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이야기
가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란 말을 맨 처음 한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그 말을 세상에 처음으로 내놓았을 누군가가 가끔은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나 나름 올 한 해를 열심히 보냈다고 자부하지만 막상 내게 ‘구체적인 수확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우물쭈물 대답을 머뭇거리게 될 것 같다.
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곁눈질을 해 보면 모두가 나보다는 한걸음 앞선 것 같고, 제자리라도 감지덕지일 내 위치는 오히려 작년보다 더 뒷걸음질 쳤다는 생각마저 든다.
라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이맘때의 사연들 역시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드디어 결실의 계절 가을입니다, 저는 이걸 했구요, 저는 이걸 이뤘네요, 칭찬해 주세요.’ 그저 부럽기만 한 남들의 결과 보고에 매일 뼈가 아프다. 과연 나는 올 한 해 동안 무엇을 이루었을까?
마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1월부터의 일기장을 펼쳐 놓고 단 하루도 허투루 살지 않았다며 항변하고 싶지만, 구구절절 적혀있는 것들은 그저 변변찮은 과정의 기록일 뿐, 제대로 된 결과물은 없다. 스스로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바 바르게 살면 된 거지 싶다가도 이건 무슨 70년대 새마을 운동 표어도 아니고, 바르게 사는 것은 누구에게나 기본일 테니 그런 뜬구름 잡는 소리 말고, 남에게 제대로 보여주고 인정받을 수 있는, 그럴듯한 결과물이 없을까 자꾸만 뒤적이게 된다. 하지만 허탈하다.
사 사분기가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라고, 남은 시간들을 애써 끌어 모아 날짜 수를 따져보지만 그래 봤자 그 기간 동안에 폼나는 성취물이 나올 여지는 딱히 없어 보인다.
아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이 생각난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삼십 대는 시속 삼십 킬로, 사십 대는 사십 킬로, 오십 대는 당연히… 하지만 체감하는 일상의 속도는 그것보다 훨씬 더 빠른 것 같다. 호랑이 해가 밝았다며, 호랑이처럼 세상을 호령하며 살자고 덕담을 나누던 것이 엊그제인데 벌써 시월 하고도 중순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시간 참 빠르다. 더 부지런히 살아야 하는데...
자 자꾸만 의기소침해지고 자신감을 잃는 것 같다며 친구 윤철이는 안주 대신 소주잔만 연거푸 비워댔다. 짐짓 아닌 척했지만, 나 역시 윤철이와 마찬가지 심정이었다. 우리가 치르고 있는 인생 시험은 문제의 순서만 다를 뿐, 결국엔 같은 과목이기 때문이다.
차 차의 배기량, 집의 평수, 연금 적립액, 주식 보유액, 그것들의 변화가 내가 이룬 결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친구보다 더 가지게 되었다면 열심히 산 것이고, 아무리 최선을 다했어도 기준치에 미치지 못하면 대충 산 것이 되는 걸까? 아둔한 나로서는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겠다.
카 카페의 구석자리에 앉아 일찌감치 올해를 정리해 본다. 원하지 않았던 상처가 유난히 많았던 시간들이었다. 친구와 지인들의 격려가 아니었다면 결코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래서 반드시 좋은 마무리를 해야 한다.
타 타이트한 계획을 다시 짰다. 시월이 이십여 일 남았고 거기다 십일월과 십이월을 모두 더하면 대략 팔십일 정도가 남은 셈이다. 바보는 늘 계획만 짠다는데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바보 소리조차도 못 들을 거라며 스스로를 격려한다. 다이어리에 죽죽 그어지는 빨간 줄은 연초에 세웠던 계획들이다. 남은 시험이라도 잘 치면, 적어도 평균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싶다.
파 파이팅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파이팅이다.
하 하루하루가 아쉽다. 그러나 후회는 절대 하지 말고 반성은 이미 충분하다. 남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다시 한번 열심히 달려보기로 한다. 늦었다 하더라도 아직은 가을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