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날이 좋으면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급식을 먹고 나서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매점에서 산 오백 원 짜리 아이스크림을 입에 하나씩 물고 구령대가 있는 긴 돌계단에 나란히 앉았다. 앞을 보면 운동장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찬란한 햇살 아래 교복이나 체육복을 입은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운동을 하거나 걸어 다니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그 풍경을 바라보는 것을 즐겼다. 운동장의 한가운데서 땀을 흘리며 축구를 하는 남자애들, 철봉에 매달려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시험해보는 아이, 한편에 마련된 모래밭에서 멀리 뛰기를 하는 아이들까지 그 모양새가 다양했다.
나는 지혜 옆에 앉아 있었다. 지혜는 눈에 띄게 예쁘고 성격도 외향적이어서 인기가 많은 친구였다. 몇몇 여자애들은 그런 지혜를 질투해 가끔 못살게 굴기도 했다. 그러나 지혜는 그럴 때마다 아랑곳 않고 새롭게 어울릴 만한 친구를 찾았다. 나는 지혜의 그런 친구 중 한 명이었다. 우리는 같은 반에 함께 어울리던 무리가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지혜는 본인이 친하게 지내던 다른 반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원래 어울리던 같은 반 친구들과 멀어져 있었다. 그 애들은 튀는 행동을 하는 지혜를 내심 싫어했는데, 내가 그 뒤로 눈에 띄게 지혜와 둘이서만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중간에 끼어 난처한 입장이 되었다. 그 후로 왠지 죄책감이 들어 원래 같이 다니던 친구들을 떳떳하게 대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혜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쉬는 시간만 되면 내 손을 잡고 다른 반 친구들을 보러 갔다. 전교에서 그 애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언제나 튀는 외모와 행동으로 주목을 받는 무리였기 때문이다. 반면, 나는 학교 생활을 조용히 하는 편이었고 그전까지 나와 결이 비슷한 친구들과 어울렸기 때문에 그 애들과 함께 다니는 것이 다소 어색했다. 그러나 그때는 내가 그들과 다 함께 잘 지냈으면 하는 지혜의 마음을 차마 외면하지 못했다. 물론 그들이 어떤 식으로 놀고 또 일상을 보내는지 내가 자세히 알 턱이 없었다. 그저 학교에서의 이미지와 평판에 따라 그 애들을 내 멋대로 판단했을 뿐이다.
그러나 막상 함께 지내보니 지혜의 친구들은 멀리서만 보던 것과는 다르게 의외의 면모가 있었다. 갑자기 그들 사이에 끼어든 나를 경계할 법도 한데, 흔쾌히 받아들여주었다. 우리는 점심시간이 되면 함께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가서 양치도 하고, 체육실에 있는 전신 거울 앞에 서서 각자 자신의 모습을 요리조리 살펴보기도 했다. 그 애들이 틴트를 바꿔볼까, 혹은 교복 치마를 좀 더 줄여볼까 고민하는 것이 신기했지만 그런 속마음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다.
지혜의 친구들은 말하는 게 거침이 없었고 웃겼다. 다소 거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서 새롭기도 했다. 내가 혹시라도 소외될 까 봐 나를 더 신경 써서 챙겨주는 아이도 있었다. 언젠가 한 번은 다른 무리의 아이들이 내가 그들과 친해진 것이 신경에 거슬렸는지, 나를 공격하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살면서 그런 말을 들어본 것이 처음이라 순간적으로 아무 말도 못 하고 벙쪄 있었다. 그런데 지혜의 친구들 중 한 명이 그 말을 되받아쳐서 그 말을 한 애를 무안하게 만든 것이다. 나는 평소에 마냥 사나운 줄만 알았던 아이가 나를 대신해 그런 말을 해준 게 내심 고마웠다.
급식 메뉴가 별로인 날에는 작당을 해서 학교 밖 중국집에 짜장면을 먹으러 갔다. 학생들이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정문에는 학생주임 선생님이 서 계셨기 때문에, 우리는 학교 뒤 편의 담장을 넘었다. 그러나 사람 수가 꽤 되었기 때문에 움직임이 눈에 띄었나 보다. 저 멀리서 학생주임 선생님이 우리를 발견하고 당장 내려오라고 소리쳤다. 우리는 순간 놀라서 허둥지둥했다. 그러나 ‘어차피 저 멀리서 우리 얼굴을 식별하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자 순간적으로 대담해졌다. 나는 내심 겁이 났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담을 넘었다. 나중에 보니 두 손바닥이 온통 새까매져 있었다.
중국집 주인은 교복을 입고 온 우리를 흘긋 쳐다보았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고 주문한 짜장면을 내주었다. 개중에 한 명이 너네 짜장면에 고춧가루 뿌려 먹느냐고 물었다. 나는 놀라서 되물었다. 짜장면에 고춧가루를 왜 뿌려? 그러자 그 말을 한 애가 그렇게 먹으면 맛있다고 답하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까만 짜장면 위에 무심하게 빨간 고춧가루를 톡톡 뿌려 비빈 후에 크게 한 입을 먹는 것이었다. 마치 나는 나의 길을 가겠다는 태도로. 나는 그 모습이 왠지 어른스러워 보여서 나도 따라서 고춧가루를 뿌려 먹어 보았다. 그렇게 먹는 짜장면의 맛은 특별했다.
밤이 되면 그 애들과 몰래 학교 정문을 넘었다. 폴짝, 경쾌하고 조심스럽게 발을 땅에 내디딘 후에 우리는 두 발로 신나게 운동장의 배를 갈랐다. 그런 뒤 널려 있는 축구공이나 배구공을 아무거나 집어 엉덩이 밑에 하나씩 깔고 앉아 요리조리 굴리며 밀회를 즐겼다. 그래 봤자 막상 만나면 시시콜콜한 잡담을 하고 깔깔대며 웃기나 했지만, 그때는 그게 그렇게 재미있었다. 어둠이 내려 까맣게 변해버린 운동장은 왠지 낮과는 달라 보였고, 아무도 없는 교정에 우리만 있다는 사실과 금지된 행동을 한다는 것이 설명 못할 짜릿함을 느끼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한 번은 경비 아저씨에게 걸려 꽁무니에 불이 나게 다시 교문을 넘어 학교 밖으로 도망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질겁을 하다가도 허리가 젖혀질 정도로 크게 웃었는데, 안도감과 짜릿함이 섞인 웃음이었다. 높아만 보였던 교문이 한 번 넘어보니 별 것도 아니었다.
수업 시간에는 지혜와 떠들거나 시답잖은 장난을 주고받다가 선생님께 혼나기도 했다. 살면서 그래 본 적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별 거 아닌 내용으로 수다를 떠는 것이 어찌나 재미있는지 몰랐다. 또, 한 번 혼나 보니까 그다음에 혼나는 게 그렇게 무섭지도 않았다.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짓을 하는 게 그토록 재미있는 일인 줄 해보고 나서야 알았다. 결국 학업 성적은 점점 떨어져 갔고 나는 쉬는 시간만 되면 지혜와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어른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는 것을 어느 순간 알아차렸지만, 애써 모르는 체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들이 나를 제외하고 모이는 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혜는 그 사실을 숨기다가 어느 순간부터 속도 없이 그다음 날만 되면 내 앞에서 전날에 자기들끼리 무엇을 했는지 말하고는 했다. 그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는데, 그들끼리 밤에 모여서 몰래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거나 남학생들을 만났다는 것이었다. 그다음 말은 더 기가 막혔다. 애들은 지혜 보고 편의점 앞에 서 있다가 지나가는 어른에게 담배를 사달라고 하라고 시켰다는 것이다. 그걸 대체 왜 너한테 시키냐고 지혜에게 물었다. 그러자 대답이 가관이었다. 지혜가 그중에서 제일 예쁘니까 지나가는 남자들이 순순히 담배를 사줄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화가 나서 그래서 정말 그렇게 했냐고 묻자, 지혜는 멋쩍게 웃으며 응, 하고 대답했다. 설상가상으로 내가 정말로 참을 수 없었던 건, 내게는 잘해주던 아이들이 아무 잘못 없는 학생들을 괴롭힐 때였다. 누군가 그들의 심기나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는 언행을 하면 그 애를 구령대로 불러내 에워싸고 욕을 하며 다그쳤다. 나는 그때 충격을 심하게 받았다. 내가 그동안 몰랐던, 혹은 애써 모른 척했던 그 애들의 또 다른 얼굴을 직면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그 일을 계기로 그들과 멀어졌다. 도저히 내 가치관과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그 애들과 예전처럼 웃으며 지낼 수가 없겠다고 판단했다.
내가 그 무리에서 멀어진 후로 지혜는 방황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딱히 나와 다시 잘 지내려고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기를 몇 주, 지혜는 내게 따로 찾아와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지금 다니는 아이들과 잘 지내다가 어느 순간부터 소외감을 느껴 나를 무리에 끼워 넣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 무리 사이에 자기편을 하나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러면 왜 처음부터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았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 순간 지혜의 얼굴을 보니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사람이 외로울 때 짓는 표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몇 주 뒤, 지혜는 무리로부터 불려 나갔다. 아마도 그전부터 쌓였던 소소한 갈등이 터진 것 같았다. 그 애들은 다른 애들을 괴롭힐 때처럼 지혜를 구령대 계단으로 불러내 험한 말을 했다. 그건 일종의 나쁜 관행 같았다. 지혜는 억울했는지 그들의 말을 받아치기도 하고 따져 묻기도 했지만 그 애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날 지혜를 버리기로 마음먹은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무리가 사라진 뒤, 나는 우두커니 서 있는 지혜의 머리 위로 우산을 씌워 주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애는 비를 맞든 지 말든지 계단 위에 서서 아랑곳 않고 연신 욕을 했다. 지들이 뭔데,부터 시작해서 온갖 욕으로 끝나는 문장을 내뱉는 그 애를 아무 말 않고 지켜보았다. 공기 중에는 빗줄기가 흙과 만나며 생기는 비릿한 냄새가 떠다녔다.
그날 지혜는 나를 학교 뒤편에 있는 담장 구석으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비를 맞고 있는 철쭉나무가 여럿 있었다. 나는 처음 보는 커다란 꽃나무 군집에 거의 압도되었다. 이상하다? 그전에 몇 번이고 담을 넘어 보았으면서도 그런 광경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거기에는 진분홍색, 하얀색, 옅은 자주색 등 여러 가지 색의 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비를 맞는 다양한 색의 꽃나무는 평소에 교정에서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던 다른 꽃나무와는 달라 보였다. 빗방울이 꽃잎에 송골송골 맺혔다가 땅 밑으로 툭툭 떨어지고, 다시 새로운 물방울이 맺히기를 반복했다. 지혜는 그 앞에 서서 울었다. 그러다 대뜸 속이 상한다고 토하듯이 말했다. 무리에서 버림을 받은 것도 억울하고, 오늘이 제일 좋아하는 친구의 생일인데 축하해주러 갈 수도 없다고 말하며 울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떤 말로도 그 애를 위로하거나 도리어 내 입장을 피력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저 그 애가 비를 맞지 않았으면 해서 계속 우산을 받쳐 주었다.
몇 달 뒤, 나는 결국 그 뒤로 지혜를 비롯한 반 아이들과도 멀어져 거의 혼자 생활했다. 지혜는 나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 애는 웃음을 되찾았다. 또다시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고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이 들었지만, 신경 쓰지 말자고 다짐했다. 지혜는 지금 웃고 있으니까. 나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으니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발신자를 확인해보니 지혜였다. 전날 밤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전화를 건 것이다. 그런 적은 처음이었다. 놀란 나는 학교에 가서 지혜에게 무슨 일 있었느냐고, 어제 자느라 전화를 못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지혜는 별거 아냐,라고 말했다. 전화를 건 의중이 궁금해 다시 한번 물었지만 대답은 같았고 대화를 더 이어가고 싶어 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난처해지면 웃으면서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는 게 그 애의 습관이었다.
결국 아무런 말도 듣지 못한 채 밥을 먹고 나서 점심시간이 끝나가는 시간에 나는 혼자 긴 복도를 걸어 교실로 돌아갔다. 종이 치기 직전, 복도에는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있었다. 교실 안으로 들어가면 종이에 오목판을 그려 두고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오목을 두거나 책상을 사이에 두고 열심히 잡기 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반면, 몇몇 학생들은 체육복을 뒤집어쓰고 엎드려 자기 자리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나는 그들을 모두 지나 자리에 가서 앉았다. 내 자리는 창가 옆이었다. 창 밖을 보니 햇살이 노랗게 내리쬐고 있었다. 운동장은 제 몸을 비우고 드넓은 품을 벌려 고요히 볕을 받아내고 있었다. 그 풍경을 보고 있자면 교실의 소란스러움이 저 멀리로 가 버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불현듯 지혜 생각을 했다. 그 애가 미우면서도 곁에 있어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놔두면 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문득, 큰 바람이 불어와 창 옆의 빛바랜 옥색 커튼이 나부낄 때마다 은은하게 나던 먼지 냄새가 창 밖의 공기와 섞여 훅 끼쳤다. 낯설고도 익숙한 냄새가 났다. 계절이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런 식으로 알아차렸다.
겨울 방학 동안 나는 학업에 열중했다. 언니를 따라 먼 동네로 버스를 타고 가서 학원 수업을 듣고, 자습을 하다가 집에 와 늦게까지 공부를 하는 일상을 반복했다. 학구열이 높은 동네에 있는 학원은 철저하게 성적순으로 분반을 했다. 나는 하위권 반에 배정되었다. 그러나 그 반 아이들조차 공부를 못하는 게 아니었다. 학원 아이들은 조숙했고 수업 시간은 조용했다. 나는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 우리 동네를 벗어나니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너무나 많아 마음이 조급해졌기 때문이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도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공부만 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정신없이 방학을 보내고 나니 새 학기가 시작되어 학년이 하나 올라갔다. 아이들은 동복 위에 외투를 하나 더 겹쳐 입고 등교했다. 아직 꽃샘추위가 다 가시지 않은 탓이었다. 개중에는 훌쩍 자라 버린 키 때문에 바지 밑단이 발목 위로 껑충 올라와있는 아이도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학교에 가서 교실 배정표를 확인했다. 지혜와 나는 다른 반이 되었다. 나는 그 전보다 한 층 위에 있는 교실을 쓰게 되었다. 더 긴 계단과 복도를 걸어야 새로운 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그 뒤로 얌전히 지냈다. 새로운 반에서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어 그들과 공부하는 법을 공유하기도 하고, 때로 좋아하는 가수 이야기를 하며 함께 웃기도 했다. 학교가 끝나면 주말에는 다시 먼 동네로 가 학원 수업을 들었다. 쏟아지는 숙제를 다 해가기 위해 매번 늦게까지 자습을 했다. 그동안 떨어진 성적을 올리기 위해 밤새워 공부를 해 마지막 학기에는 역대 최고 성적을 받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부모님은 나를 자랑스러워했고 선생님들의 신뢰도 회복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쉬는 시간에 지혜가 우리 반으로 왔다. 다른 친구를 보러 온 모양이었다. 그 애가 교실을 휙 둘러보다가 나와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나는 그 애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그러나 지혜는 그런 나를 발견하고, 너무나 활짝 웃으며 내게 인사했다. 아무렇지 않은 웃음이었다. 그 애는 마치 낯선 사람을 대할 때처럼 웃었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에 우리는 각자 다른 고등학교에 배정되었다. 나는 고등학교 내내 입시에 열중했다. 항상 해야 할 공부량이 정해져 있었고 그것을 다 채우기 위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교실 내에서 느껴지는 학생들 사이의 미묘한 관계의 변화나 갈등 같은 것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매 학년 최소한의 인간관계를 유지했다. 함께 밥을 먹고, 공부를 하고, 간식을 나누어 먹고, 야간 자율 학습 시간이 끝난 깜깜한 밤에 집으로 향하며 진로에 관한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 그 동네를 떠났다. 대학에 가니 똑똑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나와 맞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럴 때면 그저 조용히 멀어지면 그만이었다. 친한 사람이 많아질수록, 반대로 초반에 얼굴만 익히고 이후에 데면데면해진 사이도 늘어갔다. 그러나 나뿐만 아니라 그런 인간관계는 누구나 한 번쯤은 거쳐 갔기 때문에, 혹시라도 그런 사람을 캠퍼스 내에서 마주치면 적당히 모른 척하거나 눈이 마주치면 어색하게 인사하고 지나가면 그만이었다.
지혜가 어떻게 사는지 지금은 알지 못한다.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사고를 쳐 강제로 전학을 갔다는 소문도, 이후에 한국에서 대학을 갔다가 적응을 못해서 외국에 갔다는 말도 들려왔다. 그 애는 나를 기억조차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끔씩 그 애를 길에서 마주치는 상상을 한다. 그렇게 된다면 너는 나를 알아보고 아는 체를 할까. 그때도 활짝 웃으며 내게 인사할까.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너는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내가 미처 전화를 받지 못한 그날 밤에 너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네가 제일 좋아한다는 그 친구의 다음 생일은 축하해주었니. 이제 남들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지 마. 내가 옆에 있어줄 수 있으니까. 사실은 그때 그런 말을 단 한 번이라도 해주고 싶었던 거였는데. 나는 왜 아직까지 너를 기억할까? 나는 그 애와 멀어진 뒤로도 가끔씩 혼자 학교 담장 뒤편의 철쭉을 보러 갔다. 여기에도 꽃이 있고 나무가 있어. 그 사실을 눈으로 보고 느끼기 위해서였다.