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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 Apr 09. 2021

20살: 에필로그

 나는 교대생이 되었다.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다. 한 달째 학교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점은 동기들이 대부분 부족하지 않은 집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들이어서 자존감이 높고, 좋은 교육을 받아 주어진 일을 뭐든 척척 잘 해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보는 사람들마다 부모님이 허리 펴고 사시겠다고 칭찬을 자자하게 해 주시지만, 다른 아이들과 비교되고 위축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학교 근처 패스트푸드점 알바를 시작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까지 생활비 충당은 고등학교 때 모아둔 장학금으로 하고 있다. 일은 주 5회에서 많으면 6회까지 나가는데, 점심시간이 겹치면 햄버거 세트를 식사로 때운다. 일주일에 네 번씩 불고기버거 세트를 줄곧 먹다가 다른 비싼 버거로 챙겨 먹어도 된다고 해서 요즘에는 크리스피 치킨버거를 즐겨 먹는다. 슈림프 버거도 아주 좋아하긴 하지만, 치킨버거의 바삭바삭한 식감을 이길 수 있는 햄버거가 없다.


 돈을 벌면서 느끼는 점은 일이 생각보다 너무 고되다는 것이다. 엄마는 국가 지원을 받던 순간부터 병원에서 간병 일을 해왔는데, 환자들을 들어서 옮기는 것이 만만치 않은 중노동이다. 나는 콜라를 따르고 감자를 튀기고 청소를 하는 게 고작이면서 퇴근하고 골골대는데, 엄마는 어떻게 밖에서 일을 하고 집에 오면 우리 밥까지 차려줬을까? 주말에는 어떻게 또 장 보러 가서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쳐 매고 왔을까? 엄마는 대체 어떻게 버텨냈던 걸까? 마음에 여유가 없어 나를 살필 줄 모르던 엄마가 원망스러웠던 순간들이 너무나 많은데, 지금에서야 엄마가 혼자서 생각보다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첫 월급으로 엄마랑 동생을 데리고 동네 파스타집으로 갔다. 봉골레랑 로제가 무슨 말인지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유추했다. 사진을 보니 봉골레는 조개가 들어간 것을 말하는 듯하다. 로제는 빨간색인데 매운맛인가? 처음 보는 메뉴들을 여러 가지 시켰다. 봉골레 오일 파스타, 새우 로제 파스타, 불고기 리조또 등이었다. 비닐을 씌운 통을 함께 줬는데,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한참 생각하다가 다른 테이블을 보고 조개껍데기를 담는 통인 것을 알아챘다. 로제 파스타는 매운 것이 아니었다. 부드러우면서 상큼한 맛에 매료되었다. 밥을 우유에 끓인 것처럼 생긴 리조또도 처음에는 생소했는데 고소한 맛이 진해 최애 음식 리스트에 바로 올랐다.


 사회생활을 겪으면서 드는 생각은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이 걱정하던 만큼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의지가 있으면 어떤 노동을 하더라도 나의 어릴 적처럼 딱딱하게 굳은 밥을 먹거나 구멍 난 신발을 신고 다니거나 하지 않을 만큼 살 수 있는 것 같았다. 패스트푸드점 알바는 최저시급을 주는 알바였지만, 일하는 시간만큼 벌어 갔기에 많이 일하면 학교를 다니면서도 한 달에 60만 원은 거뜬히 벌었다. 나 혼자 쓰 대학 졸업 전보다 충만한 생활을 할 수 있으며, 엄마와 동생이랑 한두 끼 정도 치킨이나 피자로 사치를 부려도 괜찮은 수준의 수입이었다. 엄마도 우리가 없었으면 힘든 일을 하지 않고 꽤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갑자기 엄마에게 미안해졌다. 돈을 많이 벌어서 효도해야겠다는 생각이 중학생 이후 처음으로 들었다.


 대학 생활에서 내가 찾아 헤매던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 사회 안에서 나는 너무 부족한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던 내가 한 번에 바뀔 리 없어서 자책도 많이 하게 될 것 같고, 일을 해서 돈을 벌더라도 예전과 다를 바 없이 그들에 비해 가진 것이 없다. 내가 남들과 같은 행복을 누리기 위해 아직까지도 걸어가야 할 길이 멀겠지만, 확실히 과거에 비해서 나는 한 걸음씩 더디게 행복에 가까워지고 있다.

 많은 가난한 영혼들이 비교적 가난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을 얻고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가난 때문에 행복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바닥에서부터 올라가며 살아온 가난한 사람은 겪어본 바닥이 있기에 무엇을 해도 강인하게 이겨낼 수 있는 큰 힘이 있다.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의 모습대로 행복을 추구하길 간절히 바란다.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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