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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노아 Noah Jang Feb 25. 2024

괜한 사람을 의심하고 있었네요

연수는 자정이 다 되어 집에 돌아왔다. 대문 앞에 섰다가 집 근처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피해자의 사체를 마주한 날엔 곧장 집에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다. 고요한 밤,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있자면 피부의 잔주름에 스며든 미세한 혈흔부터 벌어지고 잘려나간 장기 조직까지 세세하게 떠올라 불면증이 더 심해졌다. 신참 때보단 나아졌지만 훼손이 심한 사체는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현장 특유의 공기와 냄새도 지독하게 생생했다. 겨우 잠이 들면 부패가 심하든 아니든 시신이 눈을 뜨고 쳐다보거나 일어나 다가오는 꿈을 꾸곤 했는데, 그들의 모습은 언제나 수아로 바뀌었다. 잠에서 깨면 슬픔으로 가슴이 미어졌다. 연수는 뜨거운 커피를 들고 편의점 창가에 앉았다. 


마지막 퍼즐인 나머지 사체가 발견되면서 수사는 거의 종결되었다. 현장에서 모바일 지문인식기로 확인한 결과, 이은희의 주민등록 지문정보와 일치했다. 작게 토막 나고 심하게 불에 탄 사체는 여러 겹의 김장 비닐에 밀봉되어 세 군데에 묻혀 있었다. 다른 신체 부위와 달리, 오른손 토막의 손가락 끝마디 일부분은 불에 타지 않고 대체로 온전한 상태였다. 수사팀은 범죄 경험이 많지 않은 범인들이 흔히 저지르는 어설픈 실수라고 여겼지만, 연수의 눈에는 신원 확인이 수월하도록 일부러 남겨 놓은 증거처럼 보였다. 손톱 밑에서 극소량의 인체 조직도 발견되었다. 이반의 진술대로 낮에 이은희가 차 안에서 할퀸 흔적이거나, 아니면 살해 당시 이은희가 저항하면서 생겼을 가능성이 있었다.


치밀함과 허술함이 뒤섞인 묘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다. 완벽하게 정리된 집안에 어지러이 남겨진 이반의 흔적, 꼼꼼하게 계산된 CCTV 사각지대 이동과 대조되는 뻔한 사체 유기 장소, 욕조에 덩그러니 남아 있던 발과 손가락 일부만 제외하고 전소된 토막 사체. 혼자가 아니라 성격이 다른 두 사람이 저지른 범행일까. 개들은 분명 냄새를 감지했을 텐데 왜 땅을 파헤치지 않았을까. 주인의 명령을 받은 것일까. 수사팀은 자축 분위기였지만, 연수의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죽이지 않았어요. 믿어 주세요."
연수는 갑자기 들려온 이반의 목소리에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편의점 직원이 켜놓은 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여성 앵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몇 년 전, 유명 배우 이반이 주연을 맡은 영화의 한 장면,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겁니다. 영화 속에서 그는 여러 반전 끝에 친구를 죽였다는 누명을 벗었는데요. 현재 이 씨는 실제 살인 사건 용의자로 구속된 상태입니다. 경찰이 확보한 물증에도 불구하고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지만, 오늘 이 씨 소유 강릉 별장에서 참혹하게 훼손된 피해자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진실 게임은 막을 내렸습니다. 인터넷에서는 이 씨와 피해자의 관계 및 과거 행적에 대한 무분별한 신상 털기와 충격적인 폭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음 달 개봉 예정이었던 이 씨 출연 영화는 무기한 개봉 연기되었고, 촬영 중인 작품도 전면 중단되어 새로운 캐스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전속 계약 광고들도 신속하게 이 씨 지우기에 나섰습니다. 광고 위약금만 100억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계약에 따라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되기 전에도..."

연수는 뉴스를 들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느새 식어버린 커피를 단숨에 마시고 편의점을 나왔다.


패딩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국과수 오희선 과장이었다.

"네가 맡긴 섬유 조각 혈흔, 결과 나왔어."

"아, 오늘 출동이라 잊고 있었어요."

"욕조에서 발견된 사체 토막의 DNA와 일치하지 않아."

"네…."

당연하게도, 한민우의 집 2층에 있던 여자는 이은희가 아니다.

"의혹 해소된 거야?"

"괜한 사람을 의심하고 있었네요."

"의심은 언제나 좋은 거야."
"그런가요..."

"검찰 송치 마무리되면 놀러 와."

"네."

"늦었다. 잘 자."

"주무세요."


이은희가 살아 있고 한민우와 함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은 보기 좋게 처박혔다. 연수는 불면증 탓이라고 생각했다. 잠들지 못하고 생각의 숲을 한없이 헤집고 다니면서 남들은 거들떠도 안 보는 쓰레기 같은 의심만 잔뜩 주워 담고 있었다. 신경이 날카롭고 예민해지는 시기를 지나 점차 물안개 속 난파된 배처럼 떠도는 느낌이 들었다. 현실의 브레인포그 증상과 반대로 겨우 잠들어 꾸는 꿈만은 더 정교하고 길고 생생해졌다. 연수는 약을 끊어야겠다 결심했다.


대문 앞에서 연재가 어떤 여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 밤중에 누굴까. 연수는 손목시계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여자가 연재에게 하얀 종이봉투를 건네주고 웃으며 연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연수는 놀라 걸음을 멈췄다. 현희였다.

"누나!"

연재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뭐 하는 수작이야!"

연수가 달려들어 현희를 밀치고 연재의 손에서 봉투를 낚아챘다.

"당장 들어가!"

연수는 연재를 대문 안으로 떠밀었다.  

"연재, 안녕! 다음에 또 보자!"

현희가 살랑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친년아! 여기가 어디라고 와! 이게 처돌았나?"

"어후, 성질머리 하고는..."

현희가 피식 웃고는 몸을 돌려 골목길로 걸어갔다.


손에 쥔 봉투를 펴서 확인한 연수의 눈빛이 흔들렸다. 보내는 사람 주소대전광역시 유성우체국 사서함 번호가 찍혀 있었다. 연수의 부친이 수감 중인 대전교도소였다. 사서함 아래 낯익은 필체로 '강기덕'이라고 적혀 있었다. 받는 사람은 뉴월드저널의 김현희 기자였다. 연수는 편지를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속이 뒤틀려 구역질을 했다. 조금 전에 마셨던 블랙커피가 위액과 함께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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