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정 Apr 09. 2021

19살: 기회균등 전형

 "나도 우리 집 못 살았으면 좋겠다. 그럼 좀 더 편하게 대학에 갈 수 있을 텐데."


 상처 주는 말인 줄 알면서 그랬을까?

 내신점수를 잘 일구어둔 상위권 학생들은 다들 수시 입학으로 예민해져 있던 시기였다. 좋은 대학에 가겠다는 같은 목표가 있어서 함께 으쌰 으쌰 하면 좋았겠지만 내신 성적이라는 게 서로 경쟁해야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2학년 때부터 날 선 구도가 형성되어왔다. 우리는 결국 서로를 이겨야 했기에 온전히 서로를 위해주는 사이가 될 수 없었다.


 원서 접수 시기가 다가오고, 상위권 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른 것은 서울대 지역 균등 전형을 쓰게 될 학교장 추천인이 누가 될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었다. 수도권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모든 지역에서 균일하게 학생들을 뽑아가기 위해 전 지역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한 학교 당 한 명씩만 쓸 수 있는 전형이었다. 우리 학교에선 문과에서 1등을 고루 나눠 차지하던 3명이 학교장 추천의 후보에 올랐다. 나는 기초생활 수급자라서 지역 균등 전형 말고도 소득이 낮은 학생들이 쓸 수 있는 기회균등 전형으로 지원이 가능했고, 서울대가 아닌 교대 지망이어서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선생님들이 내신점수 때문에 서울대를 써 보라고는 하겠지만, 능력도 형편도 안될 것 같아 정말 그냥 원서를 내는 것에 그칠 일이었다. 다른 한 명도 기회균등 전형으로 지원이 가능한 아이였다. 그래서 아마 나머지 한 명인 301호 룸메가 지역 균등 전형으로 지원하게 될 것 같았다. 우리끼리 결정할 일이 아니고 선생님들도 진학 성적을 잘 거두기 위해 고심해야 하는 문제였기 때문에 3명의 후보만 정해진 채 꽤 시간이 흘러갔다.


 내 301호 룸메는 나와 함께 내신점수를 잘 받기 위해 노력하던 오랜 동지였다. 야자가 끝나고 기숙사에 돌아와서도 심야 자습을 위해 함께 열람실에 내려오곤 했다. 겉으로는 서로를 챙겼지만 결국 누군가 이겨야 했기에 속에서는 소리 없이 피 튀기는 전쟁을 하던 사이이기도 하다. 다들 잘 준비를 하는 시간에 룸메와 조용한 열람실로 함께 내려가는데 그 애가 별안간 마음을 찢는 말을 뱉어냈다. 자기도 나처럼 가난했으면 편하게 대학에 갔을 거라고 말이다.

 물질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받은 것 없이 자랐던 아픈 기억을 가벼이 여기는 말이었다. 목표를 이루려는 나의 노력을 편법이라 여기는 말이기도 했다. 별거 아닌 일에 큰 대가를 받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듯한 말투에 분노가 치밀었다. 나에게 어린 시절 행복이 주어진다면 대학에 쉽게 갈 수 있는 열쇠 따위 필요 없다. 삶을 바꿀 수 있다면 그런 말을 함부로 뱉을 수 있었을까? 함께 밤새가며 울어가며 집념 하나로 공부해온 게 2년 째인데, 어떻게 내가 편하게 대학에 가려한다는 말을 뱉을 수가 있지? 화가 치밀었지만 몸이 가난한 나는 마음도 가난해서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아이였다.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하고 곧장 열람실로 들어갔다.


 지역 균등 전형의 학교장 추천은 301호 룸메가 받게 되었다. 어느 정도 예상이 되었던 결과지만, 아마 그 애도 학교장 추천 자리를 두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경쟁으로 메마른 관계 속에서 날아오는 날 선 말은 가난한 내 마음을 찢어발겼다.

 그리고 나는 교대와 서울대에 기회균등 전형으로 원서를 넣었다. 국가에서 공인한 자격요건을 갖추었을 뿐이라고 당당하게 여겨도 낮아지는 자존감은 어쩔 수 없었다. 원서를 넣으며 이 입시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올해가 아무런 수도 쓰지 못하고 가난에게 져 버리는 마지막 해가 되리라.

이전 11화 18살: 삶의 보석을 나는 잘 몰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