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을 보내며,
벌써 또 새로운 한 주, 월요일이네요. 벌써 일 년의 끝자락인 12월의 마지막 주이기도 하고요.
당신의 요즘은 어떤가요?
이 맘 때쯤이면 전 늘 마음이 싱숭생숭해집니다.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하거든요. 대체 지금까지 뭘 한 거지? 또 한 해가 갔는데! 왜 나는 이 모양인 걸까. 답답하고 화가 나다가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분명 저도 나름 열심히 살았고, 매일 바쁘고 힘들었던 것 같은데 왜 뭐 하나 잡히는 게 없는 기분인 걸까요? 대체 제 땀과 눈물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요?
침울 속으로 침전하기 시작할 무렵, 오랜 친구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사는 게 피로하고 지겹다고 하더라고요. 그 친구는 누구보다 제 몫을 잘 해내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아르바이트도,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고, 1인분 그 이상의 삶을 위해 최선을 다했죠. 하지만 애써 지켜온 삶이 친구에게 큰 만족을 가져다주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비슷한 이야기는 일로 만난 다른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도 들었습니다. 오랫동안 한 직장을 다닌 보통의 커리어가 사소하게 느껴지고, 회사와 집을 쳇바퀴 도는 일상을 돌이켜보면 시간을 버리는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들의 지나온 그 시간들이 참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한 이의 꾸준함과 성실성, 같은 일을 오랫동안 해온 사람들이 갖는 전문성과 끈기는 정말 멋지니까요.
우리 사회는 ‘특별함’과 ‘변화’에만 너무 주목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은 꾸준하게 변함없는 것들이죠. 창작자로서 매번 느끼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제가 기획한 것들이 실제로 운영되도록 실현하는 것들은 행정과 실무의 힘입니다. 그게 없다면 실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죠.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늘 꾸준히 움직이는 것들의 위대함, 그걸 오랫동안 지켜온 그들의, 그리고 어쩌면 그들과 닮아 있을 당신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당신이 무언가를 만들거나 수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저는 정말 당신의 손길에 무한한 감사와 존경을 보냅니다. 세상은 온통 서비스업과 금융에 대해서 떠들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건 ‘물질’ 아닐까요? 인간을 먹이는 식량,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어내는 일은 정말 너무도 귀하고 소중한 일이니까요. 당신 같은 분들의 성실한 노동과 노력이 맺은 결실을 누리는 사람으로서 당신의 하루에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당신이 만약 전업주부라면 당신의 오늘에 깊이 고개를 숙입니다. 제 친구들이 엄마가 되고, 또 부모님이 저보다 작아지고 나니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말로만 듣던 가사와 돌봄 노동의 고됨을 말입니다. 24시간 휴식 없이, 365일 휴일 없이 돌아가는 일상과 뚜렷한 대가 없이 나를 지워야 하는 삶, 쉼 없는 감정노동과 그 과정에서 느끼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피로감. 하지만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모든 걸 삼켜내야 하는 그 어려운 순간을 지난 당신의 마음을 꼭 안아주고 싶습니다.
만약 당신이 학생 또는 수험생, 취준생이라면 축 쳐진 당신의 어깨를 토닥이고 싶습니다. 아무 것도 한 게 없는 것 같지만 분명 바삐 지냈을 당신의 하루에 박수를 보내며 설령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날일지라도 수고 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부담을 안고 버티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에너지가 든다는 걸 너무도 잘 아니까요. 그런 당신을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싶습니다. 힘이 들 때 달려오는 당신을 꼭 안고 지친 등을 쓸어줄 수 있도록.
서로를 모르지만, 어쩌면 한 번쯤 스쳐 지났을지도,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을지도 모를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 미친 세상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우린 꽤나 대단한 거라고. 뭐 그런 사소하고 빤한 이야기를 하고 앉아있나 싶을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세상은, 우리의 삶은, 그 하찮고 빤한 것들의 힘으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요? 설령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도 당신의 삶은 대단합니다. 큰 사고가 없기에 현재의 삶이 단단하다는 걸 모를 뿐, 당신의 안전하고 단순한 하루는 방황하는 누군가의 꿈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어딘가에서 당신과 비슷한 하루를 힘겹게 혹은 소소하게 살아내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며, 기억하세요. 보이지 않은 곳에서 당신을 응원하는 누군가가 있음을요.
2023. 12. 25.
마음을 담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