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1984년 2월 중순, 남녘 끄트머리 깡촌에서 이불 한 보따리와 숟가락 하나 달랑 들고, 노량진 대성학원에 재수하러 올라왔었다. 겨울에 눈 한번 볼 수 없었던 촌놈에게 서울의 2월 중순 날씨는 너무 추웠다. 녹녹지 않았던 재수생 시절을 우여곡절 끝에 잘 이겨내고, 1985년에 SKY대학 중 한 곳에 입학을 했다.
그런데 그 시절 대학 캠퍼스는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군부독재 타도, 민주화”를 외치는 소리와 함께 매일 데모가 일상사였었다. 대학생 초기에는 이념서클에 가입도 하고 거리 투쟁도 자주 했었는데, 고향에서 고생하시는 부모님 생각이 나서 운동(?) 일선에서는 물러났다. 그렇다고 공부를 한 것은 아니었고, 중간 지대에서 많은 고민을 하였었다. 그러던 중 1987년 그 뜨거운 서울의 봄을 온몸으로 맞이하였다. 6월 항쟁 그 한복판에 나도 있었다.
6월 항쟁 (출처 : 모름)
이때가 내 인생에서 제일 힘들었고, 아프고, 뜨겁고, 차가웠던 시절이었다. 이때 어떤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지는 부모형제와 친한 고향/대학 친구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이 이야기는 아마 앞으로도 하기 힘들 듯하다… 중략…
늘~NOTE
지금 이때 함께 민주화를 부르짖었던 동료/선후배들이 지금 이 나라 최고 권력자들이 되었다. 소위 586/686세대 정치인들인데, 이 분들에게 한번 묻고 싶다. "여러분들이 대학생 때 그렇게 꿈꾸었던 나라를 지금 만들어가고 있는가? 여러분들이 그렇게 타도하고 증오하던 정치인들, 권력자들과 지금 다른가?" 하고.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여야 모두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이제 586 정치인들은 무대에서 내려와 후배들에게 이 나라를 맡기길 바란다. 더 이상 이 나라 망치지 말고...
그렇게 나는 온몸으로 1987년을 보낸 후 이듬 해인 1988년 입대를 했다. 그리고 군대를 제대하고 학교에 복학하여 정신 차리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군대 가기 전에 좋지 않았던 학점을 높이기 위해서 과목별로 재수강까지 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복학 후에는 학교 졸업할 때까지 모두 장학금 받고 다녔다. 개인 과외 하면서 생활비도 내 손으로 벌어가면서 대학 졸업을 했다.
대학 졸업하던 해에, 9년 전 돌아가신 아버님이 “네가 만약 해외 유학 원하면 미국 하와이에 친한 분이 살고 있으니 그곳에 가서 계속 공부하여 석사나 박사 받아라. 아버지가 어떻게 해서라도 뒷바라지해 주겠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하셨지만 나는 우리 집 사정을 아는지라 “아버지 괜찮습니다. 저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직해서 돈 벌 겁니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언론사를 목표로 취업 공부를 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언론사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라 ‘언론고시’로 불렀다. 군대에서 복학한 학과 친구들과 함께(나 포함 총 6명) 언론사 시험공부를 위한 스터디 그룹도 짰었다. 6명 중에 2명이 언론사에 합격을 했고, 나는 언론사 1차 시험에는 몇 번 합격을 했지만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다.
대학 졸업 하기 전 일반 회사 합격도 되었지만, 언론사에 꼭 들어가고 싶어서 취업 재수까지 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 언론사는 계속 떨어지고(지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인간만사 새옹지마^^), 지금 다니는 이 회사에 최종 합격을 하게 되었다. 이 회사도 처음이 아니라 두 번째 응시하여 합격을 한 것이다.
회사 합격증
당시에는 합격 통지를 이렇게 우편으로 보내었다. 개인 핸드폰도 없었고, 연락처라고는 하숙집 전화번호뿐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래 기억이 난다. 이 합격 통지서를 받고 온 세상을 다 얻은 듯이 기뻤었다. 합격통지서에 적혀 있는 '국내 제일의 회사'가 이제는 '글로벌 랭킹 10' 안에 들어가는 큰 회사로 성장을 하였다. 이때 이 회사 사장이 되겠다는 꿈도 꾸면서 그렇게 늘작가의 사회인, 직장인 삶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