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하면 나오는 철없는 말과 행동들
요 근래 내가 감정에 솔직해지려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 깊이 있는 나의 생각을 표현하고 싶은 대로 내뱉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20대 때보다 더 버벅거리는 느낌. 마치 그 순간을 떠올리려 또다시 버벅거리는 지금이 그렇다. 나쁘게 말하면 눈치 없이, 좋게 말하면 순수하게 뱉어내며 표현했던 순간은 지났다 생각했다.
아마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순수함을 잃지 않았나 싶다. 직장을 다니고, 그곳에 익숙해지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대학시절 격 없이 술자리를 즐겼던 친구들과의 만남이 적어지고, 대화 주제도 달라졌다. 그래도 취하면 예전처럼 웃고 떠드는 친구들도 많다는 것에 위안을 삼으려 했다. 하지만 계속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고, 순수하게 누릴 수 없었다. 해내야 할 것들이 많아졌고, 지켜야 할 것들도 많아졌다. 그 책임감들은 순수함을 누릴 권리를 앗아갔다. 내 머리와 가슴 한편엔 이런 생각들이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일을 잘해냈다는 성취감, 성장하고 있다는 도취는 나의 경직을 연화시키지 못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찌들어가다 예상 밖의 순수함을 마주한 적이 있다.
“후레쉬 하나 주세요.”
“나 처음처럼인데?”
솔직히 말하면 뭐든 상관없다. 하지만 대학시절 이것 때문에 자그맣게 다투거나 따로 소주를 시켜 마신 친구가 있다. 이 대화가 나온 뒤에 느꼈다. 날 배신했다고 생각한 순수함은 아직 남아있다는 것을. 내가 생각하는 순수함이란 일반적인 사회의 시선에 반해 때묻지 않은 표현을 하는 것이다.
굳이 “나 처음처럼인데?”라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그 친구와의 주문에서 습관처럼 튀어나왔고, 순수함은 회상을 떠나 현재로 넘어왔다. 그렇게 우리는 예전처럼 각자의 술을 시켜 마셨다.
오래된 술집에 계신 아저씨들의 대화와 행동을 보고 들으며 순수함을 느낄 때도 있다.
“야, 너 요새 운동한다며 팔씨름 한 판 하자.”
“왜 그러냐? 한주먹 거리도 안되는 게?”
대화만 보면 내가 생각한 순수한 시절과 다를 게 없다. 생각해 보면 우린 겉모습만 늙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순수함을 잃었다는 생각은 그저 내 겉모습과 생활만으로 판단된 게 아닐까? 사실 순수는 날 배신하지도 않았고, 날 떠나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그저 마음속 한편에서 내가 끄집어내길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술은 그 순수함을 끄집어내주었다.
시험기간에 찌든 대학생을 보는 사회 초년생, 상사 스트레스를 받는 초년생을 보는 30대, 일에 찌든 3,40대를 바라보는 중년, 자식 걱정에 한숨을 켜는 중년을 보는 노년.
모두가 서로를 순수하게 보고 있지 않을까? 아마 순수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모든 순간들이 순수하지 않을까?
다음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예전처럼 철없이 대화를 나눠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