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으면 서럽다더니 별게 다 어렵다
살이 찌거나 운동이 부족하다 느끼면 뛰는 삶을 살아왔다. 무슨 자극을 어디를 줘야 한다는둥, 운동 그렇게 하는거 아니라는둥 하는 소리들도 듣기 싫었고, 부실한 몸뚱이로 남들 옆에서 자극받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그래도 뛰면, 금방 살이 빠지거나 체력이 붙는게 느껴졌었다. 30대 까지는 그랬다는 소리다.
40대 중반이 넘어 뛰는걸 다시 시작해보니 이거야말로 신세계였다.
다리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신체부위에서 경고음을 보내온다.
폐는 심장과 함께 수근거리며 나를 싸늘하게 쳐다본다. 마치, 왜 이런짓을 하느냐는 식이다.
비염이 생긴 코는 숨쉬기를 거부한다. 산소가 필요한건 내가 아니라는 식이다.
그렇게 나온 결과가 정말 믿기지 않는 페이스였다.
난 분명 뛰었는데, 겨우 6~7km 뛰는 동안 1km당 8분의 페이스가 찍혔다. 빨리 걷는것과 큰 차이가 없다.
몇 년 만에 뛰는거니까. 조금 자세를 신경써서. 금방 좋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뛰었는데, 두달이 지나도록 발전이 없었다. 위기의식을 느꼈다거나 자존심이 상했다는 문제를 넘어서서 어이가 없었다. 노인들이 뛰기 어려워 하는 것 처럼, 나에게도 일찍 뛸 수 없는 몸이 찾아왔나 싶어서.
세 달이 걸려 겨우 겨우 5분 초반대의 페이스를 찾았다.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이제 사람처럼 뛰는 숫자다. 그걸 해내기 위해 심장의 욕도, 폐의 따돌림도, 코의 파업도 다스려야 했다. 다리의 비명은 무시했다. 달려있으려면 어쩔껀데 하는 마음으로.
겨우 사람처럼 달리려고.
늙으면 여러가지가 서럽다.
원인이 없는 통증이 당황스럽고, 총기가 사라진 뇌가 원망스럽고, 맑은날 보이는 흐린 시야가 분하다.
그런데 뛰는것도 어려워졌을줄은 몰랐다. 걷고 뛰고 메달리고 웅크리는, 살면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동작이 어려운 동작이 된 것이 너무 서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