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H마트에 갔어요. 다섯 살쯤으로 보이는 꼬마가 '골든'을 크게 부르는 걸 들은 거예요... 그 꼬마가 'born to be!!"라고 노래하는데... 라디오에서 우리 노래가 나오는 것도 나오는 건데, 아이 입에서 나오는 노래를 직접 듣는다? 그것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H마트에서? 그냥 울어버렸죠."
케데헌 헌트릭스 조이 역의 레이 아미가 지미 펠런쇼에 나와서 전한 에피소드다. 25년 H마트 전체 광고 예산으로 거둔 성과보다 지미 펠런쇼에서 감성적인 스토리텔링을 한 레이 아미의 인터뷰가 몇 배는 더 큰 성과를 거뒀을 것이다. 이후 H마트가 인터뷰를 기폭제로 삼지 못한 건 아쉽지만 인터뷰만으로도 효과는 컸다.
이런 H마트가 캐나다에서 1년 중 가장 붐비는 날이 있다. 그것도 다양한 인종과 피부색의 사람들로 붐비는 그런 날이 있는데, 다름 아닌 12월 25일 성탄절이다.
한국에서 성탄절은 대목이다. 정확히는 성탄절 이브부터 성탄절로 이어지는 매시간 매출이 폭발한다. 젊었을 때 성탄절 이브 명동 성당이 있는 명동 거리를 걸었던 적이 있었는데 발 디딜 틈 없이 인파로 가득했다. 지금도 성탄절은 그 의미를 되새기는 이들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즐겁고 신나게 연말 기분을 내는 편이다.
그런데 캐나다는 정반대다. 대부분의 가게가 성탄절 이브 오후 5~6시부터 문을 닫는다. 그리고 성탄절 당일에는 거의 모든 매장이 셔터를 내린다. 다음 날인 26일 박싱데이 행사 전까지 대략 40시간가량 캐나다는 오프라인에서 돈을 쓰기 힘든 나라로 변한다. 이런 정보 없이 이 시기에 캐나다를 찾은 사람들이라면 당황할 정도다.
한국 사람 입장에서 가장 의아한 부분은 왜 이런 기회를 눈앞에서 놓치는지 일 것이다. 내 경우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이해하기까지는 3년 정도 걸렸다. 한마디로 성탄절 이브와 성탄절은 모두가 가족들과 함께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한국은 돈 쓰는 사람과 돈을 버는 사람이 모두 존재한다면, 캐나다는 돈을 쓰지도 벌지도 않는 대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사회를 권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통념이라면 통념이 자리 잡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까. 분명한 건 모두가 불편을 감수하는 것에 익숙하다는 것. 심지어 토론토 다운타운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가장 인기 있는 디스틸러리 디스트릭트 조차도 성탄절에 문을 닫는다. 필자 집 근처에 있는 캐나다에서 가장 큰 놀이공원인 원더랜드 역시 문을 닫는다. 이 정도면 정말 밖에서 놀고 싶은 사람들조차도 강제로 집에서 놀아야 할 정도인 셈이다.
필자는 H마트 단골이다. 직원들 대부분과 인사 나눌 정도. 필자의 회원번호를 외우고 있어서 멤버십 카드를 보여줄 필요가 없을 직원도 있다. H마트를 좋아하는 이유를 단순하다. 한국에서 쇼핑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 H마트에 가보면 열의 일곱 이상은 한국 사람들이다. 한국 사람에겐 너무 좋은 곳이지만, 캐나다 현지인이나 다른 나라에서 건너온 이민자에겐 덜 매력적일 수 있다. 물론 최근 K팝, K컬처에 이어 K푸드가 유행이긴 하다. 불닭볶음면, 떡볶이, 조미김, 치킨과 같은 메뉴들이 인기가 많은데, 딸아이의 이란 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제품이 '오예스'일 정도다.
하지만 성탄절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입구서부터 사람들도 북적이는데, 흥미로운 것은 정말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로 붐빈다는 것.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각국의 언어들로 정신이 없다. 성탄절인걸 감안해도 손님들 모두의 표정이 유독 좋게 느껴지는데, 여기엔 확실한 이유가 있다. 바로 H마트가 성탄절에 영업하는 유일한 마트이기 때문이다. 성탄절 이외 공휴일에도 캐나다 대부분 마트는 문을 닫지만, 딱 두 곳, 중국 마트와 한국 마트만 문을 연다. 하지만 성탄절엔 중국 마트인 T&T 조차 문을 닫는다. 그래서 이번 성탄절에 방문했을 땐 열의 셋 정도가 한국 사람들이고,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 페르시아어, 힌디어 등 정말 다양한 언어를 쓰는 사람들로 붐볐다. 속으로 '평소에도 이렇게 잘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긍정적인 시선만으로 바라볼 수는 없다. 앞서 언급한 캐나다의 통념과는 다른 업무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국 문화라고 말하고 웃어 넘기기도 개운하진 않다. 하지만 몇 년을 지켜보니 캐나다 사람들에게 성탄절의 H마트는 일종의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였다. 참고로 캐나다는 한국처럼 골목마다 편의점이 있는 구조가 아니다. 주유소마다 있는 작은 가게가 편의점 역할을 대신하긴 하지만,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마트가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휴일을 즐길 준비를 미처 못한 이들이 휴일 당일 간단히 장 볼 곳이 없다. 좋은 사람들과 모였는데 먹을거리와 마실거리가 부족한 이들도 선택지가 없다. 이들 모두가 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바로 H마트다. 이것만으로 성탄절엔 H마트가 오아시스 같은 곳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평소 계산대를 2~3개 오픈했다면, 성탄절엔 5개 넘는 계산대를 모두 오픈해서 빠르게 처리했다. 평소에도 성탄절만큼 잘되는 건 어렵더라도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찾는 매장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미션만은 아니다. 이를 위해 세 가지를 시도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하나, 킬러 상품을 키워보자. 이민 국가 특성상 캐나다 대형 마트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코스트코, 월마트 같이 누구나 찾는 마트이고, 다른 하나는 각 나라 특색이 드러나는 마트다. 후자의 경우 한국은 H마트나 갤러리아, 중국은 T&T가 대표적이다. 결국 한국 제품이 주를 이루는 H마트로서는 코스트코나 월마트가 지향점이 될 순 없다. 따라서 한국 색이 드러나면서도 다양한 고객을 끌어모으기 위한 킬러 상품을 적극적으로 내세울 필요가 있다. 그것도 시즌 상품이 아닌 꾸준하게 밀어줄 수 있는 전략을 갖춘 상품이면 더 좋다. 토론토 한인 페스티벌에 가보면 다른 나라 젊은이들도 많이 찾는데, 이들의 손에는 현장에서 맛본 떡볶이나 짜장면을 들고 있는 재미있는 장면이 연출된다. 킬러 상품은 높은 마진율보다는 보장된 맛이 우선이다. 정말 맛있는 떡볶이가 H마트에 있다면? 케데헌에 나오는 한 줄 김밥의 비주얼에 맛있는 김밥을 H마트에서 즐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한번 더 찾는 마트가 된다. 최근 그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경쟁업체 갤러리아는 조금 먼저 시작했고, H마트도 분식 코너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보여지는 모습이나 프로모션을 보면 킬러 상품으로 밀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구색만 갖춘 느낌이 강하다. 맛도 다른 김밥이나 떡볶이 전문점과 비교하면 아직 부족하다. 다 잘하긴 어려우니 딱 한 제품만이라도 확실하게 각인시킬 수 있도록 시범적으로 해보길 추천한다.
둘, 데이터를 제대로 수집해 분석하자. 적어도 내가 봤을 땐 H마트는 고객 데이터에 대해 수집부터 분석, 실행까지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현재 H마트가 수집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춘 데이터는 멤버십 카드를 만들고 사용하는 사람들의 소비 패턴일 것이다. H마트가 소비 패턴을 분석하고 인사이트를 도출하고 있다면,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상황. 하지만 멤버십 고객으로서 차별화된 서비스를 한 번도 받지 못한 것을 보면, 아직은 걸음마 단계로 보인다. 특히 방문 주기가 긴 외국인 고객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멤버십 가입률이 낮아서 정확한 수치를 파악하는 어려움이 있다. H마트가 중기적으로 고객 다변화, 저변 확대를 노린다면 외국인 고객들의 멤버십 가입을 유도할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이 필요하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간다면, 가입 시 입력해야 하는 정보를 이름과 연락처만 받지 말고, 고객 세그먼트를 할 수 있는 정보를 입력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장치까지 마련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건 H마트에서 고객관리, 마케팅, 전략부서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셋, 직원 구성을 다변화하자. H마트 매니저, 캐셔 직원들 대부분 한국 사람들이다. 상품 진열을 담당 직원 중에 일부 다른 아시아 국가 출신들을 찾아볼 수 있다.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의 논리일 수 있지만, 다양한 고객을 유인하기 위해서는 직원들도 다양해져야 한다. 이 당연한 논리를 필자가 캐나다에서 경험한 적이 있다. 여기서 단골인 카센터가 있는데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곳이다. 4년 전 처음 방문했을 땐 엔지니어 한 명을 제외하고 모든 직원이 한국인 또는 한국인 1.5세대였다. 차를 수리하는 동안 대기 장소에서 사장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눴는데, 사업적으로 늘 고민하는 분이었다. 당시 고민은 사업 확대를 위한 고객 다변화였다. 한국인 단골은 많았지만 한계가 명확했다. 그러다 2년 후 갑자기 모든 직원을 외국인으로 교체했다. 더 많은 고객을 받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다시 2년이 지난 지금, 외국인 고객 비중이 60% 이상으로 늘었다. 직원들도 엔지니어 2명에서 4명으로 늘었다. 그렇다고 한국인 고객이 떨어져 나간 건 아니다. 사장님이 여전히 한국인들을 응대하고 있기에 한국인 고객의 절대적인 수치는 오히려 늘었다. 25년엔 입지가 더 좋은 곳으로 확장 이전했고, 대기실도 마치 카페에 앉은 기분이 들 정도로 인테리어에 신경 썼다. 카센터와 마트는 업종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잣대를 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직접 경험한 카센터의 성공 방정식에서 H마트가 배울 점이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H마트 홈페이지에선 자신들의 미션을 "우수한 제품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을 미국에서 가장 큰 아시아계 슈퍼마켓 체인점이라고 소개한다. 여기서 H마트가 아시아 출신 고객들을 우선 타깃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고객군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직원부터 일부 채용해 보면 어떨까? HR 정책을 건드릴 수 있어 조심스럽지만, 작은 변화로 큰 차이를 불러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H마트가 지금보다 더 잘되길 바란다. 성탄절만 아니라 매일 고객들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 되길 바란다. 지금까지 잘해왔지만 퀀텀 점프를 하려면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H마트에서 이미 준비 중이었다면 다행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2026년이 그 시작을 알리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그래서 다음 H마트에 관한 글을 쓸 때는 그 성공 스토리를 전하는 콘텐츠가 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