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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지윤서 Oct 28. 2022

안국역 옆 '경인미술관'

한옥의 정취와 정겨움을 만끽할 수 있는 미술관

올해 마지막 제사를 무사히 마쳤다. 한 해의 첫 제사는 시아버지 제사이고, 마지막 제사는 시어머니 제사이다. 올해 어머니 제사는 좀 특별했다. 올케의 수고를 덜어줄 요량으로 잘 오지 않는 시누들이 모두(벼를 추수하느라 둘째 형님만 못 오셨다.) 왔기 때문이다. 집들이 겸 치른 제사여서 그랬다.  


일하랴 장 보랴 음식 장만하랴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올해는 시누들의 방문이 부담스러움보다는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함께 늙어가는 처지이다 보니 부담감이 덜어진 걸까?


어쨌든 오랜만에 모두 모인 터라 하룻밤을 함께 보내고 다음날 나들이에 나서기로 했다. 나들이 장소는 안국동. 인상 깊었던 서울공예박물관을 보여드리고 싶어서였다. 박물관을 좋아하실까 걱정했는데 날씨도 도와주고 그새 박물관 앞 공터였던 자리도 공원[한 세기 막아놨던 송현동 광장에 몰려든 시민들…"예쁘다" | 연합뉴스 (yna.co.kr)]으로 탈바꿈해 걱정이 싹 가셨다.


서울공예박물관 전망대에서 바라본 송현광장.


박물관을 관람하고 점심 식사 후 인사동으로 향했다. 전통찻집 좋다는 형님들 말에 자연스럽게 경인미술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3호선 안국역 6번 출구에서 길만 건너면 바로 접어들 수 있는 인사동. 그곳의 중심에 경인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미술관 앞 만두가게 '궁'. 먹어 본 만두 중 첫 손에 꼽을 만큼 담백한 맛이 일품인 곳이다.  


경인미술관은 인사동에 들르면 빠트리지 않고 들르는 장소다. 추억이 깃들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서울에서 한옥의 정취를 맛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미술관이기 때문이다. 이곳에 처음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툇마루를 갖춘 근사한 한옥이 전시관인 것도 놀라웠지만 오래된 나무와 야외 조각품, 그리고 그것들이 어우러져 빚어낸 정원의 풍경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인사동 하면 자연스럽게 경인미술관을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었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제5전시관. 방문한 날(10/21)에는 <이연임 한국화>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경인미술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누가 와도 상관없다는 듯 활짝 열어놓은 대문과 그 옆에 자리한 커다란 장독대, 중앙에 자리한 전통찻집과 거리낌 없이 드나들 수 있는 전시관까지 외형적인 분위기는 여전했다. 그런데 이번에 방문해 보니 내형적인 분위기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기획전시가 아예 사라지고 대관 위주로 전시관이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문한 날에도 개인전을 비롯해 동호회 전시가 한창이어서 화한과 꽃다발이 전시관 입구에 즐비했다. 게다가 인터뷰와 전시관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취재진까지 나와 있어 미술관에는 가을 정취만큼이나 무르익은 활력으로 가득했다. 기획전시와는 또 다른 매력이었다.  


정면에 보이는 전시관은 제2전시관이다. 방문한 날에는 <금강회 불화>전이 열리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아틀리에가 자리하고 있다. 복층 구조이다.


예전과 달리 찻집도 사람으로 북적였다. 그 모습에 형님들은 먼저 전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문한 날에는 6개 전시관에서 각각 민화, 불화, 도자, 문인화, 한국화, 유화전이 열리고 있었다. 형님들은 박물관을 관람하느라 피곤할 법한데도 모든 전시를 빠트리지 않고 관람했다.


제3전시관에서 열린 <청송예찬>. 주거니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며 작품을 감상하는 형님들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형님들이 특히 관심을 보인 전시는 소나무를 그린 정숙모 작가의 개인전 <청송예찬>. 묵화에 채색을 덧입힌 소나무 그림들은 솔잎의 선명한 초록빛과 가지의 짙은 갈색 대비로 눈길을 끌었다. 그중 인상 깊었던 그림은 '그대 있음에'. 나무 위에 올라앉은 부엉이가 소나무만 즐비한 전시장에서 빛을 발했다.    


정숙모 작가의 개인전에서 만난 부엉이. 가장 마음에 든 그림이다. 제목은 '그대 있음에'.


큰형님은 대형 그림에 관심을 보였다. 서예를 배웠고 지금은 캘리그래피를 배우고 있는 큰형님은 그림의 크기에서 작가의 시간과 노력을 보았다. 동생들과 그림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큰형님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큰시누로 대할 때는 어렵기만 했는데 전시장을 함께 누비니 왠지 모를 친근함이 솟았다. 올해 일흔여섯. 큰형님과도 함께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호회에서 대관한 전시관에서는 작품 곁에 자리한 꽃바구니들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가족들의 축하와 격려가 쓰인 바구니에서는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이제야 거울 앞에 선 노작가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제6전시관 <제11회 그림숲전>에서 만난 그림 한 점(작가 정옥화). 가족의 응원 메시지가 유독 눈길을 끄는 전시였다.
따듯한 가을 햇볕 아래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는 형님들. 4인 4색의 따듯한 차가 마음을 더 훈훈하게 했다.


관람을 마친 뒤 미술관에 있는 전통찻집 '다원'에서 셋째 형님이 맛난 차를 사셨다. 점심은 큰형님이 사셨으니 발품을 팔았을 뿐 대접을 받은 셈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마음은 더없이 편했다. 무르익은 가을처럼 형님들과의 시간도 미술관 뜰에서 무르익었다.



https://naver.me/xq5PaP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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