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충만 Feb 02. 2021

코로나의 스트레스를 마주하는 자세

[만 매니저 레터. 4] 벌새의 날갯짓 같은 스스러들의 작업

스토리스튜디오 혜화랩(Story Studio, 이하 '스스')은 이야기를 읽고 보고 듣고 만드는 일이 궁금한 12-19세 청소년들을 위한 열린 작업실입니다. 작업실을 찾는 스스러들은 자기 작업을 마음껏 시도하고 꾸준히 지속할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D


스토리스튜디오의 운영자 만 매니저입니다.


스스는 2021년에도 꾸준히 열심히, 또 아주 조심스럽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작년 이 맘 때만 해도 코로나가 이렇게 길게 갈 거라고 생각도 못 했는데 여전히 코로나의 그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1년 넘게 지속되는 긴장감에 어른들도 조금씩 지쳐가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유년시절의 한복판을 코로나와 함께 보내고 있는 아이들은 어떨까요?


코로나는 아이들의 작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소재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스스러 "Lilia"의 작품



스스에는 '무국적 건축'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자기가 가장 오래 머물거나 아끼는 공간을 만들어 보는 활동 입니다. 손쉽게 작업을 해낼 수 있어 처음 온 친구들에게 반응이 좋습니다. 아이들에게 무국적 건축을 설명할 때 항상 질문을 합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요? 코로나 때문에 거의 바깥에 못 나가죠?'라고 물으면 처음이라 데면데면하던 아이들도 마음에 쌓인 게 많아서 그런지 말을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친구들을 못 만나요.", "집에만 있으려니 지겨워요.", "맨날 똑같아요.", "망했어요."


얼굴은 웃고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자못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 시기 '노는 것'과 '친구'를 빼면 뭐가 남을까 싶을 정도로 중요한 것들이죠. "같은 반 아이들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코로나 때문에 친하게 지내기가 어려워요."라고 말한 스스러도 있었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어떻게 친구를 사귀어야 할지 아이가 느끼는 부담과 스트레스가 엿보입니다.


<어린이라는 세계>의 저자 김소영은 한 칼럼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어린이는 이렇게나 오랜 시간 친구와의 만남이 차단된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1년여에 걸친 고립이 어린이에게 어떤 스트레스를 주고 있을까, 나는 걱정이 된다. 물론 어린이도 사회적인 위기 상황을 알겠지만, 감당하기에는 아무래도 어려운 일일 것 같다."


스트레스받으면 한 대 치러 스스에 놀러 오세요!


스스에는 언제부턴가 '스트레스받으면 치세요'류의 아이템들이 하나 둘 놓이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습니다. 남녀 불문 연령 무관 보고 나면 꼭 한번씩은 쳐본 답니다. 또래의 높은 스트레스를 캐치한 영민한 작업자가 잘 팔리는 아이템을 만든 걸까요?


코로나 이후 아이들의 스트레스는 심각한 편이라고 합니다. 인권위의 조사에서는 코로나로 인해 스트레스와 불안을 경험하는 아동은 69.9%이고, 이전에 비해 더 우울한지 묻는 문항에서는 32.4%가 '그렇다'라고 응답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의 보고서에서도 코로나 이전에 비해 걱정이 심해졌다는 아동이 67%나 됐습니다.


스스에 오는 친구들 중에도 몇몇은 스트레스를 호소하기도 합니다. 최근 이유 없는 불면증에 시달린다는 아이, 친구들과 자주 만나지 못하다 보니 소원해져서 나중에 왕따를 당하진 않을까 걱정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술을 자주 먹고 들어와 밤새 잠을 한 숨도 못 잤다는 아이, 어머니가 최근 험한 말을 자주 하고 공부 압박도 심해져 걱정이라는 아이도 있습니다.


최근 단순한 작업을 반복적으로 하는 스스러도 눈에 띕니다. 똑같은 모양의 '단검'을 계속 양산한다거나 하염없이 '지팡이'에 글루건을 바르기도 합니다. 스티로폼 공을 녹여 스트레스 볼을 만든 친구는 며칠 째 같은 작업 중입니다. 어떤 스스러는 분명 지난 번에 봤던 시리즈인데도 올 때마다 틈만 나면 다시 꺼내 보고는 합니다.



틀린 그림 찾기 수준의 동일한 작업을 매번 하기도 합니다.


스스러의 작업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는 온라인 프로그램 '스스러 언박싱'의 첫 타자였던 '눙이'는  노래 가사를 활용한 자신의 그림책 작업을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되게 바빠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상태였어요. 머릿속에 흘러나오는 가사를 그냥 그렸어요.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쓱쓱 그린 그림이에요."


생각해보면 어른들도 스트레스가 극심해지면 온갖 방법을 동원해 스트레스를 풀곤 합니다. 스스러도 스스에서 하는 작업을 통해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글자를 계속 쓰면 마음이 착 가라앉듯이 단순하게 반복적으로 하는 작업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나름의 방법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평소라면 친구들과 만나 맘껏 수다도 떨고 이리저리 뜀박질도 하며 풀었어야 할 스트레스를 스스에서 발산하는 형태의 작업으로 풀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스트레스 곰 한 마리씩 어깨에 매달고 들어오는 스스러가 한동안 작업에 몰두하고 나고 화색이 만연한 채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는 모습을 보는 것도 같은 이유이지 않을까요?


어떤 작품에서는 아이들의 소리없는 외침이 들리기도 합니다. 좀 힘든 날이었구나...


지난 금요일에 '만만한 무비살롱'에서는 영화 <벌새> 보았습니다. 94년을 살아가는 주인공 은희는 성수대교의 붕괴와 사랑하는 선생님의 죽음  자신의 눈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온갖 부조리한 사건들로 인해 애처로운 상태에 처해있습니다. 하루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라디오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은희는 춤이라고 해야 할지 원초적 몸짓이라고 해야 할지 펄쩍펄쩍 뜁니다. 소리를 지르지는 않지만 배어 나오는 신음 속에 울부짖음이 느껴집니다.


그 모습이 제게는 마치 벌새의 힘찬 날갯짓 같이 느껴졌습니다.


저 또한 어린 시절 비슷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비가 흠뻑 내리는 어두컴컴한 날 저는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내달렸습니다. 운동장 한가운데 서서 비를 홀딱 맞으며 인디언처럼 소리를 마구 지르며 쿵쾅쿵쾅 뛰었습니다. 내 안에 무언가 씻겨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요즘 스스에 오는 아이들의 일상은 어쩌면 94년 은희보다 더 혼란하고 스트레스받는 상황일 겁니다.  


스스는 작업실이라 '악악' 소리를 내며 펄쩍펄쩍 뛰는 스스러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 안에 쌓이는 혼란과 스트레스를 오롯이 마주하고 그 마음을 작업을 통해 들여다보려고 하는 스스러들의 꾸준한 날갯짓 소리는 그득합니다. 스스는 조용히 응원해봅니다. 


그럼 다음 레터에서 또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만 매니저 드림.



* 커버 이미지는 스스러 '나미'의 작품입니다.


>> 스토리스튜디오가 궁금해졌다면?



>> 지금, 스토리스튜디오를 만날 수 있는 방법:

1) 스토리스튜디오 인스타그램

2) 스토리스튜디오 공간 방문 예약하기



>> 지난 만 매니저 레터 다시 읽기


[만 매니저 레터. 1]


[만 매니저 레터. 2]


[만 매니저 레터. 3]


매거진의 이전글 형편없어도 멈추지 못하는 작업의 즐거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