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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비늘 Oct 18. 2021

절제의 자유

Ray Brown의 Girl Talk 연주를 들으면서

초등학교  이 좋게 관현악단 제2 바이올린 들어갔다. 다지 하지 못했고,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과 잡담 즐겨했. 그러던 중 콘트라베이스 파트 사람들과 친해지고 선생님이 권유시자, 멋있어 보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올린보다 10배는 더 큰 악기로 옮기게 되었다. 계기는 정말 단순했고, 준비는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활을 켜는 방법도 다르고, 집는 줄도 훨씬 더 굵고, 심지어 음역대도 달랐다. 무모한 결정 하나로 그날부터 나는 첼로 뒤쪽으로 자리를 옮겨 낮은음 자리표 악보를 읽게 되었다.


보통 베이스를 보면 사람들은 큰 첼로라고 부른다. 그때마다  바로잡기는 하지만,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만큼 흔한 악기도 아니고, 솔로 연주가 많은 악기도 아니기는 하다. 가 유일하게 솔로 연주를 했던 곡  Saint-Saens의 동물의 사육제 중 코끼리다. 코끼리가 정말 어울리는 악기. 온순하고 둔해 보이지만 강하고 위협적인 코끼리처럼, 베이스는 눈에 띄지 않고 합주단을 떠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저음역인지라 바로 잘 들리는 악기는 아닌데, 나름의 애정이 있어서 그런지 나는 클래식이나 재즈를 들을 때마다 그 속에서 베이스를 찾는다.

기숙사 친구들과 함께 Little Lion Man을 연주하는 모습이다.

등학교 때는 작은 규모의 수업에서 10명 정도와 함께 연주를 했다. 검은색 셔츠와 바지를 입고 계절마다 강당에서 공연을 했는데, 전 순서는 항상 재즈밴드였다. 기타, 드럼, 트럼펫 등이 어울려 연주하는 밴드 분위기는 래식을 연주하는 우리와는 사뭇 랐다. 졸업 직전에 합주할 기회가 생겨서 스윙 재즈 파트를 맡게 되었는데,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재즈 공연을 했다. 활이 아닌 손가락으로 Pizzicato와 비슷하, 그러나 더 강하게 소리를 내라는 선생님의 주문을 받았다. 몸을 맞대는 베이스의 새로운 울림이 낯설었지만, 그때의 느낌은 아직도 여운이 남는다.


음계를 오가며 베이스를 연주하는 것을 Walking Bass라 한다. 앞으로 숙여 짚은 손가락이 높은음까지 내려가며 선을 만든다. 그리고 그 선율은 엇박자와 섞여 해진다.  연주는 얼핏 보면 방임으로 보이기도 한다. 제각각 도취되어 자기 음 내는데 열심이고, 지휘자가 없어 갈 곳을 잃은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조금 더 느껴보면 대화의 언어 들린다. 연주자들은 모험을 하되 벗어나지 않고, 현란하지만 기교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즉흥 연주를 할지라도 천번 이상 했던 음계 연습을 바탕으로 하는 것을 보면, 그 속 재즈만의 절제와 규칙이 있음을 알 수 있다.

New York 유명 재즈바 Village Vanguard 공연 10분 전 모습이다.

재즈는 미국 New Orleans 지역에서 흑인들이 유럽 음악의 틀을 바탕으로 시작한 장르다. 20세기 초부터 섞이고 변화해온 이 장르는 스윙 재즈, 쿨 재즈로 시작해 이제는 유럽과 아시아에도 정착했다. 종차별이 만연했던 시대에도 재즈는 기존 벽을 넘나드는 성격처럼, 인종과 무관하게 미국 사회에서 퍼져나갔다. 요즘 "힙하다"라는 말로 한국에서 쓰이고 있는 "Hipster"라는 단어는 당시 재즈 연주자나 즐겨 듣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재즈는 자유로운 영혼들의 것이었고, 그만큼 흡수와 성장이 빠른 음악이기도 했다.


비록 직접 연주해본 것은 불과 한 번 뿐이지만, 정해진 마디를 만족하지 못하고 비집고 나오는 이 음악에 강하게 이끌렸던 것 같다. 나는 재즈바 공연에서 본능적으로 연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감탄한다. 무의식에 자유로이 연주를 맡기려면 그만큼 몸이 기억하고 있어야 하고, 그 몸은 절제되고 단련되어야 한다. 이미 수십만 번 오르락내리락했던 줄 위에서 굳은살이 배긴 손은 제자리를 찾아가듯 춤을 춘다.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고 한 발짝 한 발짝 내딛는 박자를 맞추어간다.

Hudson 강가에서 베이스, 기타, 드럼이 연주 중이다. 그 옆에서 탭댄스도 함께 한다.

평평해 보였던 도 비가 오면 그 작은 기울기에 따라 웅덩이가 생기고 물이 흐른다. 그리고 소에는 보이지 않았던 굴곡이 드러난다. 재즈도 비슷한 것 같다. 음계 연습에 몰두하던 연주자들이 음과 박자로 대화를 시작하면, 그 음표들이 내려앉은 자리에 그림이 드러난다. 불규칙하고 두서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정교하게 짜여있는 무대다. 러한 재즈를 만날 수 있게 해준 우연의 선택들과 음악을 가르쳐준 모든 인연들에 나는 감사한다.  또한 평범한 내 삶 위로 내려진 비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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