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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호 Feb 26. 2024

제4관 보험 사기 - 1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고작 그런 걸 갖고. 어차피 나는 여기 앉아서 입만 털면 되는 거 아냐?"

  늘 그렇듯 명석은 무례한 언행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요."

  그럼에도 기자는 명석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았다.

  "나야 뭐 어차피 거래처에 들르는 김에 기자님 만나서 잠깐 얘기만 하면 되니까."

  명석은 씨익 웃으며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기자를 향해 몸을 굽히며 말했다.

  "근데, 어쩌다가 이쁜 아가씨가 이런 일을 하게 됐을까? 이런 일 그만두고 나 같은 사람 만나서 팔자 고치는 게 더 낫지 않아?"

  "괜찮아요. 저는 이 일이 좋은걸요."

  명석의 성희롱에도 기자는 웃으며 좋은 말로 대처했다. 명석은 재미없다는 듯이 다시 등을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말했다.

  "뭐 그럼 어디 한번 얘기해 봐. 이쁜 기자님께서 나한테 뭐가 그리 궁금한지."

  기자는 휴대폰의 녹음 어플을 켜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의자 옆에 걸어놓은 핸드백에서는 작은 태블릿을 꺼내 질문리스트를 확인했다.

  "먼저, 대표님 어린 시절 얘기가 좀 궁금한데요. 어떤 어린 시절을 보내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 어릴 때? 어릴 때 뭐 별거 없었어. 생각해 보면 내가 좀 개구쟁이긴 했지. 우리 집이 좀 촌동네였거든. 그래서 뭐 할게 딱히 없잖아? 그래서 어릴 때 애들하고 산이나 들로 놀러 다녔지 뭐."

  명석은 조금은 아련한 표정이 되어 말을 이어나갔다

  "여름에는 동네가 개구리가 천지거든? 그럼 개구리 잡아다가 개구리를 공으로 삼고, 삽을 야구배트 삼아서 개구리를 후려치는 거야. 그러면 '땅!' 하는 청량한 소리가 나면서 개구리가 쭉 날아가는데, 그게 쾌감이 지려 아주. 그래서 애들하고 누가 멀리 날리나 내기하고 그랬지. 겨울에는 동네 똥개 잡아다가 강이나 계곡에 담그는데, 그러면 이게 물고기들이 대가리가 멍청해서 그런지, 난생처음 보는 생물이 물속으로 쑥 들어오니까, 처음에는 경계하다가도 좀 있으면 뭔가 먹인가 싶어서 개새끼 꼬랑지를 그렇게 물어. 그러면 그때 개를 딱 꺼내서 물고기를 잡는 거지. 뭐 어릴 땐 그러고 놀았어. 놀게 뭐가 있어야지."

  명석의 불쾌한 얘기에도 기자는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살짝 미소를 띤 상태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를 들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그냥 학교 열심히 다녔어. 아 물론, 가끔 애들한테 돈도 뜯고 싸움질도 하고 그랬지만, 애들이 다 그러면서 크는 거잖아? 애들이 좀 싸우면서 커야지. 요새는 너무 나약해 빠졌어. 그러니까 애들이 뭐 툭하면 자살이다 뭐다 하면서 뒤져나가잖아? 그게 다 애들을 약하게 키워서 그래. 나 어릴 때처럼 좀 쌈박질도 하다가 뼈도 부러져 보고. 경찰서도 몇 번 가보고 그러면서 좀, 세상에 악으로 깡으로 하면 안 되는 거 뭐 없네? 이런 걸 배워야지."

  기자는 다음 질문을 이어나갔다.

  "대학생 시절에는 어떠셨죠? 지금 공동대표님이신 박상진 대표님을 만나신 게 대학생 시절이라고 들었는데, 뭔가 자세한 얘기는 안 나오더라고요."

  "아, 좋아 좋아. 그게 또 기가 막힌 얘기가 있지."

  오랜만의 옛날 얘기로 한껏 기분이 좋아진 명석은 다시 자신의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내가 대학을 고만고만한 데로 갔어. 뭐 나름 머리가 나쁘진 않기도 했고, 내가 또 그런 걸 잘해. 뭐냐면 잘하는 애들을 잘 찾아. 고등학교 때도 좀 놀다 보니까 대학을 가기는 해야겠는데 이게 좀 애매한 거야. 그래서 이렇게 쓱~ 스캔을 했지. 그래서 내가 그 뭐더라?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 쨋든 범생이 새끼를 하나 찾았단 말이야. 그래서 걔한테 공부 좀 가르쳐달라 했지. 그랬더니 뭐 순순히 가르쳐 주더라고? 안 가르쳐준다 하면 줘 팰라 그랬는데, 새끼가 눈치는 좀 있는 모양이더라고. 그래서 배우는데, 아휴 시벌. 뭐 그렇게 어려운지 짜증 나더라고. 그래도 뭐 대충 하기는 했어. 대충. 그래도 고2, 고3 때 걔한테 배우니까 어느 정도 성적이 좀 나오데? 그래서 점수 맞는데 암데나 넣었더니 들어가지더라고. 크으. 근데 정작 나를 가르친 그놈은 재수한다 하더라고. 나는 붙고 걔는 재수하고. 븅신이지 아주."

  "대학에 가서는요?"

  "아, 그래 대학에 가서 보니까 이게 영 재미가 없는 거야. 뭐 애새끼들 다 캠퍼스라이프니 뭐니 이런 거 경험은 안 하고 뭔 도서관에만 꽉꽉 들어앉아서 허구한 날 과제하고 책 보고 막 그러고 있더라고. 하지만 나는 다르니까? 책은 무슨 책이야 술이나 먹자 하면서 신나게 놀았지. 뭐 알바니 뭐니 그따위 것도 하기 싫고, 대학에 왔으면 대학생활을 즐기는 게 도리 아니겠어? 그걸 뭐 취업이니 뭐니 하면서 븅신같이 도서관에 처박혀서 책이나 파고 있으면 뭐가 남냐고. 안 그래?"

  명석은 기자를 쳐다보며 동의를 구했지만 기자는 그저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을 뿐 딱히 맞장구를 치지는 않았다. 기자의 반응에 약간 실망한 명석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기자와 명석이 인터뷰를 진행 중인 로비에는 딱히 금연이라는 말이 붙어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 회사의 로비인지라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로비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명석을 흘기면서 지나갔다. 그런 모습을 보고 경비나 데스크 직원이 명석을 제지할 법도 했지만, 명석이 그 회사의 생사를 가를 수 있는 사람인 것을 익히 알고 있기에, 딱히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놀고, 또 놀고, 그러다가 군대도 갔다 오니까 사람이 좀 쫄리는 거야. 이게 뭐 대학이 좋은 것도 아니고, 학점도 개판이고, 이뤄놓은 게 없으니까. 그래서 딱 내가 생각을 해봤지. 흠. 이번에도 잘하는 애를 하나 찾으면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야. 그래서 일단은 뭔 이상한 동아리를 들어갔어. 동아리 이름이 그지 같았는데… 뭐더라… 무슨 연구회였는데. 암튼, 그래서 동아리 들어가서 좀 애들 상태를 보는데, 아니 글쎄 거기에 상진이가 있었던 거지. 옆에 가서 보니까 지 혼자 뭐 이상한 노트북으로 뭘 뚝딱뚝딱 만들어. 그래서 뭐 하냐니까 뭔 트랜스포먼지 플란다스의 개인지 뭔지를 만들겠다고 막 그러는 거야."

  "플랫폼 말씀이시죠?"

  "그래그래 그거. 그래서 옆에서 보니까 이 새끼 이거 좀 똘똘해 보이고 쓸만한 것 같아서, 상진이를 딱 붙잡고 말했지. '너 이 새끼 나하고 일이나 하나 하자' 하면서 말이야. 어때 좀 최민식 같아?"

  "…"

  "기자 아가씨 반응이 재미가 없네. 쯧."

  명석은 담배를 그대로 로비 바닥에 던져 껐다. 그러자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달려와 황급히 빗자루로 담배꽁초를 쓸고는 걸레를 가져와 바닥을 닦았다. 하지만 명석은 그러거나 말거나 그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내가 사람들한테 자금을 끌어와서 회사를 같이 차리기로 했지. 상진이가 말이야, 공부만 하고 컴퓨터만 만질 줄 알고 암것도 못하는 놈이었거든? 그래서 내가 아주 고생을 많이 했어. 돈 끌어오랴 법인 설립이다 뭐다 변호사 만나랴, 세무사 만나랴 아주 그냥 난리도 아니었지. 또 뭐 상진이 혼자 못 만든다 그래서 개발자도 찾아다 줬는데, 이 새끼들이 아주 그냥 뭐 하는 것도 없으면서 월급은 더럽게 많이 처먹더라고. 거기에 걔네 일해야 할 사무실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그거 만드느라 또 돈나가고, 아주 그냥 하루하루 돈만 쳐 나가는 바람에 망하는 거 아닌가 싶더라니까. 그렇게 아주 개같이 하루하루 버텼지."

  "고생이 많으셨겠네요."

  "아이, 그럼 말도 못 하지. 근데 이게 역시 하늘은 스스로를 돕는 자를 뭐시기라고, 하다 보니까 이게 왠지는 모르겠는데 돈이 되더라고. 뭐더라? 뭐 우리 사이트에 들어와서 애들이 물건을 팔면 그 수수료를 우리가 받는 거라 하더라고? 역시 중간에서 돈 빼먹는 게 최고 긴 해. 그것도 다 내가 처음에 상진이를 잘 알아본 덕분이지만."

  할 말을 끝낸 명석의 얼굴에는 자신만만한 미소가 번져있었다. 이번에는 기자도 살짝 미소를 지었다. 기자는 질문리스트가 담긴 태블릿을 끄고 가방에 넣었다.

  "뭐야, 인터뷰 끝이야? 더 안 물어봐?"

  "네, 이미 많은 말씀을 해주셔서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여쭤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 뭔데?"

  기자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대표님이 중요하게 여기시는 가치들은 어떤 것들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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