에 있는 사람이 한재구 회장일 거라고 생각했다. 미행을 붙이고 기자를 동원하고 서장을 통해 압박할 정도면 한민우에게 뭔가 있는 게 분명했다.

"이반이 한민우를 지목했으니, 기본적인 수사는 필요합니다."

"참고인 조사 한 번이면 충분해."

"이은희가 한민우 집에 있을 가능성이..."

"또 그 타령이야?"

서장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국과수 결과가 나오면, 압수수색 영장을..."

연수가 말했다.

서장이 껄껄 웃고는

"기자들이나 유투버 눈에 띄지 않게 행동 조심해."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워낙 대박 사건이라 걔들이 온갖 것 끌어다 떠들어댈 거야. 담당 형사에 대해서도 이러니 저러니 할 수 있다는 거지. 특히 자네 아버지 사건 말이야."

"그게 무슨..."

연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요즘 같으면 자네 집안도 가루가 될 때까지 털렸어. 험한 꼴 안 당하려면 경거망동하지 마. 마지막 경고야."

서장은 나가라는 손짓을 하고 창가로 걸어가 밖을 내다보았다.


사무실로 돌아온 연수는 황급히 출동하는 동료들과 마주쳤다.

"동선 파악됐어!"

경진이 말했다.

"누구?"
연수는 경진을 따라 달리며 물었다.

"이반이지 누구야! 그날 새벽 강릉 별장에 갔었어! 이은희 사체 유기장소!"

경진이 답했다.

연수는 멍하니 멈춰 섰다.

"뭐 하냐! 얼른 가자!"

뒤따라 달려온 원호가 재촉했다.  


늦은 오후 형사기동대차와 과수팀 차량이 이반의 별장에 도착했다. 별장은 앞으로 동해 바다가 보이고 뒤로는 오대산 풍광이 펼쳐진 사천 해변 언덕 위에 있었다. 담이 높아서 건물 1층은 보이지 않고 2층과 전망대가 설치된 건물 옥상만 보였다. 대지 면적 300평 정도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어디서 정보를 얻었는지 지역 방송사 취재차량들과 기자들이 이미 와 있었다. 강릉경찰서 형사과에서 지원 나온 강력팀이 현장을 통제하고 수색 준비를 서둘렀다. 미니굴삭기 두 대가 별장 안으로 들어갔고 뒤이어 사체탐지견팀이 도착했다. 과수팀과 형사들이 본채와 정원을 오가며 수색을 시작했다.


연수는 별장 관리동에서 관리인이자 정원사인 박진호와 대화를 나눴다. 60대 후반인 그의 얼굴은 오랜 세월 햇볕에 그을린 농부처럼 가무잡잡하게 윤기가 났다. 웃음 많은 사람 특유의 눈가 주름이 깊이 파여 인상이 푸근했다.

"CCTV는 원래 없었나요?"

연수가 물었다.

"평소에는 개들을 마당에 풀어놔요. CCTV보다 나아요. 그거는 나중에 도둑 잡는 거지만, 개들 있으면 애초에 침입을 못해요. 훈련받은 경비견이거든요."

“일한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4년 정도요.”

“상주하시나요?”

"제 집에서 마누라랑 장모님 모시고 살아요. 걸어서 15분 거리요. 아침 아홉 시에 출근해서 오후 다섯 시에 퇴근해요."

"목요일 새벽에 이반 씨가 왔었는데 알고 계셨나요?"

"몰랐어요."

“여기 전에는 어디서 일하셨나요?"

“젊을 때부터 한 회장님 댁에서 일했어요. 정원사로요. 폐암 수술받느라 그만뒀었는데, 건강 회복하고 지민 아가씨가 여기 일을 주셨어요. 사실 일이랄 것도 없어요. 정원이나 가꾸며 소일거리 하라고 배려하신 거지요. 이 별장이 원래 아가씨 소유예요. 2년 전에 이반 님께 선물하기 전에요."

"두 사람 자주 왔나요?"

"자주 오셨지요. 언덕 꼭대기에 있는 데다 담이 높아서 사람들 시선 피해 편히 쉬다 가셨어요. 스키 시즌에도 오시고요."

관리동 옆 견사에 갇힌 경비견 세 마리가 쉴 새 없이 사납게 짖어댔다.

연수는 한민우 집에서 보았던 셰퍼드가 떠올랐다.

"개들은 어디서 데려온 건가요?"

연수가 물었다.

"민우 도련님 댁에 있던 녀석들이에요. 개를 워낙 좋아하셔서 어미가 낳은 새끼를 다른 데 안 보내고 전부 키우셨죠. 전문기관에 보내 제대로 훈련도 시키고요. 미국 가시기 전에 여기 세 마리 보내셨어요. 두 마리는 미국에 데리고 가셨고요."

진호가 답했다.

"한민우 씨를 보면 짖지 않겠군요?"

"짖기는커녕 반가워 죽을 걸요."
"최근 한민우 씨가 별장에 온 적 있나요?"

"안 오셨어요. 그런데... 땅을 저렇게 막..."

진호가 걱정스레 창밖을 바라보았다. 

경찰들이 탐침을 찔러대며 정원 곳곳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연수의 머릿속이 다시 복잡해졌다. 드러난 증거와 정황에 따르면, 서장 말대로 한민우는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다. 그러나 한민우를 보고도 짖지 않을 개들이 이반의 별장에 있다. 단순한 우연일까. 연수는 현희가 한 말이 떠올랐다. '네 아빠 때처럼 누명 씌우려고?' 한민우와 이은희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누명을 썼다는 이반의 말에 지나치게 감정을 이입한 탓일까. 이반이 그날 별장에  것은 사실이다. 이은희의 사체가 발견된다면, 이반의 단독 범행으로 수사가 종결될 것이다. 연수는 박진호와 인사를 나누고 관리동을 나섰다.


그때 누군가 호루라기를 마구 불어댔다.

"찾았다!"

여러 사람이 외쳤다.

연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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