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be master of what is mine own.
『말괄량이 길들이기(The Taming of Shrew)』는 우리 막내딸이 매우 좋아하는 셰익스피어 희곡이다. 책꽂이에 꽃혀 있는 이 책을 몇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말괄량이를 길들이게 하는 과정이 매우 재미있어서라고 하니, 딸의 반응에 나도 한번 더 읽어 보게 된다. 이 희곡은 독립적이고 다혈질적인 여주인공 카타리나가 남자 주인공 페트루치오에 의해 사회적, 가부장적 틀에 맞게 ‘길들여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말괄량이 길들이기』 2막 1장에서 베로나의 신사 페트루치오는 카타리나를 아내로 삼기로 마음 먹으면서 다음과 같이 그녀를 길들이겠다고 선언한다.
"I will be master of what is mine own.
She is my goods, my chattels; she is my house,
My household stuff, my field, my barn,
My horse, my ox, my ass, my any thing."
"나는 내 것의 주인이 될것이다.
그녀는 나의 재산이요, 나의 가구이며, 나의 집이자,
나의 집안살림이며, 나의 들판이요, 나의 헛간이며,
나의 말, 나의 소, 나의 당나귀, 나의 모든 것이다."
길들이기에 대해서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이야기는 『어린 왕자』에서의 길들이기이다. 어린 왕자가 지구에 도착해 여행하던 중에 들판에서 한 여우를 만나게 된다.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길들인다는 것'의 의미를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
"너는 아직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어.
나는 너에게 아무 의미도 없고.
나는 너에게 수많은 여우들 중 하나일 뿐이야.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는 거야."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길들인다는 건 관계를 맺는 거야.(To tame” means “to establish ties.)"라고 하면서 관계 맺기가 길들이기의 핵심이라고 말해준다. 여우는 이어서 "사람들은 진실을 잊어버렸어. 하지만 넌 잊지 마.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해."라고 말하면서 길들이기에는 책임과 유대감이 있음을 강조한다.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 카타리나에 대한 페트루치오의 길들이기는 책임과 유대감이라기 보다는 가부장적 종속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가부장적 종속관계의 길들이기만 있었다면 이 희곡의 매력은 상당히 사라졌을 것이다. 페트루치오가 카타리나를 길들이기 위해 티격태격하는 과정에서 두 인물 모두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페트르치오의 승리처럼 보이지만, 카타리나의 숨은 의도와 전략이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카타리나의 변화는 독자들을 놀라게 하는데, 그녀가 고분고분 순종하는 모습은 일종의 연극적 장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 또한 페트르치오의 전략에 대응하는 변화된 그녀의 모습인 것이다.
어떤 희극보다 흥미로운 이 작품을 좀 더 읽어보자. 페트루치오의 길들이기 전략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의 길들이기 전술들을 살펴보면 아첨, 심리적 압박, 언어 조작, 욕구 통제, 예측불가능한 행동, 굴복 강요 등이 있다. 페트루치오는 카타리나가 매우 거친 성격의 여성임을 알면서도 처음 만날 때 "당신이 거칠고 새침하고 우울하다고 들었지만, 지금 보니 그건 완전한 거짓이었네요. 당신은 상냥하고, 장난기 넘치고, 정말 공손하잖아요.”라면서 그녀에게 아첨하는 듯한 말을 한다. 이 아첨의 말로 카타리나는 페트루치오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한다.
페트루치오는 카타리나가 무슨 말을 하든 그 말을 왜곡하거나 반대로 해석한다. 자신의 뜻에 굴복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페트루치오가 하는 말을 보자. “그녀가 고함을 질러도 난 솔직히 말할 거야—그녀는 꾀꼬리처럼 감미롭게 노래한다고. 그녀가 찡그려도 난 말할 거야—그녀는 아침 장미처럼 맑고 아름답다고.” 카타리나가 불평하면 그것을 오히려 칭찬으로 돌려버리겠다고 말하고 있으니 페트루치오는 통상적인 말의 규칙을 전도하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언어 조작이다. 카타리나의 감정과 태도를 부정하고 그 위에 자신의 해석을 덮어씌움으로써, 그녀를 혼란스럽게 하고 자신에게 굴복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심지어 페트루치오는 카타리나의 인간적인 기본 욕구도 제어하려고 한다. 그녀가 먹거나 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거나 방해함으로써 그녀를 매우 피곤하고 허기지게 만들어서 결국에는 정신마저 약화시키려는 것이다. 4막 1장의 다음 대사를 보자.
페트루치오:이렇게 교묘하게 지배권을 잡아 놓으면 어쨌든 성공할 거야 내 매는 지금 지독하게 굶주려 있지. 밤에 달려들 때까지는 배부르게 먹이지 말아야지. 배가 부르면 마음대로 길들일 수 없으니 말이야...아내는 오늘 아무것도 안 먹었지. 물론 앞으로도 못 먹게 할 테야. 그리고 어젯밤은 한잠도 자지 못했지. 물론 오늘 밤도 못 자게 해야지. 아까 그 고기와 마찬가지로, 잠자리에 대해서 생트집을 잡아 베개는 저리, 이불은 이리, 요는 저리, 모두 내던져 버려야지....
페트루치오는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보여주면서 카타리나를 불안하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결혼식 날에 엉뚱한 차림으로 나타나거나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이 바로 그런 전략이다. 여행 도중에 햇빛을 보고도 달빛이라고 우기면서 카타리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이에 대해 당신이 옳은지, 내가 옳은지 옥신각신 하면서 기준을 혼란스럽게 하고 결국에는 그의 기준에 동의하게 만든다. 5막 4장의 대사의 일부를 보자.
페트루치오: 자, 갑시다. 이제 당신 친정집도 그리 멀지 않소. 그런데, 거참 밝고 맑은 달이구먼!
카타리나: 달이라고요? 해에요. 지금 달빛 이야기가 왜 나와요!
페트루치오: 나는 달이 그만큼 빛난다는 말이야.
카타리나: 나는 해가 그만큼 밝게 빛난다는 말이에요.
페트루치오: 아, 내 어머니의 아들, 바로 나 자신에게 결코 단언하지만 저건 달이요, 별이오, 아니, 내가 바라는 전부요. 적어도 당신 친정집에 도찰할 때까지는. (하인에게) 여봐라, 말 머리를 돌려라...일일이 내게 반하는 구먼, 반대할 줄밖에 몰라!
호르텐시오:(작은 목소리로 카타리나에게) 그렇다고 해두세요. 안 그러면 어느 세월에 도착할지 모르니까요.
카타리나: 그럼, 제발 갑시다.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달이건 해건, 뭐건 좋아요. 뭐하건 촛불이라고 하셔도 좋아요.
페트루치오: 글쎄, 달이라니까.
카타리나: 네, 달이에요.
페트루치오는 카타리나의 선택권을 제한함으로써 그녀를 자신에게 굴복시키려 한다. 4막 3장에서 재봉사가 가져온 모자, 옷, 장신구 등에 대해서도 이것은 이래서 안되고, 저것은 저래서 안된다면서 카타리나가 원하는 옷이나 장신구를 주지 않는다.
카타리나: 나는 이렇게 좋은 물건은 처음이에요. 모양도 좋고, 유행에도 맞고, 어디로 보나 마음에 들어요. 당신은 나를 꼭두각시 대접할 참이세요?
페트루치오: 글쎄 말이오, 재봉사가 당신을 꼭두각시 대접을 하고 있구려.
재봉사: 아닙니다. 나리께서 부인을 꼭두각시 대접하신다고, 부인이 말씀하셨습니다.
페트루치오: 이런 건방진 자식, 거짓말 마라! 이 실오라기 같은 자식, 골무 같은 자식, 석 자, 두 자, 한 자 정도, 두 치 아니, 고작 서 푼밖에 안되는 누더기 헝겊 조각 같은 자식, 겨울철 귀뚜라미 같은 자식아, 그래 내 집에 와서 실타래를 휘두를 참이냐? 썩 나가, 넝마 같은 자식, 눈곱만한 실오라기 같은 자식아, 어물어물하고 있으면 네 자로 갈겨줄테다! 죽는 날까지 그렇게 서서 조잘댈 참이냐? 아씨의 옷을 이렇게 못 쓰게 만들어 놓는 법이 어디 있어.
루센티오와 비앙카의 결혼을 축하하는 잔치가 벌어지는데 페트루치오는 다른 남편들에게 자신의 아내가 가장 순종적이라며 내기를 제안한다. 조건은 아내들을 불렀을 때 누가 가장 순순히 남편의 부름에 응하느냐이다. 누가 먼저 왔을까. 루센티오의 아내, 호르텐시오의 아내는 오지 않고 페트루치오가 아내를 부르자 카타리나가 즉시 등장한다. 심지어 카타리나는 다른 아내들을 데려오라는 페트루치오의 명령에 순순히 따르기까지 한다. 이어서 카타리나는 복종의 미덕에 대해 다른 여성들에게 긴 연설을 한다.
카타리나:...남편은 그대의 주인이며 생명이고, 수호자이며, 머리, 군주에요. 아내를 걱정하고 아내를 편히 해주려는 생각으로 바다에서나 육지에서 뼈아프게 일을 하시잖아요...남편 발목 밑에 손을 갖다놔요. 남편이 바란다면 저는 순종의 증거로 언제든지 남편 앞에 엎드릴 생각이에요.
이 연설, 요즘 세대의 젊은여성들이 본다면 거부감을 일으킬 말인지도 모르겠다. 과연 카타리나는 진심으로 변화된 것인가, 아니면 페트르치오의 전략에 일시적으로 응한 것인가. 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그런데 페트르치오의 말도 안되는 행동과 엉뚱한 말들을 가만히 들어보면 카타리나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누구보다 기가 세고 사나운 카타리나 또한 그의 마음을 알았기에 그녀 스스로도 내적으로 성장해간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는 내 것의 주인이 될것이다"는 카타리나를 길들이기 위한 페트르치오의 호언장담 같은 말이지만, 5막 2장의 마지막 부분에는 카타리나의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카타리나 또한 "내 것의 주인"이 되기 위해 연극 배우처럼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고, 페트루치오의 전략에 응해주면서 마치 길들임을 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그녀도 자신의 것을 성취한 것이다. 페트루치오만 "내 것(카타리나)의 주인"이 된 것이 아니라, 카타리나 역시도 "내 것(페트루치오)의 주인인 셈이다. 페트루치오 또한 카타리나의 길들이기 전략에 들어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