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하프 이야기
더운 여름이 물러가고 공연의 계절이 다가왔다. 음악은 날씨와 절기에 상관없다지만 연주는 가을에 더 잘 어울린다. 누군가가 연주하는 곡이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결을 타고 흘러오면 그것은 연주장 안에서 듣던 곡과 다르게 들린다. 깊어가는 가을의 분위기와 청명한 푸른 하늘은 분명 음악에 msg인 것이다. 지난 주에 곽정 선생님의 하프 공연을 다녀왔다. 연주를 듣는 내내 그랬지만, 하프만 보면 제인 오스틴이 떠오른다.
제인 오스틴은 초턴에 거주할 당시 커샌드라 언니에게 자주 편지를 보냈다. 그녀가 보낸 편지 내용 중에 제인의 사촌인 엘리자 오스틴이 파티를 준비하면서 하프 연주도 끼워 넣었음을 알 수 있는 구절이 나온다. 당시에 개인이 집에서 주최하는 파티에서 하프 연주자의 수요가 점차 많아졌다고 한다. 하프 연주자를 초대할 수 있는 집은 경제력도 있어야 하고, 그만큼의 교양과 인문학적 소양이 갖추어져야 하는 집이다.
엘리자는 혼자 산책을 나갔어. 그녀는 지금 할 일이 태산이야. 파티 날짜가 잡혔고 거의 다 되었지. 돌아 오는 목요일 저녁에 대략 80명을 초대했고 아주 근사한 음악을 준비하려고 전문가 다섯을 초대했는데 아마추어들을 비롯해 그중 셋이 글리 가수야. 패니도 이 연주를 듣겠지. 준비한 것 중에 하프 연주도 있어서 난 아주 기대가 커. (19세기 영국에서 보낸 편지 중에서, 154)
엘리자 오스틴처럼 우아하게 집안을 꾸미고 파티를 열면서 큰 즐거움을 누린 인물은 <이성과 감성>의 레이디 미들턴이다. 소설에서 언급된 그녀의 경제력은 집안에 하프를 두거나 하프 연주자를 부를 정도임을 유추할 수 있다.
레이디 미들턴은 식탁이나 집안 살림을 우아하게 꾸미는 것에 자부심이 컸다. 파티가 있을 때마다 이런 종류의 허영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얻었다. 그러나 존 경이야말로 사교를 통해서 훨씬 더 내실 있는 만족을 얻었다. 그는 저택에 다 수용도 안 될 정도로 많은 젊은이들을 주변에 끌어 모으고는, 시끄러우면 시끄러울수록 더 즐거워하였다. 그는 인근의 젊은이들한테 고마운 존재였다. 여름이면 늘 차가운 햄과 닭고기를 먹는 야외 모임을 열었고 겨울이면 집에서 개인 무도회를 자주 열어서 아무리 춤을 추어도 모자랄 열 다섯 살을 넘긴 여성이라면 누구에게난 충분할 정도였다. (47)
당시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연주와 노래는 여성 교육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피아노나 하프 등의 악기를 연주하려면 집에 악기를 구비할 정도로 수입이 있어야 하기에 여성이 악기 교육을 받았다는 것은 상당한 경제적 수준을 갖추었음을 의미했다. <오만과 편견>에서 매우 부유한 귀족 부인 캐서린 영부인은 엘리자베스 양에게 이런 점을 강조해서 말한다.
"연주와 노래도 하나, 베넷 양?"
"조금 합니다."
"오호! 그러면, 언제 연주와 노래를 들려줘도 좋겠군. 우리 피아노는 굉장히 훌륭한 거야. 어디 내놔도 이보다 나은 건 아마.... 언니와 동생들도 연주와 노래를 하나?"
"하나가 하지요."
"왜 모두 배우지 않았지?" 모두 배웠어야지. 웨브 씨네 딸들은 모두들 연주를 하는데, 그 아버지는 수입이 아가씨 아버지만큼 많지도 않은데 말이야. 그림은 그리나?"
"아니요. 전혀 못 그립니다."
"뭐? 아무도?"
"그것 참 희한한 일이군...."(234)
제인 오스틴 소설에서 자신이 받은 음악 교육, 특히 하프 악기를 소유하고 있으며, 하프 연주를 할 수 있음을 은연 중에 자랑하는 인물이 있다. <맨스필드 파크>의 메리 크로포드이다. 그녀가 버트람 경과 주고 받는 대화에서, 자신의 하프가 잘 도착했다는 말을 전하는 대목이 나온다. 지금도 하프를 이동하기 위해서는 이동비용이 상당히 드는데, 당시에는 오죽했을까 싶다. 왠만한 작은 마차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며, 비올 것을 대비하여 가리개가 있는 큰 마차(예를 들어, 버루슈:19세기 유행하던 개폐형 덮개가 있는 사륜 쌍두마차로 마부석이 밖에 따로 있고 이인용 좌석 두개가 마주보고 있다)를 이용해야 했으니 상당한 돈을 지불했을 것이다. 메리가 전하는 하프의 행방에 대한 이야기는 상당히 의도가 있는 말이다. 얼핏보면 그냥 일상의 대화 같지만, 에드먼드를 겨냥한 일종의 하프 플러팅이다. 자신은 하프를 연주하는 교양있는 여자이고, 원하면 언제든지 하프를 마차에 실어서 옮길 수 있는 재력있는 여성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버트럼 씨." 그녀가 말했다. 마침내 제 하프의 행방을 알게 됐어요. 무사히 노샘프턴에 도착했다네요. 한 열흘 전에 도착했나 봐요. 맨날 물어봐도 아직 안 왔다고 정색을 하더니 말예요." 에드먼드는 기쁘고 놀라운 마음을 표시했다. "사실은 우리가 너무 노골적으로 알아본 게 탈이었어요. 하인도 보내고 직접 가 보기도 했으니까요. 런던에서 70마일이나 떨어진 이곳에선 그런 방식은 안 통하는 줄도 모르고요. 그러다 오늘 아침 드디어 소식을 입수하게 되었죠. 이곳다운 방식으로 말예요. 어떤 농부가 하프를 보고 방앗간 주인한테 전했고, 방앗간 주인이 다시 푸줏간 주인에게 전하자 그 집 사위가 가게에 전갈을 남긴 모양이에요."(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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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차차 이곳 풍습에 익숙해지겠지만, 돈이면 다 된다는 런던의 격언에 물든지라, 이곳만의 완고한 시골 관습에 처음엔 좀 당황했어요. 아무튼 내일은 하프를 실어 올 거에요. 마음씨 좋은 헨리 오빠가 자기 버루슈로 실어다 주겠다네요. 그만하면 하프에도 누가 되지는 않겠지요?"
에드먼드는 자기도 하프를 좋아한다면서 곧 연주를 들려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패니는 하프 연주를 들은 적이 없어서 꼭 듣고 싶어 했다. (88-89)
버트럼씨 댁에 얹혀 사는 에드먼드의 사촌인 패니는 지금까지 하프 연주를 들은 적이 없다. 집이 가난하여 그녀에겐 음악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조차도 없었다. 패니가 부유한 버트럼씨(버트람 경은 패니의 이모부이다) 댁에 머물다가 친정 집을 잠시 방문했을 때 느끼는 비참함은 가난함에 찌들어 사는 가족들에 대한 연민 이상이다. 어린 동생들로 인해 시끄러운 집안, 가정 경제에 무심한 아버지, 육아로 인해 늘 피곤해 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맨스필드의 이모 집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녀의 무의식에는 이모 집을 방문한 메리 크로포드의 세련된 매녀와 음악적 취향에 대한 부러움과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친정 집 동생들은 크로포드 남매가 누렸던 교육이나 하프와 같은 고급 악기 교육을 전혀 받을 수 없다는 좌절감이 그녀의 무의식에 깊에 배어있다.
<에마>에서 프랭크 처칠과 약혼한 사이인 제인 패어팩스는 아름다운 용모에 노래도 잘하고 피아노도 전문가 수준으로 잘 치는 여성으로 나온다. 누군가가 그녀가 머무르는 베이츠 양 집에 피아노 포르테를 선물로 보내는데, 하이베리 사람들은 누가 보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모두가 제인을 후원해온 캠벨 대령이 보냈을 거라고 추측하는데, 나중에 밝혀진 건 바로 프랭크 처칠이었다. 그녀에 대한 그의 애정의 표시였다. 제인 패어팩스는 매우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로 묘사된다. 그녀의 음악적 기량에 대해 하이베리 사람들은 크게 칭찬하고 에마 우드하우스 조차도 제인의 연주 실력을 인정할 정도이다. 제인의 피아노 연주는 단순한 취미 정도가 아니라 나중에 가정교사가 되었을 때 그녀의 교양을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능력으로 언급되고 있다. 엘튼 부인은 제인에게 조언하면서 그녀가 하프까지 연주한다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내 자기를 잘 알지, 잘 알아. 아무 자리나 받아들일 거야. 그렇지만 내가 좀 더 까다롭게 굴어야지. 선량하신 캠벨 부부도 틀림없이 나와 똑같은 생각일 것이야. 그만큼 뛰어난 재능이면, 상류층에 들어갈 권리가 있어. 음악적 지식만으로도 얼마든지 자기 편에서 조건을 제시하고, 원하는 대로 많은 방을 쓰고, 바라는 만큼 그 댁 식구들과 어울릴 자격이 충분한 걸. 다시 말해...글쎄 나도 잘 모르지만...하프도 안다면, 아마 틀림없이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을 거야. 그렇지만 자기는 연주만 아니라 노래도 하잖아. 그래 자기라면 하프를 몰라도 얼마든지 조건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아."(435)
<오만과 편견>의 10장에서 빙리 씨의 여동생인 캐롤라인은 다아시에게 그의 여동생의 하프 솜씨를 칭찬한다. 다아시의 경제력과 신분을 보면 그의 집안은 하프를 충분히 연주할 만큼 음악에 소양을 갖춘 집안임을 알 수 있다.
"누이동생 분께 하프 솜씨가 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기뻐한다고 좀 전해 주세요. 또 동생 분이 그리신 아름답고 조그만 탁자 도안은 정말 황홀할 지경이라고..."(69)
제인 오스틴은 소설에서 교양있는 여성을 묘사할 때 하프를 연주할 수 있거니 하프를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여성으로 그리고 있다. 당시에 결혼한 여성이 자신의 집에서 하프 연주자를 초대하면서 열었던 파티에 제인 오스틴이 초대받았고 연주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제인 오스틴은 하프를 연주해 봤을까 궁금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