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이에게 (2001년 7월 쓴 글)
한 아이가 오랜만에
학교에 왔다
원래가 학습에 흥미를 덜 가진
아이였지만
수업 시간에 늘 분위기를
망치곤 했지만
비워진 공간은
애틋한 안타까움의 너울이었다
허리가 아팠다고 했다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아픔이 다가왔다고 했다
아마
시험이 부담이 된 모양이다
이제는 견딜만하다고 했지만
완전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어쨌든 학교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된다는 말밖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학습에 별 흥미를 가지지 않은 아이가 학교 생활에서 시험의 부담 때문에 아팠고, 그것이 결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날 아이의 아픔만큼이나 나도 아팠던 듯하다. 거의 결석이 없는 학교,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오죽하면 결석이 되었겠느냐? 지금 생각해도 아픔이 진하게 밀려온다. 며칠을 쉬고 등교한 아이를 보면서 그 애잔함을 뭐라고 말할 수 없었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질책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격려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냥 스스로 삶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수밖에. 그래서 조용히 지켜보는 시간이 필요했던 듯하다. 당시는 학교가 그래도 생명줄이었다. 지금은 내신성적 때문에 학교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중퇴하여 검정고시를 보는 학생들이 많지만 말이다. 당시는 학교를 그만둔다는 것은 문제아들이나 하는 것으로 치부했다. 학교에 대한 결석이 얼마나 아팠을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아이는 잘 성장하여 사회의 일익을 담당하는 어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