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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Oct 26. 2018

사랑하던 순간이 미워지기 시작했다면 너무 사랑한 탓이다

큰일이다. 수영을 그만하고 싶다.

처음 수영을 배우던 날, 너무 놀랐다!  이렇게 재미있는 운동을 다들 나 몰래 하고 있었다니......


찰랑이는 물에서 물고기처럼 움직인다. 고민이나 걱정들은 발끝에서 물거품과 함께 흩어진다. 매일 조금씩 다른 물의 온도는 나를 더 따뜻한 사람으로, 혹은 더 싱그러운 사람으로 만든다. 수영장에 진지한 사람은 거의 없다. 조금 더 벗은 몸은 우리를 단순하게 만든다. 물은 투명하고, 각자의 고민들이 떨어져 나가니까 모두들 많이 웃는다. 그래서 한동안 수영에 푹 빠져서 지냈다. 수업이 없는 날에도 자유 수영을 하러 가곤 했고, 몸에는 수영장 향이 배었다.


그런데 큰일이다. 수영을 그만하고 싶다.


강사님은 좀처럼 자세하게 설명하시는 법이 없다. "이렇게 하시면 금세 되실 거예요." 하고 몇 번 자세를 잡아주는 것이 전부이다. 자유형, 배영까지는 큰 무리 없이 넘어갔지만, 평영에서 뿔이 나고 말았다.


오늘도 그냥 멍청한 개구리처럼 물에 있었다. 어제도, 엊그제도, 지난주에도.

동영상을 보며 꾸준히 연습한 것도 벌써 이주가 넘었다. 발꿈치를 잡고 수영장을 돌아다니는 것도 지겹고 특히나 강사님에게 자꾸만 샐쭉거리게 된다. 강사님의 수영 슈트가 강사님을 답답하게 만든 걸까? 내가 답답하게 만든 걸까? 한 일도 없이 물에 불어 쭈글쭈글해진 손에 눈이 간다. 어떻게 그렇게나 좋았던 수영이 이토록 싫어졌을까?




사랑하던 순간이 갑작스레 미워지기 시작할 때 어떻게 해왔던가.

쏟았던 마음이 너무 크고, 그때의 모습이 참 행복해 보이면 달리 방법이 없어 늘 힘들었다. 그래서 너무 자주 솔직했음을 반성한다. 요즘 네가 미워 보인다고, 우리 권태기가 온 것 같다고. 말해버렸다.

그때마다 잡아주던 네가 아니었으면 제대로 사랑도 못할 뻔했다.


수영장의 물은 언제나 찰랑이고, 강사님은 평소와 다를 것 없는데 나만 욕심을 낸 탓인데 수영을 미워했다. 상대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지 못하고 더 큰 뭔가를 바라며 욕심을 낸 것이 문제였는데, 너를 탓했다.


처음 수영장에서 발끝으로 거품을 만들며 마냥 웃던 그때 그저 뜨면 좋았고, 물을 덜 먹으면 다행이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욕심을 내려놓는다. 내가 좋았던 것은 물이었다. 하루의 고단함을 버려내는 몸짓이었고 투명한 웃음들이었다.


수영이 하기 싫은 날에도, 사랑이 하기 싫은 날에도

처음 그 날을 떠올리자. 그저 보기만 해도 좋았다.

너무 사랑한 탓이다. 조금 덜 사랑하며 그리워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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