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지 않다
폭우 속 100km, 미친 도전이었다. 불꽃은커녕 우비만 입고 돌아올지도 몰랐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는 속담을 되뇌며 내리치는 폭우를 뚫고 통영으로 향하는 길. 어쩌면 헛걸음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마음속에 가득했다. 날씨예보를 끊임없이 구글링 하며 행여 우천 취소 공지가 뜰까 노심초사했다. 통영시는 날씨를 잘 알고 있었을까. 계획은 변함없었다. 불꽃축제는 예정대로 진행된다는 소식. 오직 에어쇼만 취소되었다는 공지가 떴다. 그마저도 "그래, 비가 오는데 비행기가 뜨는 게 더 이상하지!"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는 다행히도 공영주차장에 가까스로 골인했다. 우리가 마지막 차량인 듯했다. 우리 뒤로 들어오려던 차들은 모두 다시 출구로 빠져나갔다. 빗줄기는 여전히 거셌고, 차 안에서 우리는 쏟아지는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마치 우리의 간절함을 하늘이 알아주기라도 한 듯, 빗줄기는 이내 가늘어지더니 곧 멈췄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먹구름 사이로 푸른빛이 번져오고 있었다.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불꽃쇼는 21시 30분부터 30분간 진행된다고 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16시 30분. 무려 다섯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출출해진 배를 채우기 위해 뭐라도 먹어야 했다. 통영 하면 떠오르는 충무김밥을 먹으러 향했다. 예전에 통영에 왔을 때는 충무김밥 맛에 실망한 기억이 있어 걱정했지만, 오늘은 달랐다. 리뷰를 잘 보고 찾아간 덕분일까. 오징어무침은 매콤하면서도 쫄깃했고, 섞박지는 시원하고 아삭했다. 흰쌀밥으로만 채워진 김밥은 이 모든 맛을 담백하게 감싸 안았다. 역시 여행은 향토음식이다.
흥미로운 것은, 아들은 충무김밥에 극구 반대했다. 나는 "여기 통영에는 충무김밥밖에 먹을 게 없어"라는 거짓말까지 하며 설득했다. 순진한 아들은 못마땅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충무김밥을 한입 베어 문 순간, 눈이 동그래졌다. 젓가락질은 순식간에 빨라졌고, 2인분만 시켰던 충무김밥은 곧바로 1인분을 추가해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여행의 참맛은 이렇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오는 것 같다.
빗속을 걸어 다니느라 신발은 이미 축축하게 젖었다. 운동화를 타고 스며든 빗물은 양말까지 적셨다.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 없어 곧바로 다이소를 찾았다. 아들에게 입힐 우비는 구했지만, 신발 방수 커버는 아쉽게도 팔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그냥 찝찝한 상태로 축제를 즐기기로 했다. 어차피 이 비바람을 뚫고 온 것 자체가 도전이었으니까.
행사장으로 가는 길목에는 웬 전세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트로트 가수들의 팬클럽 차량이었다. 요즘 트로트가 대세라더니, 팬덤 문화 역시 대단했다. 전세버스를 타고 우르르 몰려다니며 좋아하는 가수를 응원하는 모습은 진풍경이었다. 각종 굿즈를 사 모으고, 직접 나서서 마케팅까지 하는 그들 열정은 상상을 초월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제 트로트 가수는 노래 실력뿐만 아니라 팬 서비스에 더 집중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 같았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일까. 아니, 주객전도일까. 그들 열정은 어떤 논리나 이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짓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행사장에는 이미 수많은 인파가 모여 콘서트를 방불케 했다. 유료 좌석은 트로트 팬들로 가득 차 있었고, 일반 관광객들은 그 뒤에서 기린처럼 목을 최대한 길게 빼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무대를 지켜봤다.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 뒤로 푸드트럭들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아들 눈이 또 한 번 반짝였다. 오코노미야끼를 아주아주 좋아하는 아이는 단숨에 그 트럭 앞으로 달려갔다.
모든 기다림의 끝. 오코노미야끼의 달콤한 향이 사라지기도 전에 축제 하이라이트인 불꽃쇼가 시작됐다. 30분 동안 하늘을 찢을 듯 쾅쾅대며 터지는 불꽃들은 밤하늘 곳곳에 찬란한 수를 놓았다. 잠시 쉬고 있던 대형 스피커에선 불꽃 폭발에 맞춰 은은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웅장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눈과 귀를 동시에 사로잡는 장엄한 광경에 그곳에 있던 모든 구경꾼들의 마음을 훔쳐버렸다. 아들은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며 빛의 향연에 흠뻑 빠져들었다.
비에 젖은 옷과 인파 속에 묻혀 고단했을 하루였지만, 단 30분의 불꽃쇼는 그 모든 불편함을 깨끗이 씻어냈다. 감동적이었다. 불꽃을 바라보며 황홀경에 빠진 아들 모습은 불꽃보다 더 아름다웠고, 나는 그런 아들을 보며 더욱 깊은 감동을 느꼈다. 곁에 있던 아내 역시 감탄사를 쏟아냈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그날 불꽃은 단순히 터지고 사라지는 빛이 아니었다. 비바람을 뚫고 온 우리 가족의 용기와 그 모든 기다림이 빚어낸 마법이었다. 우리는 그날의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하나 더 쌓은, 그야말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지 않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한 날이었다. 그날의 불꽃은 사라졌지만, 우리 가족의 기억에서는 여전히 찬란히 타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