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 <모순>
오랜만에 독서모임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휴가를 다녀온 지 딱 일주일 만입니다. 익숙한 멤버만 모이는 자리라, 편안히 여행지에서 사 온 선물을 챙겨 카페로 향했습니다. 여름 해가 쨍하게 날을 세운 한 낮입니다. 카페의 위치가 바뀌었는지 조금 헤매다 골목길에서 모임 장소인 카페를 발견했습니다. 오늘의 모임은 책 보다 앞으로의 모임에 대한 이야기가 더 길어졌습니다. 그럼에도 저희는 한 시간가량 각자의 책 속에 빠져들었습니다.
1시간 동안 지나간 4 챕터
짧은 시간 동안 소설 속 안진진의 인생으로 쑥 빨려 들어가 버렸습니다. 작가의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안진진의 이름으로 시작해, 두 명의 남자, 쌍둥이인 이모와 엄마, 두 인생 이야기의 줄기들을 잡고 나니 책을 쉽게 놓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책 속의 만우절과 봄이 바람에 날리듯 지나가 버립니다.
계곡에서 지나간 여름
다음 주말까지 저는 바쁘다는 핑계로 책장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의 소리가 시끌벅적한 계곡 평상에서 엄마와 아빠, 조카들과 함께 모여 식사를 했습니다.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그니 더위는 한풀 꺾이고 시원한 산과 하늘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늘 자리에 캠핑의자를 펼치고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옆 평상의 젊은 엄마가 건네주는 수박을 먹고, 조카들의 물젖은 방문이 지나고 나니 책 장이 젖어들기 시작합니다. 평소라면 책이 젖는 것을 싫어하는 저인데 풍경 때문인지 젖지 않는 쪽이 이상하다고 생각해 버립니다.
책 속에서도 뜨거운 여름이 한창입니다. 한여름 에어컨도 켜지지 않는 차를 타고 김장우와 여행을 떠나는 안진진. 그리고 부유한 이모집에 초대를 받은 진진이네. '노을'의 낭만으로 그려지는 아빠와 대비되어 '억척'으로 그려지는 엄마의 모습.
(소설의 내용 및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가을에서야 알게 된 사랑
김장우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안진진은 소주를 찾았고, 아빠처럼 괴로워합니다. 그녀에게 입맞춤과 품의 따뜻함 만큼이나 사랑은 괴로운 것이었습니다. 이어지는 사랑에 관한 세 가지 메모는 감명 깊게 지나쳤지만, 솔직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이라고 했을 때는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사랑의 의미와는 반대되는 서술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진진의 사랑이 괴로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 역시 스스로 솔직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앞서 나영규에게는 솔직했던 진진을 생각해 보면 어쩌면 나영규를 선택할 수도 있겠다는 예상에 조금 더 힘이 실립니다.
겨울, 돌아온 아빠와 이모의 소포
집으로 돌아온 반나절만에 책의 결말에 이르렀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엄마, 아빠의 잔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으니 제 방이 진진의 작은 방처럼 느껴집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망나니'로 이름 붙여진 아빠를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쉽게 말하고 싶지만 한 사람의 딸인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그저 용서하고 또 뒤늦게 이해하기도 했던 날들을 떠올려 봅니다. 결국 그 뒷모습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아빠입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안진진의 아빠는 돌아왔습니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돌보며 오히려 조금씩 활기를 얻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진진에게 허울만 남은 아빠는 어쩌면 삶의 무게를 더해주는 존재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장우와의 키스가 달고도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챕터를 남겨두기 전 이모의 소포를 받습니다. 삶이란 제각각의 비극인 것일까요. 아름답게만 그려진 반쪽의 엄마를 지켜보며 살아왔던 진진의 마음에 어떤 파문이 일었을지 상상해 보게 됩니다.
선택, 그리고 모순
그녀는 결국 그녀에게 어울리는 선택을 합니다. 모두가 그렇듯 누군가를, 또 다른 가능성을 보내고 살아갑니다. 우리의 상상력은 때론 참으로 안일하면서도 날카롭습니다. 두 남자 중 누구를 선택하더라도 우리는 감히 안진진의 삶을 재단할 수 없어야 합니다. 누구의 삶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쉽게 그렇게 하고 맙니다. 여기에도 또 모순은 존재합니다.
그 남자들과 그 여자들.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는 이모부와 시간과 계획에 집착하는 나영규. 일몰의 '쌉싸름한 냄새'에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픈' 아빠와 들꽃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김장우. 묘하게 오버랩되는 두 남자를 사이에 둔 진진의 선택을 보면서 엄마와 이모의 인생 역시 살펴보게 됩니다.
진진의 엄마는 두 남자(아빠와 남동생)의 푸닥거리를 하느라 온갖 고생을 하지만, 그럼에도 꺾이지 않는 생에 대한 의지와 강한 생활력을 보여줍니다. 큰 베풂보다는 작은 서러움을 기억하는 엄마. 한 송이 꽃보다는 한 짝의 양말이 더 소중합니다. 한 챕터를 내어준 엄마의 불행의 과장법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소한 불행과 대항하여 싸우는 일보다 거대한 불행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일이 훨씬 견디기 쉽다는 것을 어머니는 이미 체득하고 있었다.... 불행의 과장법... 과장법까지 동원해서 강조하고 또 강조해야 하는 것이 기껏해야 불행뿐인 삶이라면 그것을 비난할 자격을 가진 사람은 없다. 몸서리를 칠 수는 있지만.'
아무리 봐도 모순이 아니고서는 형용할 수 없는 삶입니다. 소소한 불행에 슬퍼지는 저에게 그 강인함은 자연스럽게 우리네 엄마의 모습으로 이어집니다. 경이롭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멀리서 보면 경이롭고, 가까이서 보기엔 조금 버거울 때가 있는 엄마라는 존재입니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노래 ‘헤어진 다음날’을 들으며 이모의 이야기를 시작해 봅니다. 어쩌면 이모는 오랫동안 떠날 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모든 게 완벽할 것만 같은 이모는 남몰래 엄마의 삶을 부러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모의 감상적인 부분은 엄마의 과장법과 대비되어, 다른 의미의 불행을 들추어보게 합니다.
나, 사랑할 것인가 안주할 것인가. 이분되지 않는 삶의 모순 속에서
사랑과 현실의 갈등이라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야기 같지만 진진의 인생을 관통하며 흐르는 1년은 결코 상투적이지 않습니다. 만약 그녀가 들꽃을 선택한다고 해서 우리는 그녀를 응원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현실의 나는 어떠한지 바라봅니다. 가끔 진진이처럼 시니컬하게 바깥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주리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벽을 치기도 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어떨까요. 가끔 나영규처럼 유쾌하기도 하지만 김장우처럼 슬퍼지기도 합니다. 저에게 진진이처럼 두 가지의 명확한 선택지는 없습니다. 두 가지의 명확한 대비도 없습니다. 그러나 순간순간들이 존재합니다. 책이 내려주는 명확한 모순이 아니라 모순이 온통 뒤엉킨 생활 속에서 저는 사랑을 하고 또 미래를 준비합니다. 명확히 나눠지지 않은 모순으로 뒤엉킨 삶이 어딘지 모르게 슬퍼졌다가 또 감사해지는 밤입니다. 모순을 껴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