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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노아 Noah Jang Feb 23. 2024

누가 거짓말쟁인지 잘 생각해 봐

지민은 경찰서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반 앞에서 꾹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젖혔다. 별 하나 없는 캄캄한 하늘에 반토막난 금반지 같은 가느다란 초승달이 떠 있었다. 코트 소매로 눈물을 닦던 지민은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마침 주차장을 빠져나가려던 차 한 대가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렸다. 지민이 비켜서자 운전자가 차창을 열고 투덜거리며 바깥에 침을 뱉었다. 평소 같으면 무례한 인간에게 불같이 화를 냈겠지만, 지민은 멀어지는 차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차에 탄 지민은 절친인 박유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유나는 친구들 중에서 이반에게 가장 호의적이었고 결혼식에서 부케를 받기로 했었다. 대법관을 지낸 유나의 외조부는 국내 3대 로펌 중 하나인 솔송의 대표 변호사였다. 지민은 변호사 선임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유나는 할아버지께 여쭤보고 알려주겠다고 했다. 이반이 체포된 후부터 수면을 제대로 취하지 못했던 지민은 답장을 기다리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누군가 차창을 똑똑 두드렸다. 한 회장의 비서 조동훈이었다. 지민은 냉랭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휴대폰을 확인했지만 유나에게서는 소식이 없었다. 동훈이 차창을 또 두드렸다. 지민은 무시하고 차를 출발시켰다. 그가 성큼성큼 걸어가 앞을 가로막고 섰다. 지민이 차를 세우자 여유로운 표정으로 조수석에 올라탔다. 

"아빠가 보냈어요?"

지민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물었다.

"아직도 이반을 믿니? 별장에서 이은희 사체가 나왔는데도?"
동훈이 어린애 어르듯 말했다.

"민우 오빠 짓이야."

지민의 단호한 태도에 동훈이 웃음을 터뜨렸다.

"실없는 소리. 민우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면서."

"전에도 사람 죽인 적 있잖아..."

지민의 말에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오빠 고등학교 2학년 때. 나 아빠가 여기저기 통화하는 내용 다 들었어. 조 비서님, 그때 그 사건 담당 검사였잖아. 내가 모를 줄 알아요? 죽은 남자, 나중에 자기색정사라고 기사 났더라. 오빠는 경찰 조사 한번 받고 끝이었고. 이번엔 사고나 자살로 못 꾸미니까 이반 오빠에게 뒤집어 씌우기로 했죠? 아빠랑 조 비서님이 사건 현장이랑 증거 다 조작한 거잖아. 나 가만있지 않을 거야."

지민이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동훈은 굳은 표정으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만 가요. 피곤해. 집에 가서 쉬고 싶어."

지민이 시동을 걸었다.

"그 남자 죽을 때, 민우와 이반이 함께 있었다는 것도 알아?"

그가 입을 열었다.

"거짓말하지 말아요!"

지민이 소리쳤다.

"누가 거짓말쟁인지 잘 생각해 봐."

동훈이 차분하게 말했다.

"그 남자도 이반 오빠가 죽였다는 거예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지민은 기가 막히다는 듯 웃었다.

"민우는 혼자 저지른 짓이라고 진술했지만 난 믿지 않았어. 그때도 지금처럼 모든 증거가 이반을 향하고 있었거든. 민우는 부모 형제 하나 없는 친구를 도우려고, 자기가 죽였다고 한 거야. 민우 예상대로 한 회장님이 손을 쓰셔서 아무도 다치지 않았지."

"지금 그게 담당 검사였던 사람이 할  말이에요? 혀 깨물고 죽을 부끄러운 짓을 해놓고는 다들 이반 오빠에게 뒤집어 씌우고 있잖아. 오빠가 왜 일면식도 없는 60대 남자를 죽여? 조동훈 검사님, 사건 덮어주고 얼마나 받아 챙기셨어요?" 

"민우 짓이든 이반 짓이든, 중요한 건, 죽은 그놈, 어차피 사람도 아니었다는 거야."

동훈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 남자 누군데? 오빠들하고 무슨 관계였는데?"

"죽어 마땅한 놈이었어."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미친 소리! 거짓말로 빙빙 돌리기만 하지! 그만해요! 나 돌아버릴 것 같아! 내려요!"

지민이 소리를 질렀다. 

"이반은 널 속이고 있어. 쥐뿔도 없는 그 새끼가 가진 세상 유일한 동아줄이 너니까."

"당장 내려요! 보기 싫어! 아빠랑 조 비서님 내가 평생 저주할 거야! 이반 오빠 내가 어떻게든 누명 벗겨줄 거야! 내려요! 얼른 가 버리라고!"

지민은 동훈의 어깨며 팔을 마구 때렸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 일기장 권을 지민에게 건넸다. 주황색 인조가죽 표지에 검은색 유성펜으로 이은희라고 쓰여 있었다. 

"이까짓 게 뭔데?"

일기장을 낚아챈 지민은 차창을 열고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보나 마나 날조된 일기겠지. 내가 이딴 거에 속을 거 같아?"

동훈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지민의 어깨를 다독이고 차에서 내렸다.


지민은 눈을 부릅뜨고 동훈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지민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침을 삼키려는데 넘어가지 않았다. 목구멍이 칼로 쑤시듯 아팠다. 기침을 심하게 해서 눈물과 콧물 범벅이 되었다. 그때 유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응."

전화를 받은 지민은 겨우 한 마디 했다.

"미안해... 도와주실 수 없대..."

유나가 말했다.

"그런 집안과는 어울리지도 마."

수화기 너머에서 유나의 외조부 목소리가 들렸다.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힘내."

유나가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지민은 옷소매로 눈물과 콧물을 닦았다. 진득한 콧물이 길게 늘어나 소매 끝에 잔뜩 들러붙었다. 지민은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주섬주섬 안전띠를 풀고 밖으로 나가 이은희의 일기장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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