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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 난민

물리치료사의 마음 이야기(재활과 입 퇴원)

 "한국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난민들은 어떤 사회에서 생활해야 할지 두려움과 불안감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 난민 보호를 위한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와 노력, 난민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최근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주제로 올라온 신문 기사 내용이다. 보통 난민은 본인의 거주지나 국가를 떠나 떠돌아다니는 이들을 지칭하는 말로, 요즘 들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단어 중 하나이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난민 생활의 결과는 다소 비극적이다. 정착할 집도 없고 가족들과 떨어져 살기도 한다. 머무를 곳이 생기더라도 공동체에 섞인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이다. 몸은 정착했을지라도 마음이 정착할 수 없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난민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도 준비가 필요하다. 다른 문화가 들어오는 문제인 만큼 기존 거주민만의 문제로 치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최근 부각된 아프가니스탄 난민 말고도 우리나라에는 오래전부터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난민이 있다. 바로 재활 난민이다.      


 뇌졸중이나 사고로 인해 발생하는 뇌 혹은 척수의 손상은 비교적 중증도가 높은 질환에 속한다.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난 후에도 몸에 남은 장애로 인해 병원 체류 기간은 더욱이 길어진다. 적으면 몇 달에서 길면 몇 년.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병인 만큼 준비 과정도 없다. 하루아침에 집을 떠나 시작된 병원 생활이지만 살기 위해 이어 간다. 환자와 보호자 모두 좁은 공간의 병원 생활이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 다른 병원으로 떠나라는 통보를 받게 된다.

 우리나라 종합 혹은 상급 병원에서 입원 가능한 기간은 보통 길어야 한 달 남짓. 그마저 발병 직후에는 신경과나 신경외과로 전입하여 대부분의 시간을 중환자실에서 보내고 재활은 고작 일주일 정도 받은 채 퇴원하게 된다. 환자가 다 낫지도 않았는데 퇴원을 시키는 병원을 이해할 수 없지만 어쩔 수 있겠는가. 시키는 데로 따르는 수밖에. 본격적인 난민 생활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나마 더 이상의 내과적 관리의 필요가 적거나 6개월 이내, 회복기에 있는 분이라면 회복기 재활병원과 같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있는 편이다. 다행히도 이런 분들은 그리웠던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도 비교적 순탄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지 못한 이들이다. 지속적인 내과적 처치가 필요한 환자는 상급 병원의 입원이 불가피하다. 혹여나 내과나 중환자실 등의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재활병원도 많기에 상급 병원이 아닌 곳에 입원했다가 앰뷸런스를 타고 응급실을 왔다 갔다 하며 마음을 졸이시는 이야기를 다수 듣고는 했다. 그렇다고 상급병원에 입원했다고 마음 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일정 기간이 지나고 나면 인맥이 있지 않은 이상 상급병원에 입원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 앞서 이야기한 회복기의 6개월에서 1년 이내의 시간엔 거의 매달 병원과 병원을 넘어 다니며 난민 생활을 하다가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게 된다면 더 이상의 상급병원 입원은 어려워진다. 그때부터 남은 선택지는 대부분 재활, 요양병원을 떠도는 현실에 발이 묶이게 된다.      


 나는 종합병원부터 상급종합병원까지, 비교적 규모가 큰 병원에서 근무해왔다. 그래서 환자 한 명을 치료하는 기간이 비교적 짧았다. 현재 근무하는 병원은 상급종합병원 치고는 재활병원이 독립적으로 나와 있어 상대적으로 입원 기간이 긴 편에 속한다. 그럼에도 환자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두 달도 채 되지 않으니 기나긴 재활의 여정과 비교하면 정말 짧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일하며 느낀 바로는 재활 난민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사회적 구조에 있었다. 중추 신경 손상 환자의 치료를 위한 가이드라인은 높은 근거 수준에서 환자 본인이 거주하던 지역 사회를 기반으로 치료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일정 기간 병원에서의 관리가 끝나고 나면 실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돌아가 익숙한 환경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지역 사회가 이런 재활 환자를 받아들이고 치료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을 때 가능한 이야기이다. 대한민국은 병원 중심의 치료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대형병원은 특정 대도시를 중심으로 밀집되어 있어 자신이 살던 지역이 아닌 대도시를 찾아가야 한다. 재력이 있다면 입원이 원활할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병원이 아닌 곳에서의 재활 등 치료 자체를 금하는 것도 난민 생활을 이어가게 하는데 한몫한다. 병원을 떠나려 해도 자신이 살던 거주지를 중심으로 치료를 이어나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화장실을 사용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면 실제 자신이 사용하는 화장실의 구조에 맞춰 치료를 받고 연습을 해야 하지만 불가하다. 따라서 병원에서 갖추고 있는 연습용 화장실의 구조에 맞춰서 몸을 적응시킨다. 결국 본인이 사용해야 하는 화장실의 이용을 또 다른 형태로 맞춰야만 한다.

 이와 더불어 지역 사회 또한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과거와 비교하면 많은 부분이 좋아졌다고 이야기할 수는 있으나 장애를 가진 이들의 생활을 공유하기엔 구조도 인식도 아직 미흡한 부분이 많다. 그래서 결국 집으로 돌아가도 자유롭지 못한 생활에 갇히게 된다. 환자와 보호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금 병원을 전전하는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통계에 따르면 뇌졸중 환자의 수는 증가하나 사망률은 감소하고 있다. 이는 재활을 필요로 하는 환자의 수는 늘어남을 의미하며, 나뿐 아니라 주변의 이들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 처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나의 감기가 다른 이의 중병보다 심하게 느껴지듯 타인의 상황이라면 공감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신이 재활 난민이 되어 개인의 문제로만 취급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면 이미 늦는다. 아픈 이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사회적 변화가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생각의 변화이다. 구조적 변화만큼이나 개인의 인식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아픈 이들도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생각의 작은 변화가 사회적 변혁을 만들 수 있다. 정말 한 번씩만이라도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한 번만 나의 일처럼 생각하고 공감해주는 자세와 노력, 난민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있다면 사회는 반드시 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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