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요즘은 연락이 조금 늦는다.
문자창 위에 '읽음' 표시 하나 없는 게 이렇게 오래 머무를 일인가.
처음엔 괜찮았다. 바쁘겠지 뭐. 다들 그러니까.
근데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속 '혹시?'들이 자꾸만 고개를 든다.
혹시 내가 뭔가 실수한 걸까?
혹시 마음이 식은 건 아닐까?
혹시, 그냥 내가 너무 앞서가고 있는 걸까?
사랑은 정말 경우의 수가 많다.
하트 하나에도 설레고, 이모티콘 하나에도 뒤척인다.
답장이 10분만 늦어도 가슴 한켠이 조용히 덜컹인다.
특히 좋아하는 마음이 더 클수록, 상상은 종종 현실을 앞질러 버린다.
기다림은 늘 그렇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이란 게,
정해진 시간표도 없고, 우선순위도 보장받지 않는다.
기다림은 언제나 애매하다.
'이쯤이면 됐겠지...' 싶은 그 순간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기다림은 그 사람을 향한 게 아니라
불안해진 나 자신과의 싸움이 된다.
어릴 적엔 그랬다.
놀이동산에서 줄을 설 때면, 꼭 앞사람과의 간격을 재곤 했다.
"이만큼만 더 가면 탈 수 있어!"
근데 중간에 점검이라도 걸리면 그 짧은 몇 분이 한없이 길어졌다.
그때 알았다.
줄이 길다고,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 무조건 도착하는 건 아니라는 걸.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많이 좋아한다고, 내가 더 기다렸다고
그 사랑이 꼭 내게 오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마음이 소란스러울 때면
일단 내가 할 일을 했다.
글을 쓰고, 커피를 내리고, 운동화를 신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그러다 보면 이상하게도, '답장'보다는 '나 자신'이 더 중요해졌다.
기다리는 동안 내가 나를 놓치지 않는 거.
그게 내가 배운 기다림의 기술이다.
회사 동료 중 한 명은 연인과 장거리 연애를 하고 있다.
시간 차이도 있고, 언어도 다르고, 무엇보다 하루하루가 서로 너무 달라서
연락이 어긋날 때면 자주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든다고 했다.
그 친구는 일정한 루틴을 만든다.
아침엔 러닝을 하고, 퇴근 후엔 자기 계발하기, 그리고 밤엔 짧게라도 책을 읽는다.
무슨 일이 있든 말든, 그는 매일 실행한다.
"그 사람을 기다리면서도 내 하루를 잘 살려고 노력해요."
그 말이 유독 오래 마음에 남았다.
성숙하게 기다리는 건
감정을 없애는 게 아니라, 감정의 폭주를 잘 다루는 일이다.
물론 가끔은 무너진다.
침대 위에서 폰만 들여다보기도 하고,
별일도 아닌데 괜히 서운해지고.
마음은 그렇게 어른이 되지 못할 때도 있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불안한 나를 다독이고, 다시 나답게 사는 선택.
'왜 아직 연락 안 하지?' 대신 '나는 오늘 어떤 하루를 보냈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을 때, 기다림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그건 나를 지키는 태도가 된다.
살다 보면 사랑뿐 아니라 수많은 순간이 기다림이다.
취업을 기다리고, 기회를 기다리고, 누군가의 사과를 기다리고,
혹은 '괜찮아지는 나'를 기다린다.
그 모든 기다림은 내 의지로 조절할 수 없지만,
그 안에서 내가 어떤 사람으로 남는지는 내가 정할 수 있다.
사랑이란 이름의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도,
나는 오늘도 나다운 선택을 한다.
기다림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
기다리는 동안의 나 자신은 지킬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