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제호 Feb 06. 2024

제2관 인생보험 - 2

  상현이 선영을 처음 만난 것은 대학생 때였다. 상현은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학교 후문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학교가 끝난 평일 오후 4시부터 저녁 10시까지 매일매일 그 자리를 지켰다.

  선영은 그 편의점의 단골손님이었다. 매일 저녁 6시~7시 사이에 들러서 도시락을 사갔다. 가끔은 오지 않을 법했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편의점을 방문했다. 그래서인지 채 2분도 걸리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물건을 사가는 손님일 뿐이었지만, 상현이 선영을 기억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두 달 여가 지났을 무렵 상현은 일에 많이 익숙해졌고, 매일같이 늦지 않고 꼬박꼬박 나와 가게를 지키는 모습에 사장의 신뢰도 많이 얻었다. 그래서 그때쯤부터는 손님이 없을 때 편의점 앞 파라솔에 나와서 햇볕도 쬐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구경하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때로는 과제를 하기도 했으나, 평소에 워낙 성실하게 수업을 들은 덕분에, 과제에는 그리 오랜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상현은 선영이 도시락을 사고 나가면, 폐기된 삼각김밥을 들고 편의점 앞 파라솔 밑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저녁을 때웠다. 

  그날도 선영은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서 나갔고, 선영이 나가자 상현은 바로 폐기 김밥을 들고 파라솔로 향했다. 파라솔에 앉으니 저 멀리 선영이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상현은 그런 선영을 보며 삼각김밥의 포장을 뜯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선영은 뒤를 돌아 상현이 김밥을 뜯는 것을 보곤, 가던 길에서 멈춰 섰다. 상현은 그 사실을 모른 채 평소처럼 김밥을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러자 선영은 몸을 뒤로 돌려 상현을 향해 빠르게 걸어왔다. 

  잠시 후, 상현은 자기 앞에 서서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는 선영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선영이 말했다.

  "저도 앉아서 먹어도 되죠?"

  상현은 입 안의 김밥을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영은 그대로 상현의 맞은편에 앉아 도시락 포장을 뜯고 나무젓가락을 꺼내 들었다. 상현에게 말을 걸거나 고개를 들어 쳐다보지도 않고 그대로 얼굴을 도시락에 파묻고 마치 일하는 것처럼 묵묵히 도시락을 먹었다.

  상현은 진즉에 김밥을 다 먹었지만, 왠지 모르게 선영의 식사가 다 끝나기 전에 자리를 뜨는 것은 무례해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대로 앉아 선영이 먹는 것을 구경했다. 

  잠시 후, 선영의 식사가 끝나고 선영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빈 도시락 케이스와 나무젓가락을 봉투에 넣었다. 

  "놔두시면 제가 치울게요."

  상현의 말에 선영은 멈칫거리고는 상현을 쳐다보았다.

  "제가 먹은 거니 제가 집에 가져가서 치울게요."

  "아뇨. 제가 치울게요. 워낙 깨끗하게 드셔서 바로 분리수거만 하면 될 것 같아요. 그거 한두 개 늘어난다고 이따 쓰레기 버릴 때 많이 무거워지는 것도 아닌데요 뭐."

  "그러면 제가 다음에 여기서 먹기 좀 부담스러워지잖아요."

  상현은 선영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자기야 사심 없는 호의로 그런 말을 한 것이지만, 선영의 입장에서는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허드렛일을 시키는 듯한 기분에 좀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집까지 가져가지는 마시고 편의점 안쪽에 분리수거해서 넣어놓고 가세요."

  그러자 선영은 짧게 "네"라 대답하고는 그대로 편의점 안쪽으로 들어가 빠르게 분리수거를 하고 나왔다. 선영은 상현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잘 먹었어요."라고 말하고는 빠르게 사라졌다. 

  그때부터 선영과 상현은 매일 저녁마다 편의점 파라솔 밑에서 같이 저녁을 먹는 게 일상이 되었다. 가끔 비가 억수처럼 오는 날에는 그러지 않을 법도 했지만, 그럼에도 선영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편의점을 찾았다. 그런 와중에도 서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각자 밥 먹는데만 집중했다. 손님이 방문하지 않는 한, 상현은 늘 선영이 다 먹을 때까지 가만히 앉아서 기다려 주었다. 


  그렇게 다시 두 달 여가 지나 날이 많이 더워지고 방학이 가까워올 무렵, 상현은 처음으로 선영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왜 맨날 여기서 밥을 사 먹는 거예요?"

  젓가락을 든 선영의 손이 멈췄다.

  "그럼 안 되나요??"

  "안 되는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요."

  선영은 밥과 볶은 김치를 입안에 넣고 우적우적 씹으며 먼산을 잠시 바라보았다. 씹던 음식들을 목구멍으로 꿀떡 넘기고 말했다.

  "자취하는데, 밥 하기 귀찮아서요."

  "근데, 매일 오시잖아요. 주말에는 제가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주말 알바 말로는 주말에도 계속 오신다는 것 같고요. 가끔은 저녁약속이 있거나 술약속이 있으면 안 오실 법도 한데."

  선영은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약속이 없어요. 친구가 없거든요."

  "혹시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별거 없어요.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다 고향에 있고, 대학 와서는 처음부터 혼자 다녔어요. 사람 만나고 그러는 거 귀찮아요."

  선영은 다시 도시락에 얼굴을 파묻고 계속해서 밥을 먹는데 집중했다. 한 5분여 뒤 밥을 다 먹은 선영이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던 찰나, 상현은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갑자기 말을 꺼냈다.

  "그럼 내일 저랑 저녁 먹자고 하면 그것도 귀찮을까요?"

  선영은 막 치우려던 다 먹은 도시락 통과 젓가락을 들고 가만히 서서 의자에 앉아있는 상현을 내려다보았다. 잠깐의 침묵 후 선영이 대답했다.

  "아뇨."


  다음날인 토요일 저녁 6시에 상현과 선영은 학교 후문에서 만나 멀뚱멀뚱 서있었다. 둘 다 데이트라고는 해본 적 없었기에 미리 저녁을 먹을 가게를 정해놓진 않은 상태였다. 상현은 그저 인터넷을 뒤적거려 '여자들이 좋아하는 데이트 코스'같은 잡다한 글들을 보고 왔을 뿐이었다.

  상현은 남자인 자신이 리드해야 한다는 생각에 먼저 입을 열었다.

  "저기 사진관 사거리 옆으로 좀 가면 파스타 잘하는 데 있다던데 거기 어때요?"

  "별로요."

  선영은 단칼에 상현의 제안을 거절했다. 상현은 선영의 그런 대답을 예측하지 못했던 터라 선영의 말에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만히 서있었다. 그런 상현을 본 선영이 말을 꺼냈다.

  "그냥 저기 옆에 밥집 가서 밥 먹으면서 얘기해요. 파스타 가게 그런데 분위기도 너무 간질간질하고 비싼데 양은 적어서 별로예요."

  그 말에 상현은 선선히 선영을 따라 밥집으로 향했다. 둘은 밥집에 앉아 제육볶음과 김치찌개를 시켰다. 밑반찬으로 멸치 볶음과 계란말이, 김치, 무말랭이가 나왔다. 딱히 할 말이 없던 상현은 수저를 꺼내 선영의 앞에 놔주고, 자신의 수저도 세팅한 뒤 무말랭이를 하나 집어서 입에 넣고는 우물거렸다. 

  "왜 밥 먹자고 한 거예요?"

  침묵이 많이 어색했던지 선영이 말을 꺼냈다.

  "저도 밥 먹을 사람 없어서요. 살기 바쁘다 보니까 저도 친구가 없어요. 그래서 친구 없는 둘이서 밥이라도 같이 먹으면 좋지 않을까 해서요."

  "그쪽은…. 그러고 보니 통성명도 안 했네요. 저는 안선영이에요."

  "저는 조상현이에요."

  "그럼 상현 씨는 왜 친구가 없는지 물어봐도 되나요?"

  상현은 이상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안면 근육을 풀었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저는 고등학생 때도 계속해서 알바를 했어요. 집 형편이 넉넉지 않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반 친구들하고 가까이 지낼 일도 없었죠. 학교에서야 어느 정도 관계를 맺고는 지냈지만, 애들하고 PC방을 가거나 학원을 다니거나 하지는 못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졸업할 때까지도 데면데면한 상태였고, 결국 대학을 오면서 연락들이 다 끊겼어요. 뭐 어쩔 수 없죠."

  "힘들지 않았어요?"

  상현의 말에 선영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상현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딱히요. 어차피 나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는걸요.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살았죠 뭐."

  상현의 말이 끝나자 제육볶음과 김치찌개가 나왔다. 

  "일단 먹죠."

  선영은 밥을 크게 한 숟가락 떠서 밥 위에 제육볶음을 올리고 입을 최대한 크게 벌리고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긴장의 끈을 풀면 입 밖으로 밥알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한가득 넣고선 볼을 크게 부풀린 상태로 오물오물거리며 밥을 먹었다. 상현도 선영을 바라보거나 말을 하지 않고 찌개도 한 국자 퍼먹고, 반찬도 이것저것 집어먹어가며 계속해서 입 안으로 음식을 밀어 넣었다. 

  밥공기에 밥이 1/5 정도 남았을 무렵 상현이 물었다.

  "선영 씨는 힘들지 않아요?"

  선영은 다급하게 음식을 씹어 넘기고 대답했다.

  "뭐가요?"

  "계속 혼자 지내고 혼자 밥 먹고 그러는 거요."

  선영도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저도 딱히요? 힘들건 없죠. 대신에 가끔은 외롭긴 해요. 그리고 주말에 말을 너무 안 해서 가끔 월요일에는 말하는 법을 까먹을뻔하기도 하고요. 그런 거 빼면 괜찮아요."

  "아, 말하는 법을 까먹는 건… 그럴 수도 있겠네요. 너무 말을 안 하다 보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쵸. 약속이라도 있으면 밥 먹고 술 먹으면서 얘기라도 할 텐데 그런 게 없으니까요."

  상현은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럼 앞으로는 저랑 밥 먹을래요?"




이전 02화 제2관 인생보험 -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