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하고 까칠한 직장인의 사회성에 대하여
교사들도 회식을 한다. 하지만 그들의 회식 문화는 일반 직장인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 일찍 시작해서 일찍 끝나는 게 정석. 내 생애 첫 회식은 무려 7시에 끝이 났다. 자유롭고 공평한 조직 문화 덕에 1차 이후엔 비교적 퇴근권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고, 회식비는 1/n로 책정되었다. 물론 동시에 중앙집권적 카리스마도 공존하기에 대부분 회식 메뉴 선정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결정되어 있었다.
직장C의 경우도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분명 다른 점이 있었다. 합법적으로 쟁취한 칼퇴와 함께 일찍 회식이 시작한다는 것도, 메뉴 결정과 계산 방식에 애매한 민주주의가 개입한다는 점은 같았지만, 술이 메인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일찌감치 손에 쥐기 시작한 술잔을 빠르게 비워내 9시쯤엔 이미 2차까지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그날 회식의 문제는 굉장한 애주가가 가까이 앉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표현하면, 전 세계의 애주가들에게 미안하지만. 아무튼 나는 그 자리에 '불려 가서' 술잔을 받았다.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았지만, 그들에겐 그저 반가움의 표현이었을 것이라 여기며 참기로 했다. 왜 참는 건 나만의 몫인가 불쾌하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 고려해야 하는 꼬리의 본분에 충실하기로 했다. 그래도 모두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니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이야기에 장단을 맞추며 사막 속에서 발견한 오아시스를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 평화를 얼마 가지 않았다.
“직장 나가면 다 아저씨, 아줌마야. 아줌마! 아줌마!”
나를 향해 이죽거리는 그 외침에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아니, 하고 싶지 않았다. 인내심의 한계가 왔다. 대체 웃으라고 하는 농담인 건지 의심스러웠지만 주변에서 다들 웃는 걸 보니 농담이었던 것 같다. 옆에 앉아 있던 동료가 ‘웃는 거 맞지?’라고 물었을 때도 ‘웃어! 웃어야 해!’라고 말하는 일종의 신호로 느껴졌다. 분명 여성이 많은 직장임에도 이런 불편한 상황이 종종 발생했다. 더 불편한 사실은 불편하게 느끼는 건 예민한 것이고, 그걸 참지 못하면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취급받는다는 것이다. 예민한 나는 사회성을 키워가는 중이었다. 몸에는 독이 쌓이는 중이었다.
전날의 일을 해독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순한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갈아둔 콩물이 떠올랐다. 한 숟가락 퍼서 입에 넣고 오물거리면 입 안 가득 고소함이 번지는 맛. 불투명하게 진한 하얀 빛깔처럼 순수하고 농도 짙은 그 맛이 생각났다. 다른 양념은 전혀 필요 없었다. 원래의 맛을 잘 드러낼 약간의 소금만 있으면 충분했다. 거기에 잘 삶아진 탱탱한 면발을 말아 넣으면 소박하지만 깊은 맛의 콩국수가 완성된다. 아무런 고명 없는 가장 기본의 콩국수를 난 좋아한다. 그게 콩의 깊은 맛을 느끼기에 가장 좋으니까. 재료 본연의 맛에 집중하기 위해 다른 겉치레쯤은 포기할 만하다. 너무 심심하다 싶을 때 칼칼한 김치 한 점으로 미각을 살짝 자극시켜주면 된다. 하지만 어제의 무거운 흔적들을 지우기 위해서는 좀 더 가벼운 게 필요했다. 가지를 꺼내 들었다. 면발처럼 세로로 길게 잘랐다. 가느다랗게 변한 가지 가닥들을 소금에 살짝 절인 뒤 물길을 꼭 짜내서 통에 담았다. 소금도 따로 챙겨두었다.
오전 내내 냉장고에 차갑게 식혀진 콩국물에 가지 면발을 넣었다. 약간의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간소한 재료들을 열심히 섞었다. 되직한 콩국의 하얀 기운을 잔뜩 묻힌 어두운 가지 가락을 입에 넣었다. 지구의 맛이었다. 땅에서 나고 자란 콩과 가지가 햇빛과 비바람을 맞으며 견뎌온 시간의 단단함을 씹고 있는 기분이었다. 대지에서 거둔 결실에 바다의 열매를 더해지는 순간 저 안에 묻혔던 자물쇠가 스르르 풀렸다. 맛은 더 깊어지고, 더 진해졌다. 전날의 기름진 얼룩들이 씻기는 느낌이었다. 속이 편해졌다. 마음이 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