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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ㅈㅐ즈애플 Jul 12. 2021

여름의 별미, 미역국

    덥다. 캐나다는 분명 추운 나라라고 했는데 막상 살아보니 여름에는 여느 동남아 못지않다. 캐나다에서 보내는 일곱 번째 여름이건만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다. 이십 달러짜리 선풍기에 바짝 붙어 재택근무를 하고 있으니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작년 여름이 그립다. 에어컨 빵빵한 사무실에서 일하며 춥다고 벌벌 떨며 카디건을 걸치고 있다가 퇴근해서는 신나게 캠핑을 갔다. 도착하자마자 호수로 달려가 풍덩 몸을 던지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수영을 실컷 하다가 뭍으로 나와서 맥주를 마시고 텐트로 기어들어 가 나른한 몸을 눕혔다. 그렇게 한참을 빈둥거리다가 배가 고파지면 모닥불을 피워 코리안 바비큐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친구들과 밤새워 떠들었다. 그런데 이놈의 코로나 때문에 올해는 그럴 수 없다. 이인 이상 집합 금지 명령에 국립공원 야영 금지, 거기다 나와 친했던 각국의 친구들이 제 나라로 돌아가는 바람에 이 여름을, 이 조그만 아파트에 갇혀서, 나 홀로 보내고 있는 것이다.


    안 그래도 처량해 죽겠건만 갑자기 걸려 온 엄마의 전화에 서러움마저 더해진다. “생일인데 미역국은 먹었어? 예전에는 여자 친구가 끓여줘서 얻어먹더니 아직도 사귀어?” “차였으니까 묻지 마~” “너 사랑에도 코로나니? 그럼 미역국은 어쩌냐?” “아우, 내가 알아서 할게 걱정 마셔!” 캐나다에 온 뒤로 국물 있는 음식은 거의 해먹지 않았다. 국을 끓이면 일단 한 솥, 아까워서 꾸역꾸역 먹다 보면 이내 질리고, 버리기에는 아까워 회사에 도시락으로 싸가자니 번거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미역국을 끓여보려 한다. 더위를 뚫고 한인 마트에서 사 온 미역을 물에 불리는 동안, 국거리용 소고기에 다진 마늘과 참기름 맛술 간장을 넣어 달달달 볶고, 어느 정도 볶아졌다 싶으면 물과 불린 미역을 더해 보글보글 끓이다가, 중간중간 맛을 봐가며 소금과 액젓으로 간을 하는데, 국은 역시 오래 끓여야 제맛. 국물이 진해질 때까지 끓이고 또 끓이려니 어휴, 더워 죽겠다. 문이란 문을 다 열어 놓았는데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사실, 이깟 미역국 안 먹어도 그만이다. 그럼에도 기를 쓰고 미역국을 끓이는 건 어렸을 때 엄마가 해줬던 이야기 때문이다. 엄마는 나를 임신하기 전 이미 두 번의 유산을 겪었다. 몸이 미처 회복되기도 전에 나를 가져서일까. 엄마는 나를 낳으며 거의 죽다 살아났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런 엄마를 위해 가만히 있어도 더운 한 여름에 뻘건 불 앞에 서서 미역국을 끓이셨다. 그런데 철이 없어도 너무 없었던 엄마는 할머니의 정성 어린 미역국을 뜨거워서 못 먹겠다며 투정 부렸다. ”시끄러! 잔말 말고 어여 먹기나 해!” 할머니의 불호령에 땀을 뻘뻘 흘리며 미역국을 먹었다는 엄마의 이야기가 머릿속을 맴돌아 자연히 미역국을 끓이게 되는 것이다. 어렸을 적에 밥투정을 부리다가 할머니에게 여러 번 혼이 나 본 나는 할머니가 얼마나 큰 목소리로 엄마를 혼냈을지 안다. 겁 먹은 표정으로 미역국을 후후 불어 식히는 엄마의 얼굴도 상상이 돼 웃음이 킥킥 나온다.

    

    고소한 냄새가 온 집안에 풍긴다. 커다란 대접 가득 미역국을 담는다. 캐나다에 산 지 오래된 탓에 이게 한국에서 먹던 미역국인지, 아니면 한국을 그리워하는 교포가 재해석한 미역국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그래도 고기를 듬뿍 넣어서 그런지 감칠맛도 나고, 뜨거운데 시원하고 시원한데 뜨겁기도 한 걸 보면 제대로 끓인 모양이다. 할머니도 우리 엄마한테 미역국을 끓여 줄 때 고기를 많이 넣었을까? 지금의 나보다도 어린 나이에 땀 흘려가며 미역국을 삼키던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 할머니 눈치를 보며 미역 좀  잘게 잘라 끓여주지 하고 구시렁거렸을 것만 같다. 엄마는 미역국을 먹을 때 땀이 뻘뻘 났다고 했는데, 수십 년이 지나 같은 날 미역국을 먹는 내 눈에서는 왜 눈물이 뚝뚝 날까? 국 한 그릇 먹고 땀 한 바가지 쏟는 이 여름이 지긋지긋하다. 그래도 일 년에 한 번, 엄마를 생각하게 해주는 날이 있는 이 여름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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