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에게 줄 시집을 샀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시집도 함께 샀다. 동생은 이제니 시인을 좋아해서 시인의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을 내게 빌려 가서는 책상 아래 두고 작업하거나 공부할 때마다 잠깐씩 꺼내보곤 했다. 그때는 나도 비대면으로 수업할 때라 공부방에서 같이 공부했는데, 책상 아래 제 옆 자리에 시집을 고이 모셔두고 꺼내보는 모습이 아주 귀여웠다. 그래서 "그 시집 외우겠다"라고 했더니 정말 시 한 편을 외우고 있어서 웃겼던 기억이 있다. 갑자기 자리에 앉아 푸른 물이다 푸른 물이다... 하며 시 한 편을 달달 외웠다. 둘이서 깔깔대며 잘 지냈던 기억 중 하나다.
작년에 입원하기 전에 동생에게 심한 말을 했다. 화도 많이 냈었다. 그 뒤로 퇴원하고 왔을 때 동생은 학교에 가 있었고, 아직도 내게 화가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나를 만나려 하지 않기에 마음이 아팠다. 끌어안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한동안 만나주지 않기에 나는 얌전히 기다리기로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를 피하던 동생이 본가에 오기 전에 엄마에게 '언니를 봐도 괜찮아'라고 했을 때 무척 기뻐하면서 나는 자취방으로 도망을 왔다. 너무 오래 떨어져 있어서 마주치기가 조금 두렵다. 다들 이해 못 하겠지만 나는 그렇다. 자취방에 있는 <프랑켄슈타인>을 찾는다기에 보내주려다가 시집도 한편 주려고 교보문고에 가서 이제니 시인의 지난 시집을 샀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라는 시집인데 내용은 만나면 읽은 다음 물어보려고 일부러 펼쳐보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시집을 주는 습관이 있다. 보통은 읽었던 시집 중에서 고르는 편인데 동생은 이제니 시인의 글을 무척 좋아했어서 이번은 그냥 읽지 않은 시집을 사주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려고 산 <내가 원하는 천사>는 순전히 제목 때문에 골랐다. 같이 지내고 있으면 꼭 제멋대로인 아기 고양이 같은 사람인데, 나는 그 모습이 순진한 천사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고에서 보자마자 꺼내 손에 쥐어들었다. 그날 교보문고 시 서고에는 사람이 유독 많아서 시집 구경하기가 불편했다. 그래도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 무척 성의 넘치게 골라왔다.
그리고 제일 그 시집을 고른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인 허연 시인의 시집이었기 때문이다. 허연 시인의 <오십 미터>를 페이지가 바랠 때까지 봤던 터라 내가 내용을 신경 써서 보지 않아도 내용이 괜찮을 거라 믿고 있다. 순전히 내 생각이긴 하지만. 그렇게 믿고 있다. 여러 사람에게 시집을 주었는데 다들 시집을 받고는 무척 기뻐했다. 내 주변 사람들은 책이나 글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 시라고 하면 뜬금없다고 생각했는지 생각도 않은 선물이라며 기뻐하며 받아주었다.
시집을 고를 때 좋은 시가 많은 시집으로 신경 써서 골라주는 편인데 아쉽게도 여태껏 동생만 시집에 대한 이야기를 내게 돌려주었다. 빌렸던 시집을 가지고 와서 " 야 이거 미쳤어 엄청 좋았어" 라며 들떠서 이야기를 하곤 했다. 다음 생일에는 읽었던 시집들을 모두 필사해서 모은 노트를 주었으면 좋겠다고 넌지시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급하게 필사하려는 중이다. <내가 원하는 천사>는 음, 그 사람은 너를 닮은 시집을 사 두었다니 자기가 처음 펼쳐보겠다며 먼저 읽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래도 들춰볼까, 하다 조금이라도 티가 날까 봐 조용히 시집을 내려두었다. 그냥 같은 시집을 새로 사서 볼까 한다.
이번에 시집을 주려고 한 두 사람은 모두 성격이 자유로운 고양이 같은 사람들이라 조금 더 그 사람에게 시선을 두고 시집을 골랐다. 내 마음에 드는 것보다는 그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주려고 했다. 마음에 들어 하면 좋겠다. 마음을 주고 온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 사실을 이렇게 가끔 배운다. 평소 뜬금없는 선물을 자주 하는데 나는 그런 식으로 평소의 마음을 건네고 온다.
마음 같아서는 순서대로 고양이 2번, 1번으로 부르고 싶은 두 사람인데 (1번은 심지어 아기 고양이다) 나름 감각 있게 고르려고 노력한 작고 엷은 책을 어떻게 받아줄지 모르겠다. 교보문고에서 나왔을 때는 하늘이 다 지고 어두운 밤이었는데 내 마음은 아직 나른한 봄날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혼자서 재미있는 일을 벌인 것 같아 기뻐했을 텐데 그날은 나름 느긋한 기분을 느꼈다. 나도 나이 먹고 커가고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