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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진화 중

by 애지

남편의 퇴사 전 소비패턴

남편이 권고사직을 한 뒤, 그의 예상 밖의 변화를 마주하게 됐습니다. 평소엔 소비에 크게 제한을 두지 않던 사람이었거든요. 외식을 할 때도, 소품이나 패션 아이템을 살 때도, 조금 비싸더라도 ‘눈에 차는 것’을 고르는 성향이었어요. 운동도 마찬가지였죠.


그냥 헬스는 재미없다며, 월 30만 원에 달하는 F45 크로스핏 프로그램에 등록할 만큼 기준이 뚜렷했어요.


편의점에 들를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격보다는 먹고 싶은 걸 고르는 쪽이었고, 통신사 할인이나 쿠폰 같은 건 굳이 챙기지 않았죠. 트렌디한 아이템이 나오면 고민 없이 구매하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퇴사 후 소비패턴의 변화
그런데 권고사직 이후, 남편의 소비 패턴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먼저 F45 등록 기간이 끝나자, 비용이 훨씬 저렴한 일반 헬스장으로 운동 장소를 옮겼어요.


물가에 관심 없던 그가 요즘은 마트에 가면 제철 오징어 1kg 가격까지 꿰고 있죠. 편의점에서는 통신사 할인도 꼭 챙기고, 가끔 생기는 쿠폰도 빠짐없이 사용합니다.


옷, 신발, 생활 소품까지도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일절 관심을 보이지 않아요. 뭔가 사줄까 하고 물어보면, "지금은 딱히 필요 없어"라며 손사래를 칩니다. 예전의 '기준 높은 소비자'는 이제 보기 힘들 정도예요.


남편은 진화 중
저는 이런 남편의 모습이 안쓰럽기보다 오히려 대단하고 똑똑해 보였습니다. 바뀐 환경에 당황하기보다, 빠르게 적응하고 새로운 소비 습관을 만들어가는 모습에서 놀라움을 느꼈어요. 예전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시야를 갖게 된 것 같았죠.


뿐만 아니라 남편은 기존 월급과 권고사직 후 받는 실업급여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주식 수익화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미국 주식, 한국 주식 가릴 것 없이 공부하고 분석하며 시간과 에너지를 아낌없이 투자했어요. 그 결과, 어느 달은 예전 월급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내기도 했습니다.


남편, 멋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 앞에서 주저앉을 수도 있고, 오히려 그 기회를 계기로 인생의 방향을 내가 원하는 쪽으로 틀 수도 있죠. 남편은 분명 두 번째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마치 포켓몬이 진화하는 것처럼, 위기 속에서 자신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과정처럼 느껴집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선 허물을 벗고 고통을 겪어야 하듯, 남편 역시 지금 그 과정을 지나고 있는 중입니다. 언젠가 그가 스스로 원하는 방향으로 훨훨 날아오를 거라는 걸 믿고 있습니다.


남편의 진화와 새로운 탄생을 믿으며,

오늘도 온 마음 다해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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