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지 않는 여자가 된
30년 넘게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았던 그 근원을 탐구하며
남편을 만난 지는 딱 10년, 유부녀가 된 지는 9년이 되었다.
딩크 9년 차.
"아이는 없으세요?"
"왜 안 낳으세요?"
근 10년간 딩크와 관련해서 많은 질문을 들었고, 여러 답변을 했다.
때론 인터뷰를 하듯, 때론 옹색한 변명을 하듯, 때론 속 시원하게 솔직한 심정을 대답했다.
지금 쓰는 이 글은 누군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다.
오히려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나는 왜, 애초에 아이를 갖고 싶어 하지 않았나.
끝없이 상승하는 부동산, 일과 양립이 어려운 육아, 숨 막히는 경쟁 사회, 부족한 경제력, 타인과의 비교, 상대적 박탈 등등.
내 안에도 자발적인 딩크가 되는 그 모든 이유가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저출산이 점점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이런 이유들이 사회 저변에 확고히 자리 잡기 전에도.
그러니까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30년 전에도.
30년도 더 전에 열 살이 되기 전에도,
나는 아이를 갖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하는 막연한 상상과 생각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뚜렷한 결심이었다.
내가 그 결심을 확고하게 입 밖으로 처음 내뱉었을 때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학년이 끝나가는 초등학교 3학년 겨울의 문턱쯤이었다.
나는 친한 남자아이와 차가운 풍경의 운동장을 내다보며 창문 앞에서 서있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우리는 결혼과 자녀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남자아이는 커서 결혼하면 몇 명의 아이를 낳을 거라고 했다.
(참 착하고 순수한 아이였다.
아직도 그 애의 동그란 안경테와 소처럼 착해 보이던 눈이 생각난다.
숱이 많아 빽빽하게 구불거리던 반곱슬 머리도 생생하다.)
나는 결혼이 당연한 전제 조건이던 남자아이의 말에 단호하게 얘기했다.
"나는 결혼하지 않을 거야."
10살에 한 비혼 선언이었다.
눈이 동그래지는 남자아이에게 나는 한 마디를 더 보탰다.
"그리고 절대, 애는 낳지 않을 거야. 절대로."
10살에 나는 처음으로 자식을 낳지 않을 거라고 선언했다.
충격을 넘어 황당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묻던 남자아이의 말도 정확히 기억난다.
"어떻게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을 수가 있어?"
결혼을 안 한다는 발언도, 거기에 더해 애를 안 낳는 것도 모두 극도로 놀라워하던 아이의 모습.
지금이야 저렇게 대답하는 아이들도 넘쳐 날 수 있겠지만,
30년 전에 저렇게 대답하는 아이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왜 열 살도 전부터 결혼조차 거부하며,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다짐했을까.
글 제목은 마치 아이를 낳지 않게 된 뿌리를 찾아가는 정신과 심리의 학구적인 탐구 여정 같지만 실상은 매우 간단한 이야기다.
뿌리 깊은 가정 폭력의 상흔이라고 하는, 뻔하고 식상하기까지 한 이유.
어려서 그런 결정을 한 데에는 불행해서, 행복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결혼과 관계된 모든 것에 부정적인 경험을 했기 때문에.
한 가정의 아이로 자라나면서 행복했던 기억은 너무나 귀할 정도로 적고 드물었다.
어린 시절 나는 늘 무슨 일이 일어날까 대게 불안해했고, 살얼음판 위를 걷듯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살았다.
오늘은 아무 일도 없이 무사히 지나가길.
내가 집에서 바란 한 가지는 그것이었다.
평온하게 지나가는 하루.
그리고 점점 커가면서 성인이 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불혹이 되어서도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어려서의 불행함 보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경제적 이유, 경력 단절, 양육의 어려움 등등 그 모든 표면적인 이유를 지나.
내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는 두려움이라고 하는 근원적인 이유가 존재한다.
가까운 가족 중 누군가가 혹은 가끔씩 남편이 하는 말이 있다.
"당신은 정말 장인어른이랑 똑같아."
식성이나 집안 정리 정돈, 말투, 행동에서 겹쳐지는 부분을 신기해한 남편이 농담으로 하는 말이다.
남편과 내가 웃고 떠들며 말하다가 그냥 아무 의도 없이 하는 장난이고 농담인 말이다.
전혀 심각한 상황이 아닌데도,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심장이 선득해진다.
나는 정말 빼다 박았을 정도로 아버지를 닮았다.
생김새, 말투, 성격, 식성, 사고의 방식까지...
씨도둑은 못한다더니, 나는 아버지의 판박이다.
나는 그런 내가 두렵다.
정확하게는 그런 내가 어떤 아이의 부모가 되는 게 무섭다.
그 마음을 극복해서, 태어난 아이에게 잘해주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마흔이 넘도록 극복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저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싶지 않아서, 이 핑계 뒤에 몸을 숨기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이기적이고 비겁한 이유라 할지라도 나는 내가 두렵고 무섭다.
비록 아버지처럼 알코올 중독자가 되진 않았지만.
주위 사람 피 말리게 하는 그 기질은 그대로 이어받았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배려를 모르는 내가,
어린 나를 질식시킨 아버지를 똑 닮은 내가,
한 아이의 부모가 될 수 있는가.
나의 의지로 이 세상에 불려 온 어린 영혼을 올바르게 돌볼 수 있는 성숙한 인간인가.
그 질문에 대한 내 마음속의 대답은 아직까지도 '아니요'에 머물고 있다.
성인이 된 육체와 점점 커져가는 나이에 맞지 않는 존재가 내 안에 있다.
상처만 받고 치유되지 않은 아이가 내 안에서 여전히 웅크리고 있다.
나는 계속 늙어만 가는데, 내 속에 있는 아이는 몇십 년이 지났는데도 그대로다.
내 속에 어린 나는 아직도 두려움에 떨고 있고, 나는 어른이 된 미숙한 내가 두렵다.
나는 그 모든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했다.
영원히 극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미 생물학적으로 어떤 아이의 부모가 되기에는 늦은 나이다.
그 현실이 차분한 안도감으로 다가올 때도, 문득 서글픔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나라는 존재가 부모가 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어서.'
이런 구차한 이유로 나는 30년이 넘게 아이를 갖지 않았다.
지극히 평범하고 뻔한 이유다.
그래도 30년 전의 결심에서 바뀐 현실이 있다면,
10살에 선언했던 비혼은 보기 좋게 깨졌다.
나는 내 인생의 모든 복과 맞바꾼 사람을 만나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선언은 이어지고 있지만.
냉소적인 농담을 던지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 아이를 낳지 않겠다던 나의 첫 선언을 들었던 남자아이.
결혼해서 꼭 몇 명의 자녀를 낳겠다던 그 남자아이는,
길고 긴 공부와 유학 생활로 아직까지 미혼이다.
꼭 결혼한다던 누군가는 마흔이 되도록 미혼이고,
30년 전부터 비혼을 선언한 누군가는 결혼을 해 (아이는 없지만) 잘 살고 있다.
역시나 인생은 끝까지 살아봐야지 알 수가 없는 법이다.
나는 오늘도 두려움을 떨치지 못한 채, 하지만 한 걸음씩 인생을 살아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