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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 방구석 주부 Mar 09. 2023

미국 초등학교 사이언스 프로젝트

D+214 (mar 3rd 2023)

오늘은 딸아이가 학교에 사이언스 프로젝트를 제출하는 날이다. 전에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미국 틴 무비나 미국 어린이 애니메이션을 보면 가끔 등장하는, 그래서 부모로서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그 과제다. 콘텐츠에서는 주로 태양계를 입체로 만들어 가거나, 과학 실험을 한 결과물을 커다란 하드보드지에 작성해 가져가거나 하는데, 이번에 아이에게 내려진 과제는 과학 실험을 한 후, 이걸 디스플레이 보드에 작성해 가는 숙제였다.


보통은 그렇겠지만, 아이들의 숙제는 보통 결과적으로 어른들의 숙제로 그려지곤 한다. 주로 한때 잘 나가던 주인공이 이제는 결혼해서 애 낳고 애 과학숙제나 하고 있다, 뭐 이런 내용이다. 기억나는 장면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앤 해서웨이가 미란다의 아들(?) 딸(?)의 과학 숙제를 만들고 있다가 남자친구에게 타박받았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만큼 미국 사람들에게는 찌든 학부모를 대변하는 것이 바로 이 과학 숙제다.


나도 꽤나 긴장하고 있었다. 뭔가 오래 걸리고 밤새서 만들고 하는 그림을 콘텐츠를 통해 워낙 많이 봐서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기대가 되기도 했다. 늘 판에 박힌 수업과 수업의 연속인 한국의 교육에서 벗어나, 뭔가 체험하고 실험하고 직접 알아가는 과정을 아이가 경험한다는 것이 좋았다. (물론 미드나 영화의 장면을 기대하면서 좋기도 했다만) 


아이의 과학 숙제는 교과 과정에 있는 주제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학교에서 샘플로 보내준 실험 내용만 50개가 넘었다. 그리고 인터넷에 검색만 해봐도 족히 200여 개는 찾을 수 있었다. 잠깐만 읽어봐도 재미있을 것 같은 실험이 정말 많았다. 아내와 난 검색 결과를 둘러보며 오히려 아이보다 더 신이 나서 이야기하기 바빴다.


그런데, 딸아이는 이미 정한 주제로 확고했다.


아이는 과학 숙제를 받자마자 하고 싶은 주제를 정했다. 주제는 ‘풍선을 압정이 있는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 몇 개가 있어야 터지지 않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나와 아내는 엄청 놀랐다. 이렇게 주체적으로 학교의 숙제에 참여하려고 하다니. 그 주제가 좋냐 나쁘냐, 혹은 쉽냐 어려우냐를 떠나 대견스러웠다.


과학 숙제는 꽤나 체계적이었다. 숙제 마감 한 달 전까지 자신의 실험 주제와 가설을 작성해 과학 선생님께 제출하고 이를 통과하면 실험을 진행해 결과를 작성해 제출한다. 마치 아내의 대학원 과정의 논문 작성 과정과 유사하다. 디스플레이 보드 작성 방법도 학회 포스터와 굉장히 유사했다. 초등 교육 과정에서부터 학습 내용에 대한 접근법이 대학원생의 과정과 유사하다는 것이 부러웠다. 어렸을 적부터 습관이 된 사고 체계가 고등 교육을 받는데 더 좋은 습관으로 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이의 숙제 주제가 선생님의 허락을 받지 못했다. 실험을 진행하기가 어렵고, 사진을 찍거나 결과를 표로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다. 물론 여러 가지 조건상 아이의 주제는 초등학생이 모든 변인을 통제하고 결과를 균일하게 내기 어려운 실험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쉽고 어렵고를 떠나 아이가 원한 과제를 진행할 수 있었다면, 아이가 더 의욕적으로 숙제에 임했겠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아쉬웠다.


아쉬운 대로 아이와 난 학교 유인물의 샘플과 온라인에 나온 여러 과제를 둘러보다가 ‘어떤 시리얼이 더 바삭함을 오래 유지하는가’라는 주제로 실험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런 주제가 과학 실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도 신기했다. 다행히 이번 주제는 선생님의 허락을 받았고, 주말 시간을 이용해 온 가족이 동원돼 실험을 진행했다.


일단 나는 장을 볼 때 여러 종류의 시리얼을 구매해야 했다. 다행히 마트에서 시리얼 샘플러(여러 시리얼을 한 번씩 맛볼 수 있는 작은 사이즈의 패킷이 든 박스)를 팔아 이를 구매했다. 그리고 대표 시리얼 중에 하나인 콘 플레이크도 하나 구매했다. 그래서 실험에 동원된 시리얼 브랜드는 총 다섯 개. 그렇게 세 명의 가족이 모두 모여 실험을 시작했다.


내가 아이디어를 내서 바삭함을 측정하는 방법으로는 시리얼을 씹는 음량을 데시벨로 측정하기로 했다. 처음의 씹는 소리의 음량과 우유에 말아 시간이 지난 뒤 씹는 음량을 비교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아이는 직접 시리얼을 씹었고, 아내는 소리 측정, 나는 사진 촬영을 했다. 그렇게 실험은 불과 십여 분만에 끝났다. 


어려운 건 디스플레이 보드를 만드는 것이다. 디스플레이 보드에는 정말 많은 내용이 들어가야 했는데, 실험 주제와 결과 예상 가설, 그리고 실험 방법을 설명하고 결과와 그 이유 그리고 관련 과학 지식을 정리해 작성해야 한다. 이 정도면 시리얼 바삭함에 대한 논문 한 편이 아닐까 싶은데…


이걸 우리 아이가 잘 정리해서 작성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내용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른 친구들은 저학년 때도 해 봤을 텐데, 우리 아이는 처음 하는 것 아닌가. 다른 부모들은 자기들이 어렸을 때 해보기도 해서 도와주기도 쉬울 텐데, 우리는 그렇지도 않다. 그런데 기특하게도 자신이 모든 걸 혼자 작성하겠단다. 아내와 나는 한번 자기가 직접 해보고 이번에 다른 친구들 것을 보고 하면 다음엔 더 발전하고 하겠지 싶어 아이가 스스로 하도록 유도했다.


내가 한 건, 보드를 만들기 전 미리미리 내용을 노트에 작성해 놓도록 잔소리하는 것 정도다. 아이는 학교 아이패드를 이용해 내용을 미리 작성했는데, 그 과정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내용 작성을 딕테이션을 이용해 모두 구두로 작성하는 것이다. 아예 타이핑은 일절 치지 않았다. 새로운 디지털 제너레이션인 건가? 하여튼.


그렇게 첨단 디지털을 이용해 작성을 완료한 내용은 다시 완전 아날로그 방법을 통해 종이를 자르고, 펜으로 쓰고, 풀로 붙여서 완성했다. 프린트를 해서 붙이자 했지만, 자기는 손으로 쓰는 게 더 좋단다. 타이핑도 귀찮다고 안 치더니…


그렇게 제출 마감이 저녁 시간이 되기도 전에, 딸아이는 과학 숙제를 깔끔하게 마쳤다. 그런데 자신도 제법 긴장했었던 모양이다. 보드를 만들기 직전까지는 엄마한테 어떻게 하냐고 무슨 내용을 적냐고 떼 아닌 떼도 쓰더니, 작성을 마치고 나서야 배시시 웃는다. 물어보니 보드가 너무 커서 다 작성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고 한다. 그래도 표도 넣고, 사진도 넣고 하니 제법 그럴싸하다. 아내와 나는 말로만 도와줬지 직접 손으로 해준 것은 없었다. 스스로 마무리를 해낸 아이가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오늘 학교에 들고 갔다. 그런데 꽤나 긴장했었는지 몸에 탈이 났다. 학교에서 구토를 해서 양호실에서 전화가 왔다. 그래서 조퇴를 하기로 하고 일찍 집에 왔다. 혹시 장염과 같은 큰 탈이 있을까 봐 걱정했는데, 그런 것은 아녔고, 약간 위경련 비슷한 모양이다. 하루가 지나자 멀쩡해졌다.


제법 밀도가 있는 학교 과제를 아이가 스스로 잘 마쳐내서 대견스럽다. 그런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그러니, 이렇게 아이가 커가는구나 싶어 괜히 코끝이 시큰해진다.


Photo by Louis Reed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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