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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 Sep 23. 2022

식탁을 바꾸는 일에 대하여

어느 장모와 사위 이야기

"아야!"


나의 외마디 비명 소리에 놀란 남편은 한걸음에 달려왔다.


친정에 놓인 식탁 다리에 발목을 부딪힌 것이다. 식탁 상판을 지지하고 있는 네 개의 나무다리 사이에 또 다른 고정 축이 있는데, 다리를 놓는 공간에 방해 요소가 많다 보니 앉거나 설 때 조심하지 않으면 곧잘 사고가 난다. 이 식탁의 내력을 모르는 바 아니었는데, 아차, 방심했다.


엄마는 꽤 오래된 대리석 식탁 대신 우리가 이사하면서 처분하려고 마음먹고 있던 나무 식탁을 사용해보시겠다고 하셨다. 새로 하나 사 드린다고 했지만, 뭐하러 돈을 쓰냐며 우리 것을 가져다 놓으라고 고집을 피우셨다. 식사 외에도 차 한잔 하며 전화도 받으시고 식탁 위에 놓인 TV를 시청하며 머리에 ‘구르프’를 마는 것까지 거의 모든 것을 식탁 앞에서 해결하시는 분에게 이 나무 식탁은 누가 봐도 적합하지 않았지만,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우리가 쓰던 나무 식탁은 친정에 자리를 잡았다.


앉으나 서나 발목은 번번이 부딪히고, 나무 의자는 딱딱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간 별다른 내색을 못하셨던 것을 남편이 먼저 알아챘다. 사실, 그는 진작부터 용도에 맞는 괜찮은 식탁을 알아보던 중이었고, 마침내 조건에 들어맞을뿐더러 색감마저 친정 집 분위기와 잘 어우러지는 물건을 찾아냈다. 예상대로 그의 선택은 엄마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


식구들이 말렸지만 본인이 나무 식탁을 사용해 보겠다고 하신 말씀이 있어서 본심을 드러내지 못한 엄마의 속마음을 읽는 사람은, 아빠도 아니요, 나도 아니요, 바로 나의 남편이다. (무심하고 눈치가 부족한 딸내미 대신 센스 있고 손재주가 좋은 사위를 두셨으니, 그걸로 나는 효도한 거라고 큰소리 쳐보기도 한다.)


어디 그뿐이랴. 그는 항상 엄마의 마음을 귀신같이 읽는다. 통화 목소리만 듣고도 처진 기분을 간파하여 다정한 말로 마음을 살살 풀어주는 고급 기술을 발휘하는 걸 보면, ‘내가 결혼한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다니, 속았나?’라는 의심이 들 정도다.


이번에 배달이 온 식탁도 (늘 그렇듯) 조립식 가구점에서 구매하였기에 조립이 필요한 상태로 친정 집에 배송이 되었다. "저희 이번 주말에 가니까, 주말에 가서 오빠가 조립할 거예요."라고 생각 없이 내뱉자마자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듣던 그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어머니, 내일 별일 없으시면, 제가 가서 조립해 드릴게. 저도 완성된 모습이 너무 궁금해서 빨리하고 싶어요~"라고 보태는 말을 한다. 그렇게 그는 다음날 출근한 나를 두고 혼자 친정 집으로 달려가서 장장 4시간에 걸쳐 조립 작업을 했다.

엄마의 취향, 성격, 생활 방식 모든 것을 머릿속에 품고 사는 아들보다 더 아들 같은 사위. 그 곁에서 가끔 나는 내가 딸인지, 며느리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어느 날, 친정 집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의도치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엄마와 남편이 같이 서고 내가 살짝 뒤 쪽에 있었는데, 같이 탄 아래층 분이 "며느리신가 보다. 아이고, 내가 오늘 처음 보네~ 정말 참하시네~"라고 했던 일은 두고두고 잊히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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