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으로 뛰쳐나갈 준비가 되었는가
야생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은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다. 사냥을 할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 위험과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주체적으로 살아간다. 반면, 울타리 안의 삶은 다르다. 안전하지만 한정된 선택지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마치 반려견이 주인의 보살핌 아래 주어진 환경을 따르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직장인은 울타리 속의 삶을 산다.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정적인 급여와 혜택을 받으며 살아간다. 조직에 충성할수록 더 큰 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그만큼 자유로운 선택의 기회는 줄어든다. 나 역시 비교적 작은 울타리 속에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만약 나의 역량이 더 뛰어났다면, 더 큰 울타리로 이동할 수도 있었겠지만, 본질적으로 울타리 안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주변에는 야생을 선택한 사람들이 많다. 자영업자, 사업가, 프리랜서들. 그들은 불안정한 시장 속에서 필사적으로 탈출구를 찾아 헤매고, 때로는 승승장구하며 나아간다. 매번 이들을 만날 때면 묘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들과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는 듯하다.
그들과의 만남은 내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게 했다. 나는 정말 지금의 삶에 만족하는가? 아니면 현실과 타협하며 안주하고 있는가? 어쩌면 같은 처지의 직장인들만 만나고 살았다면 이런 고민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내 시야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과 어울리며 배움을 얻는다. 미국의 억만장자 워런 버핏 역시 자신의 성공 비결로 '더 나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을 꼽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들과 어울려야 할까? 그리고 우리의 선택지는 정말 울타리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일까?
한 실험이 있다. 벼룩을 유리병에 가둬놓고 뚜껑을 덮어두면, 벼룩은 몇 번이고 뛰어오르다가 결국 유리병 높이에 맞춰 점프를 조절하게 된다. 그 후 뚜껑을 제거해도 벼룩들은 더 이상 유리병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우리도 이와 비슷한 것은 아닐까? 오랫동안 울타리 안에 머물며 스스로의 한계를 정해버린 것은 아닐까?
선택은 자유다. 다만, 우리의 선택권은 우리가 만나고 경험하는 것들에 의해 결정된다. 지금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는가? 지금 속한 울타리에 만족하는가? 만약 만족하지 않는다면, 울타리 밖의 세계를 경험해 보는 건 어떨까? 언제든 야생으로 뛰쳐나가, 더욱 놀라운 자신을 발견할 기회는 우리 앞에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