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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균 Sep 14. 2016

거울 뉴런, 언어를 잉태하다

언어의 생성 단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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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신호는 언어를 향한 우리 조상 인류의 발걸음에 커다란 진보를 가져왔다. 여전히 갈 길이 멀었다. 또 다른 ‘징검다리’가 필요했다. 1998년, 아르빕(Michael Arbip)과 리촐라티(Giacomo Rizzolatti)라는 두 과학자가 발표한 ‘거울 뉴런(Mirror Neuron)’이 주인공 역할을 맡았다.


거울 뉴런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흉내 내려고 할 때 점화되는 뇌 세포다. 아르빕과 리촐라티는 사람이 숙련된 모방자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 거울 뉴런의 진화가 있었다고 보았다. 거울 뉴런을 통해 몸짓 활동과 같은 모방 동작을 하면서 언어의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고 보았다. 거울 뉴런 개념이 출현한 이후 모방적인 몸짓 신호를 최초 언어의 출발점으로 보는 입장은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거울 뉴런은 언어 습득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할까. 사람은 거울 뉴런 덕분에 발음과 단어를 반복해 말할 수 있다. 반복은 언어를 좀 더 쉽게 익힐 수 있게 하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이다. 이들은 거울 뉴런이 몸짓을 체계화하면서 언어 생성의 토대를 형성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았다. 몸짓은 단어와 비슷한 구실을 하는 소리를 낸 조상 인류가 일정한 꼴을 갖춘 단어를 생성하는 데 중요한 조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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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짓이 언어가 출현하는 데 크게 작용한다는 사실은 과학적인 사실을 통해 뒷받침된다. ‘브로드만 영역 44(Brodamann's area 44)’를 통해 알아보자. 브로드만 영역 44는 우리 뇌에서 언어를 담당하는 중요한 부위로 브로카 영역의 일부다. 


2001년 칸탈루포(Claudio Cantalupo)와 홉킨스(William Hopkins)가 <네이처>에 브로드만 영역이 침팬지와 고릴라에게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침팬지와 고릴라의 브로드만 영역은 구조나 기능 면에서 인간의 그것과 유사하다고 한다.

침팬지와 같은 유인원은 브로드만 영역을 이용해 다양한 몸짓을 제어한다. 사로잡힌 유인원은 의도적으로 어떤 사물을 가리킬 때 오른손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오른손은 좌우 대칭의 두뇌에서 브로카 영역이 있는 좌반구의 명령을 받아 움직인다. 칸탈루포와 홉킨스는 브로카 영역의 일부인 브로드만 영역 44가 눈 앞의 대상을 지시할 수 있는 능력을 제어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들에 따르면 사람은 브로드만 영역 44 덕분에 몸짓을 통한 의사소통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유인원들이 손을 활용해 소통하고자 할 때 오른손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런 경향은 유인원들이 지시 대상을 손으로 가리키는 몸짓(동작)과 소리를 내는 행위를 동시에 할 때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한다. 그래서 브로드만 영역 44는 특정한 소리를 동반한 몸짓과 관련이 있음을 강하게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유인원들은 외침(소리)과 몸짓을 결합하여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우리의 조상 인류도 최초에는 단순히 원시적인 소리 신호뿐 아니라 몸짓도 사용했을 것이다. 이것만으로 머릿속 생각을 명확하게 전달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조상 인류는 원시 신호를 변형해 가면서 오늘날의 말에 가깝게 발화하기 시작했으리라 짐작된다.


이와 같은 언어 생성이나 발달 경로는 아기들이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한창 성장하는 아기는 몸짓과 언어가 동일한 뇌 영역에서 같은 시기에 발달한다고 한다. 아기들은 생후 10개월 즈음부터 몸짓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무언가를 가리키면서 달라고 하거나 옮겨달라는 등의 요청형이 대다수라고 한다.


14개월~22개월 사이에 이르면 몸짓과 말을 함께 사용하는 횟수가 크게 늘어난다. 돌을 갓 지난 아기는 손으로 먹을 것을 가리키면서 ‘맘마’라고 말한다. ‘맘마’라는 단어와 먹을거리를 손으로 가리키는 몸짓이 합쳐지면서 “먹을 것을 주세요”와 같은 문장을 발화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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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 보자. 개념을 형성하는 사고 능력, 원시적인 소리 신호, 거울 뉴런 시스템의 진화에 따라 나타난 몸짓 단계를 거치면서 인간의 언어가 세상에 출현하였다. 그 모든 단계에 두뇌를 중심으로 발음 기관 속에 있는 몇몇 부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진 또 다른 비밀스러운 과정이 동반했다. 미국 메사추세추 공대(MIT)에서 전기 공학으로 석사 과정을 마친 뒤 언어학으로 전향한 필립 리버만(Philip Lieberman, 1936~현재)을 따라 이 문제를 알아보자. 


필립 리버만은 언어 생성의 요소로 세 가지를 들었다. 인간의 두뇌, 발성 기관의 진화, 사회 문화 사이의 상호 작용. 


두뇌의 진화는 언어가 발생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다. 그는 두뇌와 언어 생성 간의 상관 관계를 사람이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추적하면서(tracking) 하는 행동 유형의 특징을 통해 설명했다. ‘르발루아(Levalloisian; 독특한 모양의 몸돌 원석(原石)과 여기서 떼어낸 얇은 돌조각이 프랑스 파리 근교의 르발루아(Levallois) 지역에서 발견되어 붙여진 이름)’ 석기 제조법이 사례로 제시되었다.


‘추적적’ 행동을 하는 인간은 행동에 필요한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행위의 구체적인 목표와 그것을 위한 과정, 방법을 분석(추적)한다. 행동 전후에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기 때문에 사고 과정이 다원적이고 복잡하게 펼쳐진다. 일정 정도 이상의 두뇌 용량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고차원적인 두뇌 활동이 없으면 힘든 일들이다.


추적적인 행동과 대립하는 ‘단선적’ 행동이 있다. 단선적 행동에서는 최종 목표가 중요하다. 중간 단계나 과정은 상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번식 과정에서 사회적인 금기 같은 제약을 고려하지 않고 아무하고나 교미를 하는 것은 단선적 행동이다. 이때는 교미 자체를 완수하는 일이 중요하다. 추적적 행동을 할 때에는 근친상간의 금기와 같은 사회적인 제약을 기억(추적)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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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구석기 시대 석기들은 단선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원하는 모양을 지닌 돌덩이를 골라 모서리만 조금 다듬으면 충분했다. 자갈 돌의 한쪽 끝을 다른 돌로 몇 번 쳐서 끝을 날카롭게 만든 찍개(chopper)가 단선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석기의 대표적인 예였다. 


고고학에서는 이와 같은 초기 구석기 시대의 석기 제조 공정을 ‘올도완 기법(Oldowan Technique; ‘올도완’이라는 이름은 ‘올두바이 협곡(Olduvai Gorge)’에서 나온 말이다. 탄자니아 북부 세렝게티 국립공원 동부에 있는 올두바이 협곡은 초기 인류 화석이 많이 나온 곳으로 유명하다. 고고학 명문인 리키 가문이 호모 하빌리스 화석을 발견한 장소도 이곳이었다.)’으로 부른다. 


올도완 기법은 석기가 최초로 등장한 이후 100만 년 정도 기간에 걸쳐 활용되었다. 중기 구석기 시대인 50만 년 전에는 ‘르발루아 기법(Levalloisian Technique)’이 등장했다. 르발루아 기법으로 만들어진 얇은 돌껍질은 대개 창촉이나 부싯돌로 쓰였다. 이 기법의 핵심은 제작자가 자신이 원하는 석기의 크기와 모양을 미리 계획(추적)한다는 것이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석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매우 효율적이었다.


언어를 쓴다는 것은 대표적으로 추적적인 행동 유형에 속한다. 우리는 하나의 단어가 머리에 떠오른 그대로 말을 하지 않는다. 말이 오가는 맥락을 따지고, 이미 주고받은 대화 내용을 계속 되살려야 한다. 위에서 살핀 것처럼 추적적 두뇌의 최초 산물은 르발루아 식 석기 제조법이었다. 따라서 인류가 최초의 원시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때는, 이 르발루아 식 석기 제조법이 도입된 50만 년 전쯤을 최대 상한선으로 잡을 수 있다.


* 제목 커버의 배경 이미지는 거울 뉴런과 관련된 그림이다. <한겨레>(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42697.html)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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